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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Apr 17. 2021

되살아난 솟대패의 신바람

1.  쓰러진 솟대를 세우다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들머리


2014년 11월 1일(쇠날) 진주성 안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78년 동안이나 쓰러져 있던 진주 솟대쟁이패의 ‘솟대’를 다시 일으키고, 맥이 끊겼던 솟대쟁이놀이를 되살리는 학술발표회와 공연 때문에 온종일 시끌벅적하였다. 솟대쟁이놀이는 한때 남사당패와 어깨를 겨루며, 진주를 근거지로 온 나라를 누비던 전문예인집단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몹시 달뜬 바람에 가슴이 내도록 벌렁거렸다. 이날은 발걸음부터 자꾸 가락을 타는 것이 꼭 발 탄 강아지 같았고, 마음은 몇날 며칠 매구치는 소리에 들썩이던 옛 고향의 설날 때 같았다. ‘오오빵빵 아저씨’(포수차림을 한 잡색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니던 그때 그 시절이 막 떠오르기도 했고, 매구꾼들 속에서 장구를 매고 구슬땀을 흘리며 지긋이 웃던 내 선친의 얼굴도 떠올랐다. 깽매기(꽹과리) 소리 자지러지던 놀이판 너머에는 푸른 바다가 넘실넘실 춤을 추었고, 숯골 사는 아재는 벅구뜀이 얼마나 높았던지 우리들 머리 위로 훌쩍훌쩍 잘도 넘어 돌아갔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이 같은 풍물과 벅구놀이를 마을마다 놀았지만, 이제는 정겹고도 그리운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알고 보면 내 고향의 벅구놀이도 12차 농악의 자취일 것이고, 12차 농악은 다시 진주 솟대쟁이놀이 품에 들어 있었다 하니 새삼 솟대쟁이놀이를 되살리는 일이 남 일 같지 않게 여겨졌다. 



1. 쓰러진 솟대를 세우다


무슨 일이든 일에는 차례가 있고, 그 차례의 맨 앞머리에는 솟대처럼 우뚝 그 뜻이 서야 하는 법이다. 이번 일에 뜻을 세운 사람들은 솟대쟁이놀이가 진주 사람의 큰 자랑거리이자 온 겨레의 신명을 풀어주던 놀이였음을 진작부터 깨닫고 있었다. 하여 솟대쟁이패가 솟대를 눕힌 지 어언 80년이 다 되었건만 여전히 맥을 잇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솟대 아래위에서 재주부리고 손뼉치고 떠들며 정을 나누는 사이, 솟대쟁이놀이는 겨레의 고단한 삶과 씻을 길 없는 한을 다독여 주었다.


그동안 솟대쟁이놀이에 대한 사랑이 일찌감치 싹터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솟대쟁이놀이 가운데 ‘풍물’은 광복이후 강판세 스승이 진주농악회를 만들면서 맥이 이어졌다. 강판세 스승은 당대 으뜸가는 솜씨를 뽐내던 명인들(황일백, 조명수, 송철수, 윤판옥,김도생, 문현재, 조판조 등)과 같이 놀이판에서 놀면서 재주를 물려받았으며, 1966년 6월 이들이 지켜온 풍물이 ‘농악12차’란 이름으로 중요문화재 제11호가 되었다. 현재 상쇠의 김선옥(강판세의 외손자)과 설장구의 박염은 솟대쟁이패 출신의 뜬쇠들로부터 몸소 솟대쟁이놀이의 얼과 재주를 이어받아 오늘날 ‘진주삼천포농악’의 인간문화재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솟대쟁이놀이의 ‘탈놀음’은 진주오광대가 되살아나면서 그 속살의 몇 가지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1998년 1월 진주 시민의 힘으로 진주오광대복원사업회를 꾸렸고, 그해 5월 제3회 진주탈춤한마당에서 진주의 토박이오광대가 되살아나 무대 위에서 한바탕 신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2003년 6월 진주오광대는 경남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어 전승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해마다 진주탈춤한마당이 열릴 때마다 무대에 올라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솟대쟁이놀이의 ‘재주(기예)’를 오롯이 이어받기 위하여 2014년 1월 솟대쟁이놀이 보존회가 만들어졌지만, 이전부터 이러한 공력들이 있어왔던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2004년 11월 민예총의 ‘솟대쟁이의 후예’ 공연을 비롯하여, 전통예술원 마루는 ‘솟대쟁이 그들과 후예’라는 제목으로 죽방울놀이, 나무다리타기, 버나놀이, 무동, 얼른 같은 공연을 해마다 계속해 왔으며, 2012년 12월에는 창작극 ‘솔대 밑 친구들’을 무대에 올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은 비록 솟대쟁이놀이의 온 모습을 되살리지는 못한 것이긴 했어도 우리의 전통놀이를 이어받으려는 곧은 얼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생각할 때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진주문화연구소는 2008년 5월 ‘한국 잡희연행의 양상과 역사적 전개과정-솟대쟁이패 고찰’을 주제로 진주탈춤한마당의 학예굿을 열었고, 지난해 12월에는 뜻있는 분들을 진주시청에 모아 솟대쟁이놀이를 되살리기로 하고 진주의 솟대쟁이패를 되살리기 위한 첫모꼬지 ‘솟대쟁이패 후예·후손 모임’을 가졌으며, 이듬해인 올해 1월 15일에는 마침내 솟대쟁이놀이 보존회를 만들면서 ‘솟대쟁이놀이 되살리기’에 뛰어들기에 이르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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