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1일, 12일)
1. 9월 11일
어제저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뒤,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뒤라 아침에 일어나니 개운하다.
브런치를 먹으러 딸이 사전에 예약을 해 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중에 만난 '세종', '하나로' 등의 한국 식당들의 간판들을 보면서, 지구 곳곳에 K-food라는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한국인들의 저력이 느껴진다.
멀지 않은 호텔 안에 위치한 레스토랑이 조용하면서도 분위기에서 품격이 느껴진다.
여유 있게 브런치를 즐기며 모녀간에 묵혀둔 이야기보따리가 풀린다.
나도 슬며시 중간에 끼여 들어 대화에 동참한다. 오랜만에 얼굴을 직접 마주 보며 나누는 정겨운 대화다.
미국에서 가까이 지내는 딸의 친구들에 대한 근황도 가볍게 물어보고, 딸이 관심을 갖는 이슈에 대한 의견도 들어 보고, 인생의 가치관에 대한 각자의 의견도 나누어 본다.
이제는 다 큰 딸임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은근슬쩍 내 의견을 주입시켜 보기도 해 본다. 안분지족도 그중의 하나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경계로, 과거가 살아 숨 쉬는 동쪽의 ‘부다 구역’과 정치. 경제의 중심지인 서쪽 ‘페스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페스트 지역에 위치한 국회의사당을 가장 먼저 방문해 보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국회의사당 건물은, 헝가리의 역사 속 위인을 상징하는 90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고딕 양식의 건물로, 일몰 후 조명을 밝힌 자체 불빛과 다뉴브 강에 반사되는 불빛의 조화가 장관이다.
다뉴브 강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양쪽 강변의 풍광에 매료되어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길 즈음, 쇠로 만들어진 남녀의 구두들이 강변에 놓여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다뉴브 강가에서 독일군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구두 조형물들이다.
과거 홀로코스트로 알려진 나치의 유대인들에 대한 대학살과, 반대로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해 가해지는 피의 보복은,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현대사의 비극이다.
부다 구역과 페스트 구역 사이에 놓인 최초의 다리인 세체니 다리를 건너, 푸니쿨라를 타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다 성으로 오른다. 부다 성은 과거 국왕들의 거주지였고, 현재 역사박물관, 국립 미술관, 국립 도서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건물마다 대대적인 보수 공사로 인해 주위가 어수선한 상태였다.
왕들의 대관식이 진행되었던 마차시 성당과 어부의 요새를 잠시 둘러본 뒤,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체니 온천으로 발길을 돌린다.
로마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세체니 온천은 유럽 내에 있는 온천 중 가장 큰 규모의 온천으로 손꼽히는데, 실내. 외 다양한 온천욕과 수영을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많아 날씨와 상관없이 늘 사람들로 가득 찬다고 한다.
부다페스트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다뉴브 강 디너 크루즈였다.
택시 기사가 엉뚱한 곳에 내려주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크루즈 출발 시각에 도착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2시간 반에 걸쳐 친숙한 팝송 생음악과 함께, 다뉴브 강 양안의 야경을 아쉬움 한 점 없을 만큼 원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밤이 되면 세체니 다리에는 수천 개의 전등이 불을 밝히는데, 페스트 구역에서 세체니 다리 너머 부다 성을 바라보는 뷰가 야경 중에는 최고인 것 같다.
세부 일정 하나하나마다 딸이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들이 느껴지는 하루 일정이었다.
2. 9월 12일
19세기말에 문을 열었다는 '뉴욕 카페 (New York Cafe)'는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아르누보 양식의 실내 장식과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외관으로 유명한데,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대기 줄에 서 있었다.
사전 예약을 해 둔 덕분에 우리는 대기 없이 입장할 수 있었는데, 다양한 조각품과 회화, 샹들리에, 대리석 원형 기둥들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었다.
게다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선율이 주문한 음식 위에 더해진 듯, 느긋하게 즐기는 우리 가족의 브런치에 격조와 풍미를 더해준다. 어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 덕분에 오늘 오전에는 느긋한 일정을 즐길 수 있었다.
육중하고 견고한 건축물들이 체계적인 유지 보수를 통해 수십, 수백 년 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헝가리의 저력인 듯하다. 우리가 방문했던 부다페스트의 유명 건축물들은 한마디로 모두 명불허전이었다.
조상들의 헌신 덕택에 물려받은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부러워할 일이고, 우리나라도 대대손손 후대에 물려줄 세계적 문화유산을 많이 만들어 나가야 될 것이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96m 탑을 가진 성 이스트반 성당과 오페라 하우스를 잠시 둘러본 뒤, 체코 프라하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
주황색 지붕들과 초록색 숲의 앙상블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부다페스트를 뒤로 하고, 이제 체코 프라하에서 만날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