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징포스 Oct 10. 2022

마음의 도덕

#도덕의 계보, #니체, #나쓰메 소세키, #마음

* 그러면서, 나중에 가서야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체험,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열두 번의 종소리를 다시 세어보게 된다. 아! 그런데 우리는 잘못 세는 것이다......         


마음  


"파란도 곡절도 없는 단조로운 생활을 내 내면에는 늘 이런 고통스러운 전쟁이 계속되었다고 생각해 주게.
<나쓰메 소세키, 마음>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의 주인공은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선생이란 인물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면서 그와 가까이 지내고 싶지만, 선생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면서도 표면적으로만 대하는 것처럼 보이며, 심지어 자신의 아내에게도 속마음을 열지 않는 인물이다. 선생은 사실, 가까운 친척에게 배신당하게 되면서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 것이다. 대학시절에 K라는 친구를 만나 서로 마음을 의지하게 되는데, 어느 날 둘은 같은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은 점점 K를 경계하게 되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에게서도 의심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한다. 결국, 선생은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K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발언을 의도적으로 해버리고, 신념에 상처를 입은 K는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선생은 그토록 바라 왔던 여인과 결혼하게 되지만,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 주인공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니체는 1873년 파울 레를 알게 되면서 동행하게 되지만 둘 사이에 루 살로메라는 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이 들어옴으로써 세 사람은 지적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고, 그들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레는 도덕의 기원을 '동정', '사랑'.'연민'과 같은 감정적인 요소보다 신체적인 것에서 먼저 찾았고,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저서에서 이러한 명제는 미래에 인간의 형이상학적 욕망의 뿌리를 내리치는 도끼로 쓰이게 될 것이라고 극찬을 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레가 점차적으로 니체를 위험한 경쟁자로 느끼게 되면서 그를 따돌리려고 하자, 이에 니체는 큰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후에 쓰게 된 '도덕의 계보'에서는 레의 이론에서 자신이 보았던 것은 영국적인 방식의 공리주의에 기반을 둔 가설에 불과한 것들이었고, 차라리 그것과 상반되고 반대적인 모든 것들이 자신의 마음을 끈다며 폄하해 버리게 되었다. 결국, 그들의 관계는 파국에까지 치닫게 되었고, 레와 살로메도 헤어지게 되었다.          


도덕의 계보

     

 파울 레에 의하면 도덕이란, 유용성과 이익을 받은 자들이 추구하는 이기주의를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니체에게는 무언가를 받은 자의 이득을 도덕의 기원으로 삼는다는 것은 천한 이들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은 받는 자가 아닌, 주는 자의 입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한 입장에서 파생되는 것이 바로 강자의 도덕이며, 그것으로부터 고귀함 즉, 좋음이 나오는 것이다. 니체가 볼 때에도 도덕에는 그 형태와 상관없이 차이가 있을 뿐 상호 간에 이익이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가 파울 레의 이론을 전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레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는 듯하다. 결국 레의 이론은 천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도덕에서 선악을 구분하게 된 것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질투와 시기심, '르상티망'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의 우선순위는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 진정한 강자는 선악 또는 결과와 관계없이 스스로를 긍정하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을 선으로 삼기 때문에 진정한 도덕의 기원은 선악의 저편에 있는 강자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고상한 도덕이 자기 자신을 의기양양하게 긍정하는데서 생겨나는 반면, 노예도덕은 애당초부터 '외부적인 것', '다른 것',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 부정이야말로 노예도덕의 창조적인 행위이다. 이처럼 가치를 정하는 시선을 바꾸는 것, 이렇게 시선을 자신에게 되돌리는 대신 바깥을 향하는 것이 사실 원한에 속한다. 노예도덕이 생기기 위해서는 언제나 먼저 반대 세계 즉, 외부세계가 필요하다.

 니체는 자신을 배신한 친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고, 자신의 이론이야말로 고귀함의 도덕이며, 레의 이론이 해석될 여지를 조금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니체의 분노는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살로메에게까지 미쳤고, 그는 그녀의 호의까지도 자신을 농락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한 상처와 의심들 때문인지 몰라도 니체의 저서 곳곳에는 여성을 폄하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버트런드 러셀은 니체의 이론은 일관성 있고, 명쾌하지만, 감정이 짙게 깔려있기 때문에 철학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평가했는데, 책 속에는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보이는 문장이 상당수 보인다. 그래서 그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편향된 시각에만 매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고, 실제로 그 위험성은 히틀러를 통해 역사로 증명되었다.     

 도덕의 계보는 세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책에서 니체가 극복하려는 대상은 그리스도교 이념으로 점철된 바로 약자의 도덕인 즉 '선악'의 도덕이다. 그는 역동적인 도덕을 표방하며 '힘에 대한 의지'가 바로 모든 것의 발생인 이라고 말한다. 모든 의지는 무수한 미시적인 의지들의 총합이며, 유기체들은 좀 더 강한 힘을 만들기 위하여 수많은 작은 의지들에게 명령하여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의지 중에서 가장 지배적인 것은 거시적이면서도 능동적이고 시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상태에 있다고 본다. 그러한 상관적인 차이에서 포착되는 힘들이 확장되면서 갈등과 투쟁이 발생하게 되고, 여기에서 모든 사태의 원인이 시작된다. 이렇게 상이하게 작용하는 힘들을 종합 하여 사용하려는 의지가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을  '힘에 대한 의지'라고 부른다.     

 현존하는 어떤 것, 어떻게든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것보다 우월한 힘을 지닌 것에 의해 번번이 새로운 견해로 재해석되고 새로 독점적으로 이용되어 새로운 용도로 유익하게 바뀌고 전환된다. 유기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의 제압이자 지배이며, 그리고 다시 모든 제압과 지배는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자 정리인데, 이로 인해 종래의 '의미'와 '목적'이 필연적으로 모호해지거나 지워질 수밖에 없다.          


니체 철학의 의의와 한계     


 도덕의 계보학은 논리가 명쾌하면서도 우리가 간과하거나 숨기고 싶은 이면까지도 샅샅이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다. 특히 약자들에게도 권력의지가 내포되어 있다는 그의 통찰은 날카롭고, 그것을 역사적인 사실에 적용해 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혁명들의 토대가 되었던 이론들이 그 의도와 달리 왜 언저리에서만 머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왜냐하면 권력은 위치만 달리할 뿐,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체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본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금욕을 비판한 대목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성직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자신의 특성을 부각하기 위해 보여주는 금욕의 이상은 어떤 것을 부정하기 위해,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부정적인 것으로 끝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반면 니체가 추구하는 금욕은 어떤 이상이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긍정하는 것으로써, 결과와 상관없이, 혹은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긍정에 긍정을 더하는 초극 의지이다.     

 니체는 선악으로 구분되어 있던 도덕이라는 통념에 대항하여 망치를 들고, 그 틀을 부수어버렸다. 흩어진 도덕의 조각들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다시 붙여나가면서,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계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니체가 도덕에서 배제해 버린 가치들 즉, 쇼펜하우어가 강조한 '연민'과 '동정', 그리스도교가 강조한 '사랑', 파울 레가 주장한 '이익'같은 요소들과 함께 도덕이 발전해 가면서 문명이 발전했기 때문에 니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가치들이 없는 도덕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도덕의 본질


 '마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그들은 파국적인 국면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배제하고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그들은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고, 그렇게 사랑의 의미도 퇴색되어 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덕의 요소를 배제해 버리고 시원성만을 가지고 논지를 확대하다가 보면 도덕의 본질과 역할까지도 흐리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니체가 아무리 도덕의 혼탁함에 반기를 들고 문명을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문명의 수혜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도덕에 가치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신체적인 것만이 기준이 되어버리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왜소한 체구를 가졌던 니체는 아마도 살아남기 힘들지 않았을까? 도덕은 주권자의 의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하여 이익이 될 만한 것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러지 못했을 때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상호 간에 교류가 되면서 도덕에서 법률로 발전하게 되었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그것들에 여러 가지 가치들을 내포하게 된 것이다.

 강자가 아무리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도덕이라 규정하더라도 언젠가는 힘이 약해질 때가 오고, 가치가 전복될 수도 있다. 이는 혁명의 역사에서 늘 발생하는 대목이며, 니체도 그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 자체가 그에게는 역겨운 것이었기 때문에 힘에의 의지를 표방하는 도덕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끝없는 심연과 외로움 속에서 니체는 마음의 공백을 이기지 못해 정신착란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의 주장대로 외부로 발산되지 않는 본능이 모두 안으로 향하여 영혼이 파괴된 것이다. 니체는 자신이 가장 훌륭하고 강한 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지 모르나, 니체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가 가장 약한 자 중에서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참고도서

<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아카넷, 2021,06.30. >

< 마음, 나쓰메 소세키, 웅진 지식하우스, 2016.05.09.>

< 서양철학사, 버트런트 러셀, 을유문화사, 2020.12.30. >

<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는가, 이진경, 엑스 북스, 2020.06.25 >

< 니체의 도덕의 계보 읽기, 강용수, 세창미디어, 2016.07.15 >


비판을 긍정으로 변조시키는 것은 이론의 핵심까지도 건드리게 됨으로써 그 진리를 증발시켜 버린다.

< 계몽의 변증법, 아도르노 >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에 대한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