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나 세상이 아닌 자신을 잘 이해하는 것이 곧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요,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버킷리스트
"내 마음은 아주 넓지는 않을지언정 개방적이고 약점을 담대히 드러낼 줄 안다."
내가 만들었던 버킷리스트 중에는 자서전 형식으로 인생을 되돌아보며 책을 써보는 것이 있었는데,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브런치라는 앱을 접하게 되면서작가가 되었고, 글을 쓰게 된지도 4개월이 좀 넘은 것 같다.
글 한 편을 적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에만 한 달 정도 걸렸었다. 하지만 독서와 작문에 대한 내공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면서, 문장도 깔끔해지고 글을 완성하는 시간도 절약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는데, 글쓰기에대한 나름의 철학을 구성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관련된 이야기들을서술해보기로 한다.
인문학이나 전문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그저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 호기심이 많을 뿐이며, 일단 책이 선정되면 그에 대한 관련된 자료를 찾고, 스스로 탐구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남들보다 다소 유리한 점에 있다면문법과 논리에 대한 체계가 어느 정도 잡혀있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부분적인 지식에 불과하며, 평소에 책을 가까이 접하고, 자주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써보는 것이 근본적인 것이며, 가장 중요하다. 뭐든지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기술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스타일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그대는 오래전부터 특혜를 받고 살아왔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구해오는 문고판이나 이웃집에서 빌려온 책들이 눈에 보일 때마다 읽고 또 읽었다. 학교에서 글쓰기나 백일장 대회를 열면, 느끼는 대로 글을 썼고, 상을 많이 받기도 하였다. 그러한 재능을 잘 살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종합적인 사고보다는 암기능력을 훨씬 우선시했고 심지어 문학과 독서라는 과목도 그런 식으로 가르쳤다.
지금도 마찬가지만, 인문계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같은 곳을 제외하고는 취업하기가 힘들었고, 수학을너무싫어했기 때문에 선택한 곳이 법학과였다.
한자도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데, 두껍기까지 한 책들은 처음부터 부담으로 느껴졌고, 토론식 수업과 논술형 답안 작성은 너무나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도망치듯이 군대로 갔다. 복학 후 뒤쳐진 공부를 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을 했고, 옥편으로 한자를 찾으며 책을 읽었지만 무슨 뜻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당시, 젊은 교수님이 민법강의를 맡으셨는데, 그것은다른 과목과 달리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방식이었다.그 강의는 우리에게 너무 파격적이었고, 기라성 같아 보였던 선배들마저 칼 같은 지적 앞에서 처참하게 깨졌다.
차례가 다가올수록 답답해서 숨이 막혔다. 강의 날짜가 코앞에 다가오기 전까지 도서관에서 관련된 책과 논문을 뒤졌고, 해당 범위의 사법고시 강의 테이프를 구해서 들었다. 그러한 자료들 중에서 내가 가장 이해하기 편한 형태로 자료를 편집하다가 보니, 어느 정도 글의 형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목차를 만들고, 해당되는 학설과 판례를 삽입한 후 정리하고 보니 꽤 그럴싸해 보였다.
걱정을 많이 했었지만, 막상 발표를 하게 되었을 때는 쏟아지는 질문과 공격에 적절하게 방어할 수 있었고, 그 수업에서 처음으로 칭찬받는 학생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내 스타일이라부를 수 있을 만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오마이뉴스'라는 매체에도 이따금씩 글을 싣기도 하였다.
책을 읽는 방법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아무리 좋은 내용이 보이더라도 절대 줄을 긋거나, 테이프로 표시해가면서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책에 표시하여 버리면, 다음에 읽을 때에는 줄을 긋지 않는 다른 부분들이 눈에 잘 안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구절이 보이면 직접 손으로 베껴 적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활자와 내용은 이미 고정되어 있더라도,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고 그에 대한 해석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맥락이 어느 정도 파악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키워드를 정리한 후, 도서관에 가서 참고할 수 있는 도서를 찾는데, 그것은 꼭 관련된 분야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질적인 곳에서 의외의 연결고리를 찾게 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단서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고, 내용들이 연결되기 시작되면서 책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들은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도 한 번만에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따라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여 지레짐작하여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고 그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책의 줄거리를 파악하거나 결론을 추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요즈음에는 여러 가지 독서방법론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나는 그런 것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지 잘 모르겠고, 정독해서 읽는 것보다 좋은 방법론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속독도 어느 정도 책의 맥락이 파악된 후에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한 번에 된다면 그 사람은사기꾼이거나 천재다.
단순함의 가치
"단순함이 우리를 불행의 부재로 이끈다면 우리는 곧 굉장히 행복한 상태로 이끌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치밀한 논리로 그물처럼 촘촘하게 글을 구성할 때,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러한 방식으로 글을 쓰려면, 일단 구할 수 있는 자료에는 한계가 있고, 충분히 자료를 수집한다고 해도 그만큼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는 것 없이주제와 무리하게 연동시키려다 보면, 문장이 난삽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고의 과정 역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싸이월드가 복원된 후 대학교 때, 썼던 글을 다시 정리해서 브런치 앱에 올렸는데, 그간 쓰고 있던 글보다 훨씬 반응이 좋아서 당황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눈높이에 맞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글에 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가급적 인용문이나 전문용어 쓰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초기에는 여러 가지 학설을 병치시켜 결론을 이끌어내는 식으로 글을 전개했다면 요즈음에는 하나의 문장을 선정하고 연상되는 생각과 감상들을 기술한 후, 예전처럼 장황한 설명을 늘여 놓거나 그것을 통해 설득하려는 방식보다는, 읽는 사람에게 판단 여지를 남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런 식으로 글을 구성하다 보면, 논문보다 에세이에 가까워지고, 글을 쓰는 부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모임을 할 때도 예전처럼 토론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고 있다.
글을 쓰는 방법
"즐거움의 크기는 내가 얼마나 전심전력 했는지로 측정할 수 있다."
나는 전업작가가 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저 존경하는 작가를 동경하여 그들의 글들을 오마주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라는 필터를 통해 그것들을 소화하고 잘 버무려서 하나의 가치를 추론하게 될 때, 쓰는 글에 철학적 품위가 덧입혀지는데, 그러한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예술로 받아들여진다.
비록 다른 작가들의 책을 표면에 내세우기는 하지만 그러한권위에 구속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작가의 생각과 책의 취지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정도이며, 그것들은 나름의 생각을 드러내고 표현을 부각하기 위해 사용하는 질료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한 부분들을 따로 언급하는 것없이도 읽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나의 글은 독립성이 강하다. 이것이 내가 쓰는 글들이 다른 '서평'들과 가장 구별되는 지점이다.
플라톤과 내가 동일하게 보고 이해했다면 그것은 플라톤의 진리와 이성인 동시에 나의 진리와 이성이기도 하다.
먼저 글을 쓸 때에는 발췌한 문장 중에서 쓰는 목적과 가장 잘 부합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찾아 화두로 던져놓는데, 그것을 반복해서 음미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과 내용들이 머릿속에 떠다니게 된다. 뭔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경우, 내키는 대로 적어보는데, 이런 식으로 무의식에 맡겨 기술하는 과정을 나는 '자동기술법'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방법으로 쓰인 글에 어느 정도 형태가 부여되면, 나름의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여 분류해보고, 주의를 환기하거나 논거를 강화할 수 있는 문장들을 찾아 글에 삽입해본다. 그과정은 책의 내용이나 목차와 상관없이, 지극히 나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배치되며, 그러한 방식은 공간의 배치와 작품의 시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현대 예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신문 스크랩, 극장 포스터, 광고 메시지 따위를 혼합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콜라주' 기법과 예술가의 선택으로 기성품에 새로운 개념을 부여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는 '레디메이드'기법 그리고 존경하는 작가나 인물의 글을 이용하여 경의를 표하는 '오마주'기법은 글을 쓸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글쓰기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형식에 질서 있게 들어맞으며, 비범하지만 부조리가 없는 삶이다."
퇴고를 하는 과정은 사실, 글을 쓰는 것보다 오히려 더 힘든 과정이기도 하다. 난삽한 문장과 오타들을 솎아내고 다듬는 과정은 엄청난 집중력과 감정 소모를 요하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살리고 싶은 문장들과 내용들이 있더라도, 글의 진행방향과 결이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은 자신이 열심히 만든 도자기일 지라도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부숴버리는 도공의 마음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퇴고를 할 때는 내가 가진 지식과 생각, 구체적인 경험과 영감을 주는 문장들을 혼합하여 글을 빚고, '자아'라는 용광로에 그것들을 넣어버린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무의식은 의식적인 것으로 승화되고, 그렇게 하나의 글이 만들어지게 된다.
쓸 때마다 압축해서 글을 구성하려고 노력하지만, 쓰고 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휴대폰으로 스크롤하기에 부담스러운 분량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주시고, 호응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 글은 아들에게 직접 글쓰기를 가르치기 위하여, 에세이 쓰는 법을 공부하고 있던 직원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쓴 '에세이'이다. 궁극적으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글쓰기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며, 진심으로 텍스트를 대하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글을 쓰다보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그리고 요즈음엔 비싼 수강료를 내더라도 글쓰기 특강을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열정들이 자신과 사회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믿으며,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박수를 보낸다.
참고서적
< 몽테뉴의 수상록, 몽테뉴, 메이트 북스, 2019.02.15 >
제가 그들의 곁을 떠났을 때, 이 글을 보면서 제 사상과 성격의 흔적들을 더듬어 본 그들이 저에 대한 기억을 명확하고 선명하게 떠올리기를 바랍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