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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Jun 28. 2021

하동 설화의 짜임과 속살 2

- 하동군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하동 설화 가운데 하동의 지역성과 이야기의 서사성을 두루 잘 갖추고 있는 이야기가 ‘달님 별님’이다. 이 이야기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금남면 금오산에 달님과 별님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무척 사랑하는 사이였다. 한편 지신은 이들의 사랑을 질투하며, 별님을 죽이고 달님을 차지하고 싶었지만, 야속하게도 끝내 달님은 정을 주지 않았다. 별님과 달님은 산속의 친구들로부터 축복을 받으며 사랑을 나누었고, 곧 결혼을 하자고 약속했다. 이를 숨어서 지켜본 지신은 마음이 급해지고 안달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잡신을 찾아갔다. 지신은 하동읍의 기름진 너뱅이들을 잡신에 주기로 하고, 달님과 자기를 사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니, 잡신이 그러자고 했다. 잡신은 달님을 찾아가 지신의 좋은 점을 들어 칭찬하면서 지신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으나, 달님은 지신의 마음씨가 곱지 못하다고 하면서 거절했다. 어느 날, 지신이 달님에게 찾아와 별님과 손을 끊고 자기와 사귀어 달라고 부탁하지만, 달님은 공손히 거절하고, 지신은 화가 나서 험악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달님은 혹시나 별님에게 음모나 꾸미지 않을까 불안하여 잡신을 찾아가지만, 돌아오는 건 역시 별님과 헤어지라는 말 뿐이었다. 달님은 결국 별님에게 찾아가 사실을 고백하고, 둘은 사랑을 다짐하지만, 지신과 잡신은 별님을 해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잡신이 칼과 도끼를 들고 자고 있던 별님을 죽이려고 하자, 산새가 몰래 나와 남해금산 산신령 내외에게 알렸다. 암호랑이가 급하게 달려와 금오산을 오를 때 쾅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남해가 떨어져 나가 섬이 되었는데, 산신령의 도움을 방해하려는 지신의 수작이었다. 동굴에 도착하여, 잡신을 덮쳐 죽였으나, 맨손으로 지신에 맞섰던 별님이 이미 심하게 다쳤기에 그 또한 곧 숨을 거두었고, 이에 달님도 따라 자결하였다. 호랑이 내외가 함께 슬퍼하고, 별님과 달님의 피가 뿌려진 곳에 금오산 철쭉 군락지가 생겨났고, 핏자국이 붉게 물든 바위가 남게 되었다. (출처 : 하동향토사연구위원회, 하동의 구전설화, 하동문화원, 2005, 360~369쪽.)


이 이야기는 ‘하동읍의 너뱅이들’과 ‘금오산의 철쭉군락지’, ‘남해가 섬이 된 내력’ 등을 잘 들려 줄 뿐만 아니라, 천신과 지신의 경합 모티프와 남해금산 산신령의 정체성 등을 짐작하게 해 준다. 


먼저 ‘하동읍의 너뱅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주요한 모티프로 등장하고 있다. 짝사랑하는 달님을 차지하기 위하여 지신은 잡신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때 잡신의 도움을 얻는 대신 지신이 잡신에게 지불하려는 것이 ‘너뱅이들’이다. 잡신의 입장에서 보면 별님과 달님을 갈라놓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모두 이 ‘너뱅이들’ 때문이다. ‘너뱅이들’은 신의 사랑과 바꿀 만큼 기름지고 값진 벌판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하동 사람들이 얼마나 귀히 여긴 땅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가을철 광양 무등산 정상에서 하동읍의 너뱅이들을 내려다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섬진강이 여기에 와서야 왜 바다로 나가기를 멈칫거리는지를 알게 된다.


또 이 이야기는 남해가 섬이 된 내력을 들려준다. 지신은 달님을 얻기 위해 잡신에게 너뱅이들을 뇌물로 준다. 이에 힘입어 잡신은 달님의 친구인 별님을 죽이러 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해금산 호랑이가 별님을 구하러 오는 것을 막으려고 지신이 남해를 섬으로 갈라놓는다. 그러나 다행히 호랑이는 땅이 갈라지기 전에 금오산에 도착하여 호랑이는 잡신을 잡아 죽인다. 이 부분은 천지 창조신화의 모티프를 보여주고 있다. 남해가 어쩌다가 섬이 되었는지를 들려주는 아주 오래된 신화의 흔적이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것이 천신과 지신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별님과 달님은 말할 것도 없이 천신들이다. 특히 별님은 잡신과의 싸움에서 다치게 되어 마침내 ‘날개’를 드러내는데, 이것이야말로 별님이 천신이라는 가장 좋은 징표이다. 또 별님이 위기에 처하자 동굴에서 잠들었던 ‘새’가 몰래 빠져 나와 남해금산 산신령 내외께 전해준다는 것도 역시 천신 신화의 흔적이다. 아무래도 ‘새’는 천신계열이 든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신은 이름 그대로 지신이다. 지신이 별님에게 욕심을 낸다고 하는 것은 지신이 천신을 배우자로 맞이하려는 욕망을 보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양상을 전하는 서술자의 태도가 그렇게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북방계 신화들은 대개 남신인 천신과 여신인 지신의 결연으로 영웅이 탄생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남신인 지신과 여신인 천신의 결연이 시도되지만 실패하고, 그러한 시도가 그렇게 환영받을 일로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마치 나무꾼과 선녀의 관계를 보는 듯하다. 지상의 인물인 나무꾼과 천상의 인물인 선녀가 나무꾼의 계략으로 일시적으로 결연이 되지만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을 얻게 되는 것과 이 이야기는 매우 흡사하다. 한편 일반적으로 산신령은 지신계열로 취급되는 만큼 남해금산 산신령 내외인 호랑이 부부도 지신계열일 터인데, 이 이야기에서는 호랑이가 지신을 돕지 않고 별님, 즉 천신을 돕는 것은 매우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어, 이 호랑이의 정체성에 관해서는 연구의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끝>                                              


* 경남도사편찬위원회, 경남도사 제9권,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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