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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May 19. 2021

거창 설화의 짜임과 속살2

- 거창군의 옛이야기4 <옛이야기 속으로>

거창군 가조면에 전해오는 ‘석순이 이야기’는 ‘내복설화’의 구조를 일부 지니고 있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딸에서 아들로 변모하였고, 중간부분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내용이 들어와 있긴 하지만, 주인공이 아버지에 맞서 집에서 쫓겨나는 첫대목과 아들이 가출한 후 몰락한 아버지를 결국 그 아들이 거두어 준다는 끝 대목은 전형적인 ‘내복설화’의 구조를 보여준다. 한편 거창 마리면의 ‘제복 차 버린 대감 아들’은 전형적인 ‘복진며느리 설화’에 해당한다. 이와 유사한 설화가 인근 지역에도 전승되고 있는데, 산청 신안면의 ‘부잣집 딸과 숯쟁이 총각 이야기’, ‘셋째 딸 자기 복으로 산 이야기’, 산청 시천면의 ‘지복으로 먹고사는 지국이’, 하동읍의 ‘못살아도 내복 잘살아도 내복’ 등이다. 


‘제복 차 버린 대감 아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한 대감이 외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대감이 아들 관상을 보니 꼭 빌어먹을 상이었다. 그래서 대감은 민촌의 딸이지만 복 있는 처자를 며느리로 삼았다. 그러다가 대감이 죽으니 아들이 각시 친정이 빈천하다며 내쫓고 말았다. 오갈 데가 없게 된 각시는 산속을 헤매다가, 오두막에서 어머니랑 사는 마음 착한 숯쟁이 총각을 만난다. 이 총각과 혼인하여 사는데, 하루는 서방님 일터에서 금덩이를 발견한다. 타고난 복이 있어 각시 눈에 금이 보인 것이다. 각시가 시킨 대로 장에 내다 팔아서 큰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되었다. 시아버지 생각해서 거지 남편에게도 집과 땅을 사 주었지만, 그마저 노름판에 다 날려버리고 다시 거지가 되었다고 한다.(출처 : 박종섭, 거창 민담, (사)향토민속보존협의회, 2012, 213~222쪽.)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복이 있고 그 복에 따라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는 운명론적인 사고가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조 속에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복한 사람도 복 있는 아내를 얻으면 거지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 ‘대감’의 역할을 통해서 정해진 운명을 인간의 노력으로 개척해 보려는 적극적인 사고의 일면도 엿볼 수 있다. 또 신분보다는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대감’의 처세관은 매우 현실적이고 진취적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운명을 뿌리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 아들을 통해서 확인된다.


결국 사람은 신분보다는 타고난 복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결정된다는 운명론적인 사고로 귀결되지만 그 과정에서 운명을 바꾸어 보려는 인간의 노력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끝>                                            

 

* 출전 : 경상도사편찬위원회, 경남도사 제9권,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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