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T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1만 4,400명이 탈 수 있는 초호화 여객선.
추첨을 통해 모집된 승객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들었어? 북극을 가는 배라더군."
"꼭 북극고래를 보고 말겠어."
들뜬 사람들이 선착장에 모였다.
“아,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 승무원이 강단 위로 올라갔다.
그 곳에는 ‘승선을 축하합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죄송스럽지만, 승선 인원이 줄었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아니 뭐라고?"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알다시피 이 배의 주인은 세계적인 부호이신 리치맨님이시죠.
어제 저녁에, 성대한 파티가 열렸는데
거기서 오늘 출항에 대해 언급을 하셨나봅니다.
글쎄, 그 파티에서 자기도 꼭 북극에 가고 싶다는 지인분들이 132분이나 나왔다는거 아니겠습니까?
다들 대단한 부자시라, 수행 인원이 100명씩은 붙을거고.. 어쩔 수 없이 승선 수를 10분의 1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몇몇 사람이 그런 대중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말을 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 커다란 배를 공짜로 타려던 것 아닙니까? 우리가 감수해야 할 변수이지요.“
사람들의 소란이 잠잠해지자 승무원이 말을 이었다.
“오늘 날짜가 1월 17일이지요. 그렇담... 만사천사백명 중에서 본인의 번호 끝자리가 9이신 분들만 승선하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배의 한 면을 커다란 전광판 삼아, 끝자리가 9번인 사람들의 목록이 표시됐다.
”아, 그리고, 새로 참가하시게 된 부호님들 중 짐을 꾸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이 계신 관계로, 출항은 내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침 9시에 집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뭐라 중얼거리며 흩어졌다.
안전요원들이 그들의 귀가 과정의 질서를 유지했다.
다음 날, 9번 티켓을 가진 사람들이 다시 선착장에 모였다.
어제와 같은 승무원이 다시 강단에 올랐다.
“오늘 승선을 위해 모인 여러분들께 양해 말씀 드립니다. 어제 하루의 시간을 요청하신 한 부호께서 늦잠을 자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발 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추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호 중 한 분께서는 어떤 북극기지를 가지고 계신데, 북극기지에서 발굴된 귀중한 연구 자료들을 이번 기회에 싣고 돌아오시겠다는 계획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일반 참가자 수는 144명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혹감이 퍼졌다.
“편한 방법으로 오늘 일찍 선착장에 도착하신 순서로 144명을 선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함께 배의 한 면에는 144명의 명단이 표시되었다.
”이보세요, 우리도 따지고보면 공짜로 온게 아닙니다. 이 선착장까지 오기 위한 교통비, 체류비, 숙박비까지.“
한 사람이 불만을 터뜨리자 이 곳 저 곳에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맞아요, 저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구요. 지금은 성수기 아닙니까. 티켓 구하는게 하늘의 별 따기에요. 돌아갈 비행기는 또 어떻게 구하란 말입니까?“
“안타깝지만, 개인의 운송수단까지 지원할 수는 없습니다. 배의 티켓가는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미처 본 적도 없는 액수이겠지요. 리치맨님의 친구분들은 모두 정당한 티켓가격을 지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들의 편의를 봐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안전요원의 유도에 이끌려 대거 그 곳에서 떠났다.
어느덧, 약속의 3시가 되고
사람들은 다시 출항의 설레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승무원이 다시 앞으로 나왔다.
“최종 선발된 144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144분을 보니 짐들이 꽤 많아 보이십니다.”
“장장 80일간의 여행이 이어진다고 들었는데, 옷가지는 챙겨야 할 것 아닙니까?”
한 남자가 말했다.
“모든 먹거리, 옷가지, 즐길거리는 모두 배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맨 몸으로 배에 오르면 되는 겁니다. 짐을 추가하시는 경우 탑승할 수 있는 사람 수는 더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놓고 타야지요. 휴대폰은 되겠지요?“
”휴대폰도 안됩니다.“
승무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사진은 어떻게 찍죠?“
”사진은 저희가 찍어드릴 겁니다.“
”그럼 개인정비시간에는요? 뭘 하고 지내지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배에는 즐길거리들이 다양합니다. 일단 배에 탑승하시게 되면, 제한은 없습니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 전기 사용, 수도 사용에는 제한량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배 안이다 보니 공간은 제한이 되지요. 부호분들이 한 분당 8개의 객실을 사용하시고, 딸린 식솔들이 100분이 되다 보니, 여러분들은 10인 1실을 사용하셔야 할 겁니다.“
”10인 1실을 쓰라구요? 그렇게 80일을 생활할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티켓가격을 지불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은 공간이 여러분들이 선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불만에 극에 달했다.
승무원은 그들의 분노를 달래며 말했다.
“워워...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리지요. 인원수를 14명으로 줄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한 방당 1분씩 생활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자, 서로 이야기를 하실 수 있도록 마이크를 드리겠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북극의 오로라를 보는게 평생의 꿈이에요.“
“저는 고래를 꼭 보고싶어요. 그 커다란 몸에서 울려퍼지는 울음소리는 얼마나 신비롭고 두려울까요?”
“저는 작가입니다. 북극에 대한 소설을 집필할거에요.”
“저는 해군 출신입니다. 배 생활은 아주 익숙하죠. 80일이라는 시간을 배 위에서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을거에요.”
“저는 사업가입니다. 돈이 많지만 이 배의 탑승권은 오로지 추첨으로만 주어졌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요. 제게 방을 양도하고 물러나시는 분께는 지금 바로 수표를 써드리겠습니다.”
“저는 아이큐가 180입니다. 똑똑한 제가 북극에 가는 것이 여러분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에스키모입니다. 북극은 여러분께 무척 추울거에요. 저는 추운 날씨에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이지요. 이 곳의 더운 날씨는 저를 숨막히게 해요. 북극을 가면 저만 유일하게 편하게 숨을 쉬며 그 경치를 즐길 수 있을거에요.”
“저는 에스키모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국의 기후는 아주 혹독하죠. 게다가 저는 군복무를 18개월이나 했습니다. 전문적으로 총 쏘는 법을 배웠어요.“
그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 군대에서도 10명이서 한 방을 썼네요. 18개월동안 말이죠. 저는 144명이 다 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저는 시베리아 사람입니다. 툰드라에 살고 있죠. 저는 그저 배 구경을 실컷 하고, 북극에 도착한 후 저희 집 근처를 지나가게 되면 여기서 내려달라고 할 생각입니다.“
”저는 태어나서 한번도 눈을 본 적이 없어요. 북극은 눈의 나라겠죠. 첫 눈을 북극에서 보고 싶네요.“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운명은 항상 제 편이었죠. 왠지 이번에도 배를 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학생입니다. 제가 북극을 본다면 제 인생은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거에요. 어쩌면 북극탐험가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죠.”
“저는 이 학생의 형입니다. 아까 운이 좋다는 분이 계셨는데, 한 집에서 두 명이 모두 당첨될 정도까지는 아니시겠죠.“
승무원은 마이크를 잠시 가져갔다.
“아 잠깐, 지금 열네 분께서 말씀하셨죠?”
“열세명 이야기했습니다.”
말한 사람들 수를 손가락으로 세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럼 지금 열세명이라고 알려주신 분까지 14명이네요. 이로써 14명은 결정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시간은 가고 있습니다. 144명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을 수는 없어요.“
안전요원들이 선착장을 다시 정돈했다.
이제 선착장에는 14명만 남아있었다.
”아, 제가 지금 놀라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희 뒤에 있는 호텔이 보이시나요? 저 곳에 투숙하신 부호님께서 여러분의 모습을 보시더니 무척 흥미를 느끼신 모양입니다.
만사천사백명 중 0.1%가 된 여러분을 보시고 나서, 한 번의 게임을 더 제안하셨습니다. 여러분 중 단 한 명만 승선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것은, 그 한 분이 제대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정식 티켓값을 지불하시겠다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솔깃해했다.
“그럼 마지막 게임은 투표로 진행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몇 마디 말을 주고 받더니, 투표를 시작했다.
투표 결과는,
동생은 2표,
사업가는 10표,
똑똑한 남자는 1표,
운이 좋은 남자 1표였다.
그렇게 사업가는 9장의 수표를 써주고 배에 승선했다.
사업가가 배에 오르자, 승선해있던 부호들이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따뜻하게 그를 반겨주었다.
한 사람이 쿡쿡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리치맨, 아주 재밌었어.”
작가의 말
리치맨에게 승선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