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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송 Sep 12. 2024

유럽 여행 1일 차 (2024년 9월 10일)

길을 떠나며 

2024년 9월 어느 날, 엄빠와 딸이 함께 한 유럽 여행을 시간이 되는대로 정리해 본다.


새벽 4시 반. 

잠이 덜 깬 얼굴에 시원한 세수물을 몇 차례 끼얹는다.

거울에 비친 다소 충혈된 눈동자가 좀 안정을 찾는 것 같다.


먼 길 떠나기 전, 캐리어와 백 팩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한다.

택시가 보이지 않아 카카오 택시를 부르니 4분 후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뜬다.


오늘, 나는 또 비우고 채우려 길을 떠난다. 동반자는 영원한 길 벗, 아내다.

둘이서만 떠나는 여행은, 지난 4월 호주 여행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에는 미국에 사는 딸이 부다페스트에서 합류한다. 

사실, 이번 여행의 총괄 기획은 딸이 거의 다 맡아서 진행했다.


재작년 10월 아내와 같이, 이사한 딸 집 방문차 뉴욕에 들른 후, 엄빠와 딸이 함께 셋이서 피렌체와 로마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덕에 이번 여행도 삼총사가 함께 하게 되었다.


장성한 딸이 시간을 내어 부모와 함께 여행을 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딸에게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


가끔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타지로 떠났던 자식이 나이 든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면 연로한 부모가 든든해하는 장면들이 있던데, 내가 벌써 그런 신파조의 과잉 감성을 느끼는 건가?


하긴, 아들 딸이 옆에 있을 때면 왠지 든든한 생각이 들기는 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의미인가? 아침부터 잠시 부질없는 상념에 잠겼나 보다.


창 너머 인천공항 활주로에서 이. 착륙하는 비행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있으면 나도 어느 한 비행기에 몸을 싣고 11시간 25분을 날아가야 할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는 언제나 설렌다. 미지의 세계에서 처음으로 접하게 될 사람들과 문화, 자연들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내가 오감으로 느끼고 담아 올 것들이, 내가 가슴속 한구석에 이미 비워둔 공간을 채워 주면서 새롭게 나를 살찌울 것이다.


앞으로 살 날 중에 가장 젊은 날, 아내와 딸과 함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보낼 시간들이 무척 기대된다.

우리 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기록될 것이다.


곧 하강한다는 기내 방송에 창 밖을 보니, 새하얀 양 떼 같은 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은 가운데, 검은 머릿속 듬성 듬성 난 흰 머리카락처럼, 푸른빛의 숲들이 구름 사이로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앞서 도착한 딸은 엄빠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입국 심사대 앞에서 우리 부부를 맞는다. 7개월 만의 반가운 포옹을 나누고 공항 밖으로 나가니 섭씨 20도의 부다페스트가 청량한 가을 날씨로 우리를 반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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