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UX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흐릿한 안개가 짙게 드리운 강 위로 작은 뗏목 하나가 위태롭게 내려가고 있었다. 뗏목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탑승해 있었다. 뱃사공을 포함해 한 명의 노인, 젊은 청년, 그리고 어린 소년과 여인. 그들은 거센 물살에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젊은 청년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강을 타고 어디를 가는 거요?” 하지만 뱃사공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노를 저으며 뗏목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쓰러진 나무들이 거센 강물의 물결에 휩쓸려 뒤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청년은 다시 한 번 불안한 눈빛으로 강물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강을 역류하는 모양인데..“
옆에 있던 노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소. 강의 하류로 가는 중이오.”
청년은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강의 하류인데 이토록 물이 거꾸로 간단 말이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이 지역은 일년에 몇 번 강이 역류하는 일이 있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온난화로 태풍과 폭풍이 빈번하고, 강력한 바람과 해일로 인해 바닷물이 역류하기 때문이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센 물살을 바라봤다. “아무튼 빠지면 목숨 추리기 어렵겠구만.”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가 말을 꺼냈다. “이런 작은 뗏목같은 배를 타고 가는게 말이나 된단 말이오.“ 그는 배의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통성명이나 합시다.”
한 소년이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헤롯이라고 합니다. 하류에 내 큰아버님이 사시는데, 그 곳에 심부름이 있어 갔다가 글쎄, 음식을 대접받고 배웅을 마다하며 길을 떠난다는것이 심부름삯을 두고 왔지 뭐요.”
아주머니가 뒤따라 말했다. “나는 하류에 사는 아이를 보러가는 길입니다. 오랫동안 통 보지를 못했어요. 그동안 일도 바쁘고, 일상에 치여 만나러 가지를 못했는데, 짬이 되어 이렇게 길을 나서는 중이지요.”
노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같은 노인이 집에서 무엇을 하겠소. 이 강을 거니는것이 내 유일한 취미인데, 오늘은 날을 잘못 골랐나보오. 이토록 날씨가 험해서야...”
노인은 젊은 청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젊은 청년은 무슨 일로 이 강을 건너는거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도 강을 건너는 이유가 생각났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하류에 법정을 가는 길이오. 글쎄, 내 유일한 재산의 압류 통지서가 왔지 뭐요. 분명 착오가 분명해서 여러번 전보를 부쳤는데 영 대답이 없소. 그래서 직접 따지러 가는 길이오. 아마도 내, 이전에 도박장에서 돈을 빌린 친구가 나를 고소한 모양인데, 이 강에 맹세코, 그 녀석을 가만 두지 않겠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참 험상궂군요.” 아주머니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커다란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궁!” 뗏목 위로 물이 새기 시작했다.
“물이 샙니다!” 소년이 외쳤다.
배에 작은 구멍이 뚫려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청년은 못마땅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남자는 소년을 흘깃 보더니 밀어냈다.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강물로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경악하며 남자를 타박했지만, 그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뱃사공은 이 난리에도 가만히 있었다.
“불만은 지옥에서나 하시지.” 그는 차례로 사람들을 밀어냈고, 끝내 뱃사공까지 강물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홀로 남은 청년은 노를 저어 뗏목을 간신히 하류까지 몰고 갔다. 물에 흠뻑 젖은 상태로 나룻가에 도착한 그는 숨을 몰아쉬며 배를 대었다. 나룻가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조금 안정되었다.
검은 태양이 하늘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뱃사공은 물속에서 기어 올라와 기슭에서 그를 마주했다. “아니, 어떻게…?” 남자는 놀란 눈으로 뱃사공을 쳐다보았다. 뱃사공은 말없이 손목에 묶인 끈을 들어 보였다.
기슭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한 여자아이가 투구를 들고 있었다. “아니, 헤롯님이 오실 때가 됐는데 왜 오지 않으실까?”
나이가 많은 할머니도 하염없이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오늘 온다고 했는데...”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용케 여기까지 왔군.” 남자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몸을 압류한다고 했더니 직접 이렇게 행차하셨구만. 자, 가자. 네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던 녀석도 여기 와 있다.”
청년은 그 말에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뜨끔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미 그는 도망칠 수 없는 운명에 갇혀 있었다.
남자가 그를 데리고 사라지자, 나루터에 있던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자기가 어딜 온지도 모르고 저렇게 앞장서 오다니, 참으로 고약한 녀석이로군. 스틱스강이 역류하는 시기에 타르타로스까지 찾아오다니.”
그들의 옆으로, 스틱스강은 다시 조용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이 작품은 인간의 죄악과 그로 인한 대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틱스강은 그리스 신화에서 죽은 자의 영혼이 건너는 강으로, 여기서는 그 강이 역류하는 기이한 현상을 통해 죽음과 심판의 불가피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이유로 뗏목에 올라타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주인공인 젊은 청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하지만, 그가 최후에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죄악에 대한 처벌입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그것이 불러오는 비극적인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끝내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는 순간,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책임이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