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AND I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해리는 외국인이었다.
그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는데,
그는 내가 태어나 처음 만난 백인이었다.
“안녕하쉐요,”
그가 준비한 듯한 인사말을 했다.
“나는 해뤼입니다.“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반장 옆 자리에 앉아라,”
선생님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내 옆에 앉아있는 아이로 향했다.
“희원이가 자리 옮기고.“
내 옆 자리에 앉아있던 애가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해리는 내 옆 자리에 와서 앉았다.
가까이서 본 그의 흰 피부에는 빨간 주근깨가 가득했다.
조례가 끝나자, 아이들은 그에게 몰려왔다.
”해리, 어디에서 왔어?“
한 아이가 물었다.
”엄, 나는 미쿡에서 왔어.“
그는 미국을 강조하며 말했다.
그는 내 생각보다 한국어를 꽤 잘했다. 그의 말에는 영어식의 강세가 들어있었다.
”한국음식 잘 먹어?“
다른 아이가 물었다.
”얼, 김취랑 김취볶음밥 먹었고,
어줴는 김취찌개 먹었고,“
그가 눈을 하늘로 쳐들고,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그가 먹은 음식들을 읊었다.
그의 흰 몸은 또래보다 컸다.
”해리, 너는 특기가 뭐야?“
한 아이가 물었다.
”나는,“
그가 벌떡 일어났다.
얼굴은 의기양양했다.
”힘이 아주 쒜.”
그가 두 팔을 들어올려 보디빌더의 자세를 취했다.
“오오”
아이들의 호응이 이어지자, 그는 몸을 숙이더니 자신의 책상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 바람에 내 책상에 있던 지리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는 과장되게 표정을 쥐어짰다.
흰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윽고, 그는 책상을 내려놓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몇 번의 보디빌딩 자세를 취한 후 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럭저럭 학교 생활을 해냈다.
그의 행동과 말은 조금 과장되어 보이는 구석은 있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꽤 수월하게 적응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별 것 아닌 일에 얼굴을 붉히고, 쉽게 흥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대로는,
그 미국인은 한국인들 사이에 잘 녹아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교 시간만 되면 그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는 학생들 중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2학기가 되었다.
그는 명실상부하게, 우리 반의 마스코트였는데,
선생님들도 그걸 의식하고 있었다.
처음 반에 들어와 인사를 할 때에도,
“해리 점심은 잘 먹었어?”
이런 식으로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발표가 있을 때면 아이들은 “해리! 해리!”하고 외쳐댔다.
그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지만, 깔아놓은 멍석을 외면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의 이름이 불릴 때면 언제나 그는 번쩍 일어나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그가 생각하는 답을 이야기하곤 했다.
체육시간에서도, 그는 눈길을 끌었다.
그의 달리기하는 모습을 우리 반 학생들 뿐만 아니라 전교생들의 눈이 따라갔다.
엉거주춤 뛰는 폼이 자연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뛰었다.
비록 내 눈에는 그게 연기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그는 주어진 상황에 충실히 몰입하고 있는 듯 했다.
하루는 그가 수줍은 모습으로 나에게 물었다.
“우리 교회에서 Thanksgiving Day,”
그가 유창한 영어 발음으로 말했다.
“파티가 있어, 츄수감사절.”
나는 그의 말투에서, 그가 나를 베스트프렌드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추수감사절은 좀 신기한걸.’
나는 생각했다.
“퉈키, 퉈키도 있어.“
그가 몸을 부풀려 칠면조를 연상시키며 말했다.
나를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고, 어느 휴일,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교회로 가게 되었다.
그가 알려준 주소로 가자 그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긔가 내 집이야.”
그가 말했다.
계단으로 올라가니, 평범한 갈색 나무문이 나왔고,
그 안에는 그의 가족들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풍채가 좋은 백인이었다.
그는 반갑게 나를 맞았다.
“@%$₩&/?”
그는 한국어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고,
말에 영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내부는 온통 분홍색이었다. 분홍색 벽지 탓이었다. 그 벽지에는 알록달록한 둥근 무늬들이 그려져 있었다.
해리는 내 손을 잡고, 교회 시설을 구경시켜 주기 시작했다.
그 곳은 교습학원과 같이 좁은 복도 양 옆에 방이 있는 구조였는데, 복도가 여러번 굽이쳐서, 곧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게 되었다.
‘나갈 때는 해리가 알려주겠지.’
나는 마음을 편히 먹었다.
드디어,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는 방에 도착했다.
테이블 한가운데 거대한 닭같은 칠면조가 올려져있고,
주변에 미국식 요리들과 식기가 놓여있었다.
테이블 위는 내가 미국 드라마에서 보던 풍경과 비슷했고, 나는 그 모습을 실제로 보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해리의 아버지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고,
해리와 그의 풍채 좋은 백인 어머니도 그와 함께 눈을 감았다.
나 또한 그들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았다.
교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중간 중간 뒤를 돌아, 해맑은 표정으로 조금은 어설프게 손을 흔들고 있는 해리에게
크게 손인사를 해보였다.
그가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심 궁금했던 그의 집을 알게 된 것과, 미국 교회라는 곳을 가본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가 ‘집’이라고 표현한 것을 떠올리며,
나는 내가 방문했던 그 곳이 교회이자, 그가 사는 집일 것이라고 유추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교회란, 조금은 더 독립적이고, 특별한 형태의 종교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든 생각으로, 교회 안에는 나를 포함해 4명밖에 없었던 것 같았지만,
나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
추수감사절이었던 그 날 이후,
그의 얼굴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터져있던 것을 시작으로,
베인 흔적, 긁힌 흔적들이 생겨났다.
어쩔때는 왼쪽 눈두덩이 아래에 멍이 들어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사회 시간, 그가 발표를 하기 위해 과장된 몸짓으로 팔을 들어올렸을 때, 그의 팔뚝에 든 멍을 발견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걸까?’
왠지 해리의 모습은 요즘들어 조금 멍해보였다.
사단은 미술 시간에 벌어졌다.
가위와 종이로 공예를 하는 시간,
해리는 가위질에 열중이었다.
가위는 두 명당 하나씩 지급이 되었다.
그의 옆 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가위 좀.”
해리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에 들고 있던 가위를 그녀에게 건냈다.
“악.”
단발마의 비명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녀의 손을 바라봤다.
가위가 그녀의 손바닥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얼굴을 조금 찡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조금은 벙쩌있는 상태였다.
해리는 당황한 듯 했다.
그의 눈이 놀라 커다래졌다.
“미안,“
그가 손사레를 쳤다.
”내가 뽑아줄궤.“
그가 가위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비로소, 그녀에게 관통의 아픔이 전해진 듯 했다.
그녀가 아픔에 겨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달려와 해리를 제지했다.
그녀는 손바닥에 가위가 박힌채, 병원으로 이송됐다.
해리는 그저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집에 가니 엄마가 통화 중이었다.
“아 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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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깜짝 놀라서 그런 걸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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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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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 성장에 문제가 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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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녀를 지나쳐 내 방으로 갔다.
‘뚝’
전화기를 내려놓는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그 자세 그대로 목덜미가 공중에 들려
몸이 둥둥 떠서 뒤로 물러나더니,
안방문 앞에서 몸을 반 바퀴 돌려
그 방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내 방문을 닫았다.
‘해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 걸까?’
내가 생각했다.
그 일 이후 해리는 전학을 가게 됐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 학년에 올라갔을 때,
반에는 새로운 애가 전학을 왔다.
이번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아이 토미였다.
작가의 말
낯선 곳에서의 만남은, 때로는 서로 다른 모습 속에 감춰진 상처들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