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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Sep 08. 2021

상사바위 이야기 1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옛날에는 양반과 천민의 신분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고도 엄격했던 모양이다. 남해 상주마을에 하인을 수십 명 부리는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 부자 슬하에는 금이야 옥이야 곱게 키운 외동 딸이 있었다. 그 집 하인들 가운데 어느 한 하인의 아들이었던 돌쇠라는 총각은 오래 전부터 주인의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상의 법도가 목숨보다 중했던 시절인지라 사랑하는 마음을 속으로만 간직할 뿐, 말로 표현할 수도, 감히 가까이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천한 신분은 하늘이 내린 팔짜여서 어쩔 도리가 없었으므로, 애만 태우다가 그만 상사병이 들고 말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자지도 못하며 몇 달을 시들시들 앓는다 싶더니 그만 하루 저녁에 죽고 말았다.

 

총각이 죽은 뒤 첫 그믐밤이었다. 부자의 딸 방에 커다란 뱀 한 마리가 기어 들어왔다. 깊은 잠에 빠진 처녀는 뱀이 자신의 몸을 천천히 감는 것조차 몰랐다. 뱀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돌쇠의 넋이 화한 것이었다. 생전에 못다한 상사를 죽어서라도 풀려는듯 뱀 총각은 처녀의 몸을 칭칭 감고 영원히 안고 놓지 않을 기세였다. 아침이 되고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충격에 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힘깨나 쓰는 하인 장정을 불러다가 잡아떼려고 안간힘을 써 보아도, 동네 사람들 몰래 이름난 의원을 모셔와서 용하다는 처방을 다해 보아도 효험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고을 단골무당을 불러다가 몇날 며칠을 진혼굿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 또한 소용이 없을 뿐 고을에 궂은 소문만 퍼지고 말았다. 이리저리 온갖 방도를 다 써 보았으나 한번 감은 뱀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딸아이의 몸에서 뱀을 떼어낼 방도를 찾지 못하자 양반은 날이갈수록 근심이 커져만 갔다. 흉측한 소문 때문에 딸아이의 혼삿길은 이것으로 끝장날 판이었다. 혼사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자식의 목숨마저 이대로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날이 갈수록 처녀는 점점 식음을 전폐하고 몸은 몰라보게 야위어 갔다. 여기저기 아무리 수소문 하여도 좋은 방도를 찾지 못한 양반 부부는 딱한 딸아이의 어처구니 없는 모습만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곳간에 가득찬 곡식과 금은보화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수염이 희고 긴 노인이 그집 앞을 지나다가 대문 간으로 들어섰다.

"지나가는 손이온데, 귀댁 지붕 위에 먹구름이 가득하니, 무슨 우환거리라도 있는 겝니까?"

부자는 급한 마음에 노인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묻는 것도 잊고 그간의 사정부터 모두 들려주었다.

 “아무 소리 말고 금산에 있는 높은 벼랑 위에서 굿을 해보십시오. 분명 효험이 있을 겝니다.”

 

이렇게 말하고 노인이 대문간을 나서는데, 걸음새가 마치 바람과도 같았다. 하인 하나가 뒤따라 나가 보았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딸을 살릴 수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부자양반은 노인이 시키는 대로 금산에 올라 좋은 자리를 물색하였다. 금산에서 가장 높은 벼랑을 찾아 자리를 잡고 용한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기 시작하였다. 굿판을 연 지 얼마나 흘렀을까? 굿이 한창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 신기하게도 딸의 몸에 달라불어 있던 뱀이 스르르 풀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어 뱀은 힘없이 바위 바닥에서 허느적거리다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사람들이 그 바위를 부르기를 상사바위라고 하였는데, 까닭인즉 거기서 상사를 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사바위는 금산에서 가장 높은 벼랑으로 상사바위에서 바라보는 금산과 다도해는 일품이다. 상주 금양쪽 등산로 입구에서 금산 전체의 절경을 볼 때 가장 뚜렷하고 크게 보이는  바위가 상사바위이다.


- 남해역사문화 테마여행, 남해의 전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뱀으로 변해"를 바탕으로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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