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9일)
사이공 (Sài Gòn) 시내 나들이 가는 날.
스완베이 (Swan Bay) 선착장에서 셔틀 보트에 몸을 싣는다.
여객선이 분주한 깟라이 (Cát Lái) 선착장을 지나, 푸미 (Phú Mỹ) 대교 밑을 통과하면 사이공 시내다.
여전히 거리엔 오토바이들이 쉼 없이 내달리고, 사이공 워터 버스 선착장엔 들뜬 관광객들로 활기가 돈다.
특히, 베트남 통일 50주년 기념일을 맞아 행사준비를 하느라 시내가 분주하다.
25년 전, 처음 베트남 땅을 밟았을 땐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적어도 5년은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스스로 개척할 환경에 대한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거리마다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 행렬도, 도로 옆 오토바이 안장 위에서 오수를 즐기던 오토바이 택시 기사도, 나무 사이나 트럭 아래에 매단 해먹 위에서 단잠을 자는 사람들도 모두 신기했다. 공항을 가득 메운 환송. 환영 인파, 매연 가득한 거리에서도 깔깔대며 웃던 아오자이 차림 여학생들. 그 웃음은 순수 그 자체였다.
10년쯤 지나자, 베트남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긍정뿐 아니라 부정적인 면도, 대도시와 농촌 사람들의 인생관과 행복지수 차이도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베트남과 베트남인들에 대해 표현하는 말만 들어도, 그 사람이 베트남에 온 지 대충 몇 년쯤 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20년이 지나면서는,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한국과 비교해 베트남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 선진국과 중진국을 최종 목표로 고군분투하는 한국과 베트남의 유사점과 한계점, 극복 대안들도 생각해 보곤 했다.
한국에 갔을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베트남 유학생을 보면, 마치 자식을 만난 듯 아련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25년을 함께 보낸 베트남은 어느새 나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사람과 사물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보이는 표면보다 그 이면을 느끼고 해석하려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라도 도움이 되는 삶의 메시지를 건지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주 1~2회 나서는 사이공 나들이는 여전히 늘 새롭다.
오늘은 또 어떤 공감과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까?
점심은 25년 한결같은 맛을 자랑하는 쌀국숫집 '퍼 화 (Phở Hòa)’에서다.
이곳은 늘 웃음 섞인 대화로 가득하다. 그런 사람 냄새나는 풍경이 좋다.
1인당 국민소득이 $4,700 (호찌민시 기준 $7,600 수준) 정도인 이 나라에서, 그들 웃음 속의 행복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 옆에서 나도 자연스레 미소를 지어본다.
식사 후엔, 오랜 전통의 발마사지숍 ‘건지가 (健之家)’에서 일주일간 쌓인 피로를 푼다.
전문학교 출신 마사지사들의 손길에 이끌려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지곤 한다.
나들이 방향이 2군 타오디엔 (Thảo Điền)이라면, 일식당 타마리버 (Tama River)에서 점심을 마친 후, 인근의 만다린 (Mandarin) 사우나와 마사지 시설에서 여유를 누린다. 귀가 전엔 투티엠 (Thủ Thiêm) E-Mart에서 장을 보고, 셔틀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코스다.
호찌민에는 한식, 일식, 중식, 베트남식, 태국식까지 다양한 먹거리와 마사지, 사우나, 영화관, 공연장, 미술관 등 문화. 휴식 공간이 풍부하다. 이 모든 것을 합리적 비용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건, 일상 속 소소한 호사다.
늦은 오후엔, 다까시마야 (Takashimaya) 백화점 지하 푸드 코트에서 야마자끼 (Yamazaki) 빵집의 통밀빵과 단팥빵을 사며 ‘오늘의 미션’을 마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아내는 안남 구어메 (Annam Gourmet)에서 샐러드 재료와 과일, 우유와 유거트용 생우유 등을 고르고, 기어이 '홋카이도 (Hokkaido)' 매장에 들러 '달달구리' 간식 치즈 타르트 (Cheese Tart)를 손에 넣는다. 그제야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우리는, 이어 함이 (Hàm Nghi) 전통시장에 들러 다금바리 한 마리와 생새우를 횟감으로 장만한다.
안남 구어메의 연어회 대신 가끔 사 가는 대체품이다.
근처 일본슈퍼에서 시메사바도 2팩 챙긴다. 일종의 비축물량이다.
통상 한국 물가의 1/2~1/3 정도 되는 베트남의 일상 중, 누리는 소소한 선택적 사치들이다.
다금바리, 새우, 시메사바까지 챙겼으니, 아내의 타르트는 애교 끝에 기꺼이 허락한 선물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의 수확에 마음이 뿌듯하다.
식탁에 횟감과 막걸리를 차려 놓고,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벌써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저녁 셔틀 보트에 오르면, 사이공 강 물결 너머로 호찌민의 스카이라인이 석양에 흔들린다.
피곤함에 잠시 감았던 눈을 뜨면, 동나이 강변에 하나 둘 켜지는 스완베이의 앙증맞은 불빛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이렇게, 주간 사이공 시내 나들이는, 우리 부부에게 단조로운 섬 생활 속 활력소이자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