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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Sep 18. 2024

타임머신

TIME MACHINE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네 엄마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 때로 돌아간다면 만나지 않았을 거다.“


아빠가 내 연구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나는 테스트 중이던 타임머신 장치를 벗었다.


”제가 마침 타임머신을 만들었는데 사용해보실래요?“


아빠는 좀 멈짓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빠를 연구실 가운데 의자에 앉혔다.


”지금의 기억은 모두 가지고 가는거에요.“


내가 규칙을 설명했다.


아빠는 좀 불안해보였다.


”10번 조금 넘게 테스트 해봤으니까 안심하세요.


이걸 쓰세요.“


나는 타임머신 장치를 아빠에게 건냈다.


언젠가 아빠가 줬던 오래된 시계도 함께 벗겨 건냈다.


“원인이 바뀌면 결과도 바뀌어요. 시간의 흐름이 재조정되면 과거의 세계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날거에요. 시계를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시간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면서 시계 바늘이 빙그르르 돌거에요.”


나는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돌아올 땐, 10을 거꾸로 세세요. 0까지요.


숫자를 하나씩 부를 때마다 과거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할 거에요. 0이 되었을 때 다시 지금의 시간으로 돌아오는 거에요.


반드시 소리 내셔야 해요. 아셨죠?“


”알았다.“


“그리고 태양이 붉어지는 순간이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에요. 아셨죠?”


“태양은 원래 붉은색이지 않니?”


“그런가요? 어쨌든 과거의 세계에서는 태양은 흰색이에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 이제 아빠가 엄마와 만난 그 때로 돌아갑니다,” 나는 장치의 전원을 켜며 말했다. “레드 썬.“


아빠는 이제 과거의 한 순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 나는 자그만한 실수를 알아차렸다.


“앗, 테스트용이라 태양을 계속 켜두었네.”


붉은 태양이 작렬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이었다.


나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내 옆에 앉은 여자를 힐끗 쳐다봤다.


‘아내다!’


나는 숨이 멎을만큼 놀랐다.


그는 이 곳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이제 곧있으면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날 것이고,


걸어가다가 옷을 흘릴 것이다.


과거의 그는 그 옷을 주워다 그녀에게 건냈고,


그 것을 계기로 카페를 같이 가게 된다.


이 순간이 그와 아내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어림도 없지.’


곧 아내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공원 바닥에 빨간 바람막이를 떨어뜨렸다.


나는 떨어진 바람막이를 보고도 모른척했다.


나는 시간의 흐름이 바뀐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소용돌이가 치고, 나뭇잎들이 바람에 흣날렸다.


나는 얼른 아들이 준 시계를 보았다.


시계바늘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성공이다!”


그 때 그녀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여보, 뭐해. 옷 안주워주고.”


’뭐라고? 왜 나를 여보라고 부르는 거지.‘


그녀는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혼란 속에 빠졌다.


그 때 그녀를 포함한 세계가 흐려지더니, 내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실내였다.


그 곳은 회사 근처 식당이었다.


기억나는 곳이었다.


회사를 옮기게 되어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몇 번 방문했던 곳이었다.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젊어져 있었다.


그는 쟁반에 그의 음식을 담아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때, 통로가에 앉은 여자가 일어나면서 내 쟁반을 쳐버렸다.


다행히 음식은 흐르지 않았다.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나는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고 다시 깜짝 놀랐다.


아내였다.


“이거 참 끈질긴 여자구만.“


그녀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옷 안 젖으셨어요?“


”아 네, 제가 반사신경이 뛰어난 편이어서 말이죠.“


나는 그녀의 얼굴을 외면하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자 그럼,”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다시 엮이게 될 수는 없었다.


그 때 식당 안의 불이 깜박였다.


암전과 노란 빛이 반복됐다.


그러는 중에 내 앞의 그녀의 얼굴이 점점 기괴하게 바뀌고 있었다.


어느덧 암전이 끝나자 그녀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보, 기척도 없이 오면 어떡해, 깜짝 놀랐잖아.“


’이게 뭐야, 왜 자꾸 나를 여보라고 부르는거야.‘


다시 눈 앞이 흐려지더니, 이번에 나는 동료와 자주 가던 술집 안에 있었다.


그 곳에서 그는 마음에 드는 한 여성을 만났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지금 그녀는 옆 테이블에는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설마...’


나는 불안한 심정을 숨기지 않으며,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봤다.


아내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술을 좀 먹었는지,


몸이 휘청였다. 어서 이 술집을 나가야 했다.


”어, 어디가요?“


뒤에서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말했다.


나는 우뚝 서서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방긋 웃었다.


“벌써 집에 가게요?”


나는 소름이 끼쳤다.


나는 술집문을 박차고 나왔다.


밖에는 한낮인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저 술집은 밤에만 여는데.’


나는 눈이 부셔 눈을 가렸다.


다시 손을 내렸을 때, 나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대학생일 때, 자주 사먹던 가게였다.


”어서오세요.“


내가 들어가자 알바생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오랜만에 그 아이스크림의 맛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설렜다.


”민초 하나 주세요.”


그러던 중 나는 알바생과 눈이 마주쳤다.


알바생은 아내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오던 가게, 알바생의 얼굴도 수없이 봤을텐데, 그 알바생이 지금 아내가 되었을 줄은 몰랐다. 그러고보니 아내가 예전에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만 같다.


”민초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내오다가 냉장고에 걸려 아이스크림의 한 뭉텅이가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앗 죄송해요. 다시 만들어드릴게요.”


“아녜요, 한 입만 먹으면 돼요.”


나는 그녀에게 아이스크림을 받아 가게 밖으로 나왔다.


민초 한 입을 입으로 물었다.


맛있었다.


눈 앞의 공간이 바뀌었다.


나는 다음 공간으로 이동했다.


영화관이었다.


앞에는 팝콘이 놓여있었다.


그가 처음 혼자 갔던 영화관, 옆에는 그처럼 혼자온 듯한 여자가 있었다.


‘아내다.’


나는 곧바로 영화관을 나오려고 했지만, 곧 재미있는 도입부만 보고 나오기로 결정했다.


영화를 보던 중, 그녀는 실수로 내 팝콘봉투에 손을 집어넣었고, 나의 손과 맞닿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게 자기 팝콘봉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자신의 팝콘봉투는 오른편에 두고도,


그녀는 꿋꿋이 러닝 타임 내내 나의 팝콘을 집어 먹었다.


그녀가 내 팝콘을 다 먹어치우는 동안, 나는 묵묵히 앞만 보았다.


나의 심지는 굳셌다.


곧이어, 영화의 배경 음악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영화관이 암전되며 나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했다.


새로운 공간은 버스킹이 진행되고 있는 거리였다.


나는 공연자 맞은편에 친구와 함께 웃고 있는 아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도 저렇게 웃어주면 좋겠는데?‘


잠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곧 몸을 돌려 버스킹 거리를 빠져나왔다.


골목을 돌자, 내 눈 앞에는 대학교 건물의 현관이 나타났다.


“이야, 오랜만인데.”


내 기분은 대학생이 된 것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나는 동아리방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엘리베이터의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젊은 아내가 서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여기는 내 학교인데.’


그녀는 나를 지나쳐 갔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아쉽게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다른 학교의 도서관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없던 책을 빌리러 간 것이다.


나는 책을 빌려


일렬로 여러 테이블이 놓인 곳의 가장 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대각선쪽에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도 그녀는 친구와 함께였다.


나는 한참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니, 공부는 언제 하려는거야.’


그녀는 한참 공부가 아닌 무언가에 열중한 듯하더니,


곧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나가버렸다.


나도 도서관을 나오면서 힐끗 아내가 쓴 글씨를 쳐다보았다.


'SAD BOY...'라고 쓰여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인상을 썼다.


도서관의 불빛이 깜박이기 시작하더니,


곧 도서관은 대학 축제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옆에서 연예인을 구경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른 자리를 떴다.


어느새 나는 버스 안에 있었다.


부대에 복귀하는 길이었다.


나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대각선 방향에 아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들은 정다워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애정행각을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인가 보군‘


나는 마음 속에 질투심이 솟는것을 느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새해 첫날 카운트다운의 현장에서, 그리고 바닷가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상하게 모든 공간은 낮과 같이 붉은 태양이 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간 과거의 공간 속에서 나는 그녀를 잘 알아차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점점 젊어졌고, 나또한 점점 어려졌다.


다음 공간은 중학교 때 수련회를 갔을 때였다.


“다른 학교 학생들도 입소해있어서 같이 캠프파이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나이가 같은 소년들은 호기심이 가득찬 눈으로 여학교 학생들을 바라봤다.


캠프 파이어가 시작됐다.


“자, 마주보는 학생과 손을 잡으세요.”


나는 맞은편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앳되었고, 조금은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불이 화륵 올라오자, 그녀의 눈에 놀라움이 비쳤다.


“자, 이제 눈을 감으세요. 집에 있는 부모님을 생각해보세요.”


나는 이제 내가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눈을 감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감은 눈을 잠시 뜨더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왜 눈 안 감아?”


그녀의 얼굴은 붉은 태양과 캠프파이어 불빛에 상기되있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거든.”


내가 말했다.


그녀가 씽긋 웃었다.


그녀도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십”


그녀의 속눈썹이 부드럽게 떨렸다.


“구”


그녀가 살며시 미소짓는 모습이 느리게 재생돠었다.


“팔”


나는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칠”


그녀의 눈에 붉은 불빛이 비쳐보였다.


“육”


이제 그녀의 모습이 영원에 가깝게 느려졌다.


“오”


나는 그녀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


그녀의 눈이 조금씩 반달 모양으로 좁혀져갔다.


“삼”


나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던 그녀를 생각했다.


“이“


영화관에서 옆 자리에 앉아있던 그녀, 대학 축제에서 본 모습이 떠올랐다.


”일“


도서관에서 무언가에 열중하던 소녀, 식당에서 열심히 밥을 먹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영“


영원과 같던 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나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재미있으셨어요?”


아들이 자신의 엄마를 닮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셨어요.


태양이 붉은 색으로 변하는 순간이 나오는 타이밍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나는 말했다.


“태양을 볼 새도 없었구나. 네 엄마를 보느라.”



작가의 말


사랑은 개인의 선택이나 우연의 결과가 아닌 어쩌면 필연적으로 이끌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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