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9일)
5일 전 뉴저지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던 아들 친구 Roy를,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났다.
1주일 내내 바쁘게 살고 있는 아들 친구 Roy의 스케줄을 감안, 토요일 오전 느지막한 시각에 아침과 점심을 겸한 '아점'을 먹기로 했었다.
우리 딸과 오빠 친구 Roy, 두 뉴요커 간에, 카톡으로 만날 적당한 장소를 이야기하다가, 딸 아파트로 Roy를 초대하기로 했었다.
아내도 번잡스러운 외부 레스토랑보다는, 집에서 준비한 식사를 하면서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좋겠다고 환영했었다. 그 만남의 날이 오늘이다.
오전 11시, Roy가 딸이 사는 저지 시티의 아파트 초인종을 눌린다.
Roy가 사는 곳도, 딸의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건강한 모습에 가벼운 포옹을 나눈다.
2000년 5월,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시절, 호찌민에서 그 집 식구들을 처음 만났다.
같은 그룹 자매사 호찌민 지사에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이 차장의 아내가, 나의 지사장 발령으로 우리 식구들이 호찌민으로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같은 아파트 내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 첫 만남의 순간이었다.
성격 좋은 이 차장 아내는 우리 장모님께도 엄마처럼 대하고, 아내와도 격의 없이 대하면서 아내와 금방 단짝이 되었다. 두 집 아들들이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라 두 아내는 더 가깝게 지냈었다.
2, 3년을 아들과 단짝으로 지내던 Roy는 부모 근무지를 따라 하노이, 심천, 광주 등으로 이동하면서 아들과는 헤어졌지만,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아 왔다.
두 아내는, 26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부부간에 서로 만남을 이어가는 절친인 각별한 사이다.
그런 아들의 죽마고우 Roy를, 뉴욕 여행을 온 우리 부부가, 지하철 같은 칸에서 우연히 만난 순간 환성이 터졌고, 한국에 있는 우리 아들을 만난 것 같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아내와 딸이 정성을 담아 차린 오믈렛, Maman Bakery 빵, 그라놀라, 요거트, 과일과 커피가 아점 메뉴다.
차려 놓은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오늘 이 만남의 순간 사진을 절친에게 보내야 된다고, 아내는 4 사람의 기념사진부터 찍자고 한다.
어릴 때 과묵한 성격이었던 아들 친구는, 시카고에서 Art를 전공한 뒤,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30대 중반의 유창한 언변의 서글서글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옛날 추억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일정이 있는 아들 친구가 일어날 시간이 되어 아쉬운 작별을 나눈다.
언젠가 두 부부가 뉴욕 여행을 함께 와서 아들, 딸들을 만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오후 1시 반, 우리 식구 3 사람은 인근 Exchange Place역으로 이동, 월드트레이드 센터 역을 경유, Uptown행 지하철을 탄다. 그리곤 3rd Avenue & 63rd Street에서 하차한다.
딸은, Madison Av. & East 68 St. 에 있는 웨딩드레스 샵에 들러 드레스들을 입어 보기도 하고, 웨딩 구두 샵에서 구두들도 신어 본다. 호찌민 인근 섬마을에서 날아온 시골 부부는, 부모 곁을 떠나 객지에서 살고 있는 뉴요커 딸 옆에서 애잔한 마음으로 조용히 지켜볼 따름이다.
오후 6시가 지나도, 맨해튼은 해가 넘어갈 생각이 없는 듯 바깥이 아직 훤하다.
딸의 손에 이끌려, 파스타 전문점 Piccola Cucina로 들어선다.
딸이 처음 뉴욕에 와서 혼자 식사를 해야 할 때, 옆 자리의 할머니들이 말도 걸어 주고, 음식 맛도 너무 마음에 들었던 곳이라고 한다.
Pasta, 구운 지중해 농어 (Grilled Branzino), 야채 샐러드를 주문하고 이탤리산 White Wine도 한 병 주문한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무사히 잘 보낸 의미로 나누는 한 끼 저녁 식사다.
부모와 딸 간에 격의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서로에 대한 바람도 와인 잔에 실려 전해진다.
총량불변의 법칙이 맞는 듯, 와인 몇 잔에 우버 택시 안에서 기절한 듯 편한 숙면을 취한 뒤, 아파트 앞에 도착하면서 나는 부활했다. 결혼식 순서에 포함되어 있는 아빠와 딸의 댄스 안무를 한 차례 따라 하다 난 어느새 단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