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ONY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어느날 새벽 2시에 잠에서 깼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그대로 잠들어버린 것이다.
빨래를 널어야겠다는 생각에
일어나 세탁기의 빨래를 건조대에 널었다.
5시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했기에
그러고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꿈 속에서 나는 한 작은 예배당에 있었다.
의자가 빽빽하게 놓여있었지만
공간은 텅 비어 보였다.
설교대 옆에는 작은 부속실이 있었는데
문이 열려있었다.
가장 안쪽에 2단 타워형 세탁기와 같은 기구가 보였는데,
그 안에 작은 꼬마 아이가 있는걸 보았다.
꿈이여서인지 나는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꿈 속의 장면을 관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쿵쿵쿵'
그런데 별안간 꼬마 아이가 동그란 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
세탁기를 닮은 기구 안에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울부짖었다.
"꺼내줘, 꺼내줘, 꺼내줘!"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얼른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나 말고 그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지만,
선뜻 나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 그 아이를 방치하는 내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탁기를 닮은 기구 속은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찼다.
소년의 괴로운 음성은 커져갔다.
"나가자."
나는 옆에 앉은 애인에게 말했다.
애인은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우리는 예배당을 나왔고, 곧 다른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 속의 풍경은 계속 바뀌었다. 어느 순간 어린 소녀가 나타났고, 나는 무심코 그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세탁기를 닮은 기구 속에 갇힌 소년이 떠올랐다. 그 순간, 무언가 놓친 것이 있다고 생각한 나는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나는 몇 개의 꿈, 풍경, 기억을 넘어 처음의 예배당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다.
예배당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부속실로 들어갔다.
부속실 안에서 발견한 세탁기를 닮은 기구의 둥근 창 안을 들여다 보니 속에는 검은 재가 가득했다.
둥근 창에는 세척을 마친 세탁기의 내부와 같이
아직도 습기가 가득 차있었는데
습기가 지워진 자리에 숫자가 보였다.
17
숫자를 보자 나는 깜짝 놀라 정신이 아득해졌다. 꿈에서 깨어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꿈 속에 머무르기 위해 정신을 부여잡고 천천히 시야를 옆으로 돌렸다.
8, 45, 28, 3, 11
소년이 죽어가면서 자신의 재를 묻혀 창에 써넣은 숫자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꿈 속의 세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6자리 숫자가 1에서 45까지의 범위이고, 서로 겹치지 않음을 확인했다.
다음 순간 나는 어두운 침실에서 눈을 떴다. 나는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에 내가 본 6가지 숫자를 적었다.
마음이 놓인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파묘 잘 끝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화장했다.”
나는 생각했다. 꿈에서 본 어린 소년과 소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였을 것이라고.
저녁 때 애인을 만나 말했다.
"나 꿈 꿨다. 내 꿈 사갈래?" 나는 애인에게 꿈을 팔았다. 꿈 속에서 본 숫자들과 같은 번호로 두 묶음, 각 7장씩을 산 애인은 한 묶음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 로또에서 3등을 차지했다. 꿈 속에서 본 번호는 6개 중 5개가 맞았다. 다만, 1개는 보너스 번호였다. 나는 생각했다. 꿈 속에서 6개의 숫자가 아니라 보너스 번호까지 7개의 숫자를 봤어야 했다고. 마지막 11은 7개 숫자를 6개로 보려고 한 탓에 발생한 디코딩 오류가 아니었을까, 라고.
작가의 말
꿈과 현실이 맞닿은 그 순간, 인생의 작은 진실을 엿보았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꿈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이렇듯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삶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꿈이 아니라, 제가 직접 경험한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