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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Jun 20. 2021

산청 설화의 짜임과 속살2

- 산청군의 옛이야기4 <옛이야기 속으로>

산청 지역에는 ‘문가학 전설’이라는 아주 독특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산청군지에 1편이 전하고, 산청구비문학에 2편이 전하는데, 신안면의 ‘문가학 전설’과 단성면의 ‘문가학 전설’이 그것이다. ‘문가학 전설’은 여우의 둔갑술을 배워 조정을 유린하려 했던 문가학이라는 사람의 전설이다.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정취암’은 대성산 기암절벽 사이에 자리한 사찰로 예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어지는데, 이곳이 문가학이 여우에게서 둔갑장신비법을 배웠다는 곳이다.


신등면 정취사에 섣달 그믐날만 되면 이 절의 스님이 죽어나갔다. 문가학이 원인을 알아보려고 스님들을 다 내보내고 혼자 남았다. 밤이 깊어지자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오길래 꾀어 취하게 해서 보니 여우였다. 붕알에 올가미를 하여 대들보에 매달아 놓았다. 잠에서 깬 여우가 둔갑술이 적힌 책을 줄 터이니 살려달라고 애원해서 책을 받고 풀어주었다. 둔갑술을 익히던 중, 마지막 한 장이 남았을 때 여우가 책을 낚아채 가버렸다. 그 뒤로 문가학은 온갖 도술을 부리게 되었는데, 특히 비를 잘 내리게 했다. 재주를 들은 왕이 문가학을 불러 비를 내리게 하니, 정말 비가 내렸다. 왕이 비법을 물으니 정성을 다해 상제께 청하면 상제가 뜻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이 어떻게 하면 상제를 빌 수 있냐고 문가학에 물으니 은 기둥 세 개를 세우라고 한다. 어느 날 은 기둥을 다 세웠는데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은 기둥을 다 가지고 갔다. 왕은 그제야 속은 것을 알고 포도대장을 보내 문가학을 잡아들이라 명했다. 물동이 속에 숨었지만 옷고름이 둥둥 떠 있는 것이 들켜 붙잡히게 되었다. 문가학은 마지막 한 장에 적혀 있는 옷고름 감추는 비법을 몰랐던 것이다. 문가학이 죽고 나서 그의 재산을 몰수 하고 집터를 없애 못을 파고 가족을 몰살하였다.(출처 : 산청군지(상권), 산청군지편집위원회,2006, 710~713쪽.)


‘문가학 전설’은 도술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도둑이야기이다. 단성면의 ‘문가학 전설’과 산청군지의 ‘문가학’이 비슷하고, 신안면의 이야기는 이 둘을 요약한 듯해 보이는 이야기이다. ‘문가학 전설’은 합천 대병면에서도 전승되고 있는데, 단성면의 ‘문가학 전설’을 1부와 2부로 나눈 것처럼 되어 있다. 대병면의 ‘문재한의 둔갑장신1’은 주인공이 둔갑장신술을 취득하는 이야기이고, ‘문재한의 둔갑장신2’는 취득한 둔갑장신술로 국가재산을 탐하는 이야기이다.


‘문가학’은 조선태종 때 모반을 꾀한 인물이다. 고려의 명문거족(강성문씨)으로 태어난 가학은 재주가 뛰어나 형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고려가 망한 후에 낙향(경남 산청)하여 큰 뜻을 품고 입산수도하여 태일산법(太一算法)을 터득하고 도술을 연마하였다. 비술의 신묘함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소문을 들은 진주출신 예문관직제학(정이오)이 가학을 천거하였다. 나라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낼 때 태종이 한때 가학을 곁에 두기도 하였으나 신통력이 떨어지자 내치게 되었다.


개성유후사(留後司)로 쫓겨난 후에도 그 명성은 드높아졌고, 인품이 돈후ㆍ담대하여 따르는 인재들이 많았다. 사찰에 은거하던 고려 유신들과 뜻을 합하여 나라의 기풍과 도덕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천명하고 고려왕조를 찬탈한 이씨 정권을 무너뜨릴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조곤의 밀고로 보은사에 은거해 있던 거사군들이 패퇴하고 주모자들이 일망타진되었다. 1406년(태종6년) 12월15일 가학은 공모자들과 함께 활형(능지처참 또는 거열형) 후 효수되었고 가학의 어린 두 아들과 아내도 처형당하였다. 가학의 직계는 물론이거니와 외가와 처가의 직계도 참형을 면치 못하였으며 그의 친족들은 연좌되어 귀양을 가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끝>


* 경남도사편찬위원회, 경남도사 제9권,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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