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섬마을 꽃구경

2025년 3월 3일

by 해송

아침을 알리는 참새 소리가 단잠을 깨운다.


6개월간 집을 비운 사이, 2층 욕실 유리창 바깥 조그만 틈새 공간에는 어미 참새가 갓 부화한 어린 새끼들에게 먹이를 나르느라 분주하다. 이번이 두 번째다.

좀 지저분한 것 같아, 예전에 참새 가족이 모두 날아간 뒤, 둥지를 치운 적이 있었는데, 어미 새가 순식간에 지푸라기들을 물고 와서 또 새로운 집을 짓는 바람에 그냥 두었더니, 또 그곳에서 새끼를 부화한 것이다.

20250303_112950.jpg
20250303_112746.jpg
1740886003958.jpg


자연친화적인 우리 동네에는, 아침에는 다양한 새들이 날아와 다양한 음색의 곡조로 분주한 일상을 알린다. 밤에는 ‘게코’라고도 불리는 ‘집도마뱀붙이’가 간간이 울어대며 해가 진 것을 알려준다.


북위 10도 45분에 위치한 호찌민시 인근의 동나이성 섬 마을에 사는 나는 오늘, 불현듯 꽃구경을 하고 싶어졌다. 한국에는 아직 봄 꽃들이 본격적으로 피지 않았을 테지만, 일 년 내내 더운 이곳에서는 연중무휴로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진다.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오랜만에 꽃구경에 나섰다.

우리 집에서 출발, 북동 방향으로 난 주택가를 따라 걷다 보면, 우측에 베트남 사람들의 기 수련 모임 집을 지나, 봉제 수출업체 직원들의 사무실 겸 숙소가 나오는데, 그 집 맞은편의 긴 도로를 따라 피어 있는 화려한 붉은색의 야트로파 인테게리마 (Jatropha integerrima)가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20250303_070334.jpg


주택가 도로 끝 부분에서 남동방향으로 꺾어져 한참을 걷다 보면, 수풀로 우거진 동나이 강변을 만난다.

야트로파와 루엘리아 (Ruellia)가 한 자리에 다정히 피어 있다. 야트로파는 독성이 강하며, 루엘리아는 땅에 꽂기만 하면 사는 하루살이 꽃으로 유명하다.

20250302_070203.jpg


정열의 상징인 부겐빌레아 (Bougainvillea)와 은은한 향기를 자랑하는 재스민 (Jasmine)도 인근에서 나란히 피어 있다.

20250302_071128.jpg


강변을 따라 북서 방향으로 난 기다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소규모 체육시설들과 놀이시설들을 거쳐, 캠핑장과 주말 야외극장을 지나, 셔틀 보트 선착장을 만나게 된다.

셔틀 보트는 셔틀 버스와 더불어, 스완 베이 단지 주민들의 사이공 나들이에 꼭 필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이다.

20250301_114215.jpg


선착장을 지나 강변 산책길 끝까지 가는 길에는 다양한 꽃들을 만날 수 있다.

선착장을 지나자마자 부겐빌레아가 다시 나를 반긴다.

3개의 포에 수줍게 숨어있는 조그만 하얀 꽃이 앙증맞다.

20250302_065449.jpg


스완베이 갤러리 하우스 분수대 옆에는 황금 트럼펫으로도 불리는 알라만다 카타르티카 (Allamanda cathartica)가 수줍게 나를 반긴다.

20250302_065704.jpg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알록달록한 꽃송이가 눈에 띈다.

흰색, 노란색, 분홍색, 붉은색의 부겐빌레아가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있다. 한자리에서 4가지 색상의 부겐빌레아가 한꺼번에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20250302_065951.jpg


다시 주택가로 접어들어 쌀국수 가게와 불교 사원을 지나, 꽁 카페, 아티산 빵집을 돌아가면, 아파트 단지와 빌라 단지 사이로 난 산책로가 나온다. 아침 6시 반 이후의 뜨거워지는 햇볕을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싱가포르 국제학교가 나온다.

9월에 정식 개교 예정인 이 학교는 이미 완공된 본관 건물에 더해 추가로 신축건물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학교가 운영되기 시작하면 유동인구가 많아질 텐데,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아 이곳에 머물고 있는 나는, 예상되는 부산한 분위기에 벌써 마음이 쓰인다.

20250302_080017.jpg
20250302_075759.jpg


학교 인근에는 라오스의 국화인 플루메리아 (Plumeria) 나무가 유독 많다.

하와이에서는 꽃목걸이용 꽃으로도 사용하는 플루메리아 나무 아래에는 새의 부리를 닮은 듯한 헬리코니아 (Heliconia)가 단짝처럼 피어 있다.

20250302_074808.jpg
20250302_074047.jpg
20250302_074940.jpg


그런데, 플루메리아 나무 아래에 늘 헬리코니아만 피어 있는 것이 아쉬웠던 나는, 우연히 플루메리아 나무 아래 루엘리아도 피어 있는 것이 어쩐지 새삼 반갑다.

더군다나, 오늘은 플루메리아 아래 여러 가지 색깔의 부겐빌레아까지 보이니 웬일인가?

20250302_075649.jpg
20250302_075116.jpg


1시간 반가량의 산책을 마치고 집 근처로 돌아오니, 한 무리의 재스민이 외로이 피어 있다.

길 모퉁이에는 알라만다 꽃송이들이 마지막으로 아침의 미소를 보내고 있다.

20250302_080316.jpg
20250302_080122.jpg
20250302_080412.jpg


조석으로 조건 없이 자연이 내게 주는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눈을 호강시켜 주는 나무와 꽃들,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새소리.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욕심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호찌민 인근 다이픅 (大福) 섬을 좋아하는 이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베트남으로의 귀환 (歸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