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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 Sep 03. 2021

궁지목 이야기

우리 고을의 옛이야기 <옛이야기 속으로>

  옛날에 남해군 고현면 관당이라는 마을에 성품이 강직하고 온후할 뿐 아니라 행실이 성실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임과 사랑을 독차지한 ‘궁철’ 총각이 살았는데,  그 마을에는 미모와 성격이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지즘’이라는 처녀도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지즘이라는 처녀가 밤중에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 언니 집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게 되었다. 마을 앞은 포구요 마을을 벗어나려면 마을 옆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 중간에 있는 오솔길을 따라 가야 했다. 능선 중간쯤을 넘으려고 하자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주위에서 들렸다. 무서웠지만 살펴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궁철이 총각이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혼인 전에는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은 누구나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처녀총각은 서로가 누구인지 이름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단둘이 맞닥뜨린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둘은  첫눈에 반해버렸다. 첫 만남 때는 서로 말없이 눈치만 살폈지만 차츰 만남이 잦아지는 동안 둘 사이는 애틋한 연정이 깊어져갔다. 어느새 젊은 연인들은 하루도 만나지 않으면 못견딜 만큼 그리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온 세상이 궁철과 지즘의 사랑으로 가득차 반짝거리는 듯하였다. 둘은 더없는 사랑과 행복으로 천국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흐르는 세월따라 그들의 소문도 온 동네로 퍼져 나갔다. 자유로운 연애가 금기로 여겨졌던 시절이었던지라 이들의 사랑은 금새 못된 사악한 짓으로 퇴색되어 있었다.  처음 만난 이곳 이 능선 숲 속에서 맺었던 백년가약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그들도 사랑을 하는 동안,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지경이 올 것을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너무 행복하면 그 행복을 시기하는 불안이 늘 따라다니는 법이다. 궁철과 지즘은 첫 인연을 맺을 때 했던 언약을 떠올렸다. 세상 어떤 힘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하게 합시다. 궁지 연인은 끝내 이생의 아름다운 사랑을 저생으로 가져가기로 하고 함께 목을 매어 죽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능선 숲을 총각이름의 앞자인 궁자와 처녀이름의 앞자인 지자를 합해서 “궁지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이곳을 지나는 이 길이 남해읍으로 통하는 길이었는데 밤이나 낮이나 무서워 지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산등이는 목같이 바다를 향해 뻗어져 있고 대국산과 이어진 능선이다. 지금은 논과 밭으로 개간되어 중간에는 끊어져 있고 조그마한 목만이 남아있지만, 인적이 드문 곳이라 전설을 생각하며 홀로 서 있으면 아직도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 [남해역사문화 테마여행, 남해의 전설]을 바탕으로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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