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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y 26. 2021

남해 설화의 짜임과 속살2

-남해군의 옛이야기4 <옛이야기 속으로>

이들 가운데 남해 설화의 특이성을 잘 보여주는 설화는 설천면 진목리 대국산에 전해오는 대국산성 내력담이다. 이 이야기는 네 가지 정도로 전해오는데, 첫째가 ‘청이 형제 힘내기’이고, 둘째가, ‘정희 부부 힘내기’, 셋째가 ‘천장군 부부 힘내기’이고, 넷째가 ‘천장군과 일곱 시녀가 함께 축성하기’이다. 이 가운데 세 가지는 ‘오누이 힘내기’ 설화의 짜임새를 지니고 있다.


본래 ‘오누이 힘내기’ 설화의 구조는 이러하다. 오누이가 함께 살 수 없어 내기를 하여 지는 사람이 죽기로 하고 힘을 겨루기로 한다. 어머니가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아들을 도와 이기게 하여 누이가 죽게 된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들이 부당하게 이겼다 하여 자살하게 되고, 끝내 어머니도 따라 죽는다. 이 설화에는 오빠의 서울 다녀오기와 누이의 성 쌓기, 어머니의 아들 편들기, 등장인물이 모두 죽기 등 네 가지 화소가 골격을 이룬다.


그런데 이 화소들이 변이가 일어나거나 설화의 앞뒤에 이 설화를 보완하는 이야기가 덧붙어 변이가 일어나기도 한다. 또 지나친 비극을 피하려고 죽는 사람이 한 사람으로 끝나기도 하고, 내기에 패하는 것으로 끝나기도 하며, 무승부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가 탈락되는 경우가 많고, 주인공 남매가 많은 변이를 일으켜서 형제, 부부, 청혼하는 남자와 열녀, 장사 두 사람, 딸과 며느리, 두 명의 선녀, 두 명의 신선, 두 명의 보살 등이 등장하며, 힘내기는 단시간에 끝내기(시간), 남보다 힘이 셀 것(힘들기), 먼 거리를 빨리 다녀오기 등에 따라 또 다른 변이가 나타난다. 이들 변이는 충청도를 중심으로 하여 멀어질수록 비극이 약화되며, 대부분 한반도 남쪽에 분포되었다는 점에서 전설의 분포 및 방향과 변이의 양상을 고찰하기에 알맞은 전설이다.


‘청이 형제 힘내기’ 이야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청이 형제가 나이가 들어 청년들이 되자 한 처녀를 같이 사랑하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사이가 멀어지는 듯해 형이 먼저 청이를 불러 제안을 했다. 처녀가 두루마기를 한 벌 짓는 동안, 형은 30관 쇠줄을 발에 묶고 20리길을 갔다 오기로 하고, 청이는 대국산에 성을 쌓기로 내기를 하고, 이기는 사람이 처녀와 결혼하기로 약속하였다. 가을 보름날 밤 내기를 시작하였는데 달이 서산에 걸릴 무렵 청이는 성 쌓기를 마쳤으나, 처녀도 형도 임무를 다 마치지 못하였다. 형은 약속대로 처녀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가슴을 찔러 죽으니, 청은 내기에서 이겼으나 서러움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 후 왜구들이 쳐들어오자 청이는 마을사람들과 힘을 모아 힘껏 싸우니 도적들이 감히 성을 넘지 못하여 모두 물러갔다. (출처 : 정의연, 남해역사 테마기행-남해의 전설, 남해리뷰사, 2003, 191~192쪽


‘오누이의 대결’에서 ‘형제의 대결’로 변형이 일어나고, ‘어머니’의 존재가 사라진 대신 대결자의 전리품인 ‘처녀’가 새롭게 덧생겨 난 것, 그리고 죽는 인물이 ‘형’ 한 명에 그친다는 점에서 비극성이 약화된 것도 ‘오누이 힘내기’ 설화와 크게 다른 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다른 점은 뭐니뭐니 해도 ‘산성’의 의미일 것이다. ‘오누이 힘내기’에서는 누이가 짓기로 한 ‘성’의 의미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오빠의 시험은 ‘굽이 3자 3치나 되는 쇠나막신 신고 서울 다녀오기’인 것으로 보아 보다 동적이고 공격적인 활동의 시험이고, 이에 비해 누이는 보다 정적이고 방어적인 활동의 시험으로 보이는 것 외는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의 의미는 그 설화가 구전되는 지역의 특성과 관련지을 때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청이 형제 힘내기’에서는 ‘산성’의 의미가 크게 와 닿는다. 청이는 형보다 약해 보이는 인물로서 ‘성 쌓기’의 시험에 도전함으로써 어쩌면 더 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남해라는 섬 지역이 왜구의 침략이 잦고 사랑하는 가족과 재산을 지키는 데 필요한 힘을 생각해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성’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형이 시도했던 ‘30관 쇠줄을 발에 묶고 20리길 다녀오기’는 오히려 왜구와 같이 먼길을 달려가서 공격하는 쪽에서나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그만큼 ‘산성의 긴요함’을 강조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상징인 ‘처녀’를 ‘성’을 쌓은 자의 몫으로 배려하고 싶었을 것이다.  <끝>                                            


* 경남도사펀찬위원회, 경남도사 제9권,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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