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마뱀붙이와의 한판 승부

(2026년 3월 27일, 금)

by 해송

나의 아침은 1층과 2층의 모든 문과 창문을 활짝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섬의 맑은 공기를 집 안으로 들여, 밤새 고여 있던 공기를 밀어낸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집도마뱀붙이들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다.


밤이 되면 방이나 거실 커튼 위에서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운이 따르지 않는 녀석들은 이따금 체포되기도 한다.


집도마뱀붙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대신 모기, 바퀴벌레 같은 실내 해충을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어둠이 내리면 벽을 타고 오르내리며 조용히 사냥을 한다.


"야!, 야!"


2층에서 아내의 태권도 기합소리가 터졌다.

녀석이 나타났다는 신호다.

나는 비명이 새어 나오는 방향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녀석은 2층 마루를 가볍게 튕기듯 뛰어내리더니, 계단 위 그림 액자 뒤로 번개처럼 몸을 숨겼다.

나는 아내가 건네준 살충제를 액자 뒤로 분사하기 시작했다.

중지 손가락만 한 크기였지만 그 생존력은 만만치 않았다.

몇 차례 분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교묘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분사액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쏟아부었지만, 녀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발뒤꿈치를 세우고 실눈을 뜬 채 액자 뒤를 살피는 순간,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때였다.


나무 계단은 이미 보이지 않게 흩뿌려진 분사액으로 미끄러워져 있었다.

순간, 균형을 잃은 몸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몇 계단을 굴러 떨어졌다.


둔탁한 마찰음이 계단 아래 원탁에 부딪히며 울렸다.

나는 한동안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녀석이 계단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승부는 나의 완패였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끝났다.


시간이 지나자 고관절과 팔꿈치가 서서히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손가락과 무릎에도 둔한 통증이 번졌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 얼굴 위로 '나는 언제든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한 표정이 겹쳐 보였다.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서운함이 스쳤다.


'그래, 남자는 원래 외로운 존재지.'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마음 한편이 괜히 더 쓸쓸해졌다.


이 작은 전쟁을 겪고 나니, 전쟁을 시작한 건 나였다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이기겠다는 마음이 앞서, 감정이 과하게 실렸던 것이다.


익충인 녀석을 굳이 몰아붙일 이유는 없었다.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집도마뱀붙이와의 관계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겠다.

베트남에 살면서 세웠던 기본 원칙이 있었다.

‘파리채가 닿을 수 있는 위치 아래로 내려오면 체포한다.’


그 이상은 서로의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이었다.


집안에는 어떻게든 한두 마리쯤은 자리 잡게 마련이고, 하나가 사라지면 또 다른 존재가 그 자리를 채운다.

이 단순한 질서를, 나는 오랜 시간을 통해 배워왔다.


무리한 전쟁은 피하는 편이 낫다.


2월 말에 시작된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페르시아만을 넘어 중동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고, 세계 경제에도 암울한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


평화라는 단어가,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 집부터라도 전쟁을 멈춰야겠다.

평화 속에 공존해야겠다.


'착하게 살자.'

그리고, ‘무리하지 말자.’


집도마뱀붙이와 싸우다

일흔도 되기 전에 고관절 골절로

요양병원에 ‘데뷔’하기에는

아직은 조금 이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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