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안녕하세요,
이번에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인물 1위에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내 앞에 앉은 남자는 한국인으로서 세계 10위의 부자에 이른 남자였다.
그는 겸손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최연소 억만장자이기도 하시죠. 워커홀릭으로 유명하시구요, 이 인터뷰 이후에도 신제품 발표 컨퍼런스가 예정되어 있으시죠?"
그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아마 이 제품으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크게 바뀌게 될 겁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인터뷰 대본을 훑었다.
"그리고 오늘이 40세 생일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
검고 깊은 눈, 그 눈에는 이상과 열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네 그렇죠.
제가 7시 29분 1초에 태어났으니까 이제 10분하고도 18초 정도 후면 완벽히 40살이 되는거네요."
그가 시계를 훌끗 보며 말했다.
나는 속으로 참 정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저 정도로 일상을 정밀하게 살아야 부자가 되는 것일까?
"참 정밀하시네요."
"사실 40세 생일은 제게 매우 특별합니다. 20년 전 이 시간, 제 회사가 시작되었거든요."
"네, 20살의 어린 나이에 합격한 대학을 그만두시고, 회사에 들어와서, 많은 고초를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서게 되신 것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비결을 알려주세요."
그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잠시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그가 무엇인가 결심한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비결이라기보다는.. 저의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20년 전,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입학한 저는 무척 들떠있었습니다.
그 날은 과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어느 풀숲가에서 이 걸 발견했죠."
그는 평범해보이는 직사각형 거울과 같은 물건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흥미가 생겼다.
"이게 뭐죠? 평범한 거울같은데요."
"아직까지는 평범한 거울같죠. 그러나 제가 이걸 주목하게 된 것은,
이 거울에서 뭔가가 쓰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글자였어요.
더 정확히는 편지였지요.
제가 거울을 들어올렸을 때, 장문의 글이 제 눈에 들어왔어요.
본인을 60살의 나라고 소개하면서,
20살의 나의 안부를 묻더군요.
그는 사람의 인생은 20살까지 쌓아놓은 것으로 결정된다고 믿는다고 했어요."
나는 흠짓 놀랐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저는 조금 놀랐죠. 최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제 마음이 꼭 그랬거든요.
그는 이 거울을 통해 자신이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했어요.
그 때부터 저는 모든 것을 그 거울에 따라 진행하기 시작했어요.
알다시피 대학을 중퇴했고,
회사를 차리고,
결혼을 하고,
이렇게 돈을 벌었죠."
그가 양 팔을 크게 벌리며 웃음지었다. 그의 손목에 명품 시계와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반짝였다.
그가 이어 설명했다.
"그리고 제 시간대에서 한 해가 지날수록, 편지를 보내는 본인은 점점 젊어질 거라고 했죠.
그러니까 저는 한 해가 지나면 나이를 먹지만, 편지를 쓰는 나는 한 해 전에 조언을 하는 사람이 되는거죠."
나는 그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것만 같고 이해가 안되는 선택이지만 그저 따를 뿐이었는데, 점점 그 사람이 하는 말 자체가 이해가 되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요즘에는 마치 친구같아요."
그가 웃었다.
"잠깐만요, 60살 전의 내가 20살의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한 해가 갈수록 20살의 나와 60살의 나는 점점 가까워져서,
결국은 40살에서 만난다는 거잖아요.
그럼 오늘이네요?"
그가 다시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네.. 그렇지요. 이제 5분하고 33초가 남았군요.
아무튼, 저는 해가 갈수록 부자가 되었고,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는 무엇인가 기쁜 일을 앞두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으셨나요? 60살의 본인이라고 하는 말을 믿기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물론 그렇습니다. 제가 사람을 잘 믿기는 합니다."
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제가 60살의 나에게 편지를 받았을 때, 그 것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20살의 제가 가진 것과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더군요"
그가 어깨를 으쓱 들어보였다.
"20살까지 이룬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하셨는데요, 그게 바뀔 일은 없을까요?"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얼굴을 찡그려보았다.
"네, 저는 아직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빠르게 물었다.
"그게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일까요?"
나의 질문에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렇습니다. 사실은, 오늘 발표하려는게 바로 이 거울이에요. 20년동안 제가 계획했던 것, 그리고 이 편지가 이끈 것이 조금 후의 컨퍼런스입니다.
저는 모든, 스무살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편지를 받을 수 있도록 이 거울을 손 보았습니다. 미리 공개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이제 사람들은 미래의 자신과 소통할 수 있게 될겁니다."
PD가 나에게 사인을 보였다.
PD는 자신의 손목 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PD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럼 또, 그럼 60살의 자신이 편지를 보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이셨나요?"
"그 때까지 살아있구나 였죠"
우리는 함께 웃었다.
"사실, 그게 제게 큰 희망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필체는 아주 분명하고 명료해보였으니 건강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걱정은 덜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자신의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자,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군요.
이제 제게 올 마지막 편지를 한 번 읽어볼까요."
그는 들떠보였고, 약간의 장난기를 머금은 듯 했다.
거울에는 글자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신비로운 광경을 지켜보았다.
거울을 마주한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곧 얼굴을 환하게 풀며 나에게 말했다.
"역시나, 거울은 정확하군요."
그가 나에게 거울을 내밀었다.
거울에는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얼른 인터뷰를 끝내.'
그가 웃었다.
"인터뷰가 끝날 시간인가보군요."
그가 입고 있는 정장 자켓을 한 번 털더니, 문득 나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담당자님의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나는 대답했다.
"28살입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한 번 사용해보시지요."
나는 거울을 건내받았다.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글씨가 써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는 당황했고,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거울 속에 굳어버린 내 모습이 비쳤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나에게서 거울을 가져갔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송 관계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방금 내가 본 문장이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울 속 미래의 나는 완성되지 않은 단 한 문장을 썼다.
'반드시 그를 막아야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