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문화회관은 한 달에 한 번씩 음악회를 열면 무료로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그곳은 빙상센터와 함께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클래식을 비롯하여. 재즈. 연극. 댄스, 국악 등 여러 가지 공연을 관람했다. 특히 클래식 공연은 해당 음악과 관련된 지식과 에피소드를 말해주는 코너가 있었고, 무명의 연주자들이 열과 성을 다해 공연을 하는 모습에서 적잖은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이곳은 빙상장과 공연장이 함께있는 문화복합센터이다.
공부할 때는 바흐의 음악을 들었는데. 특히 정신이 산만할 때, G선상의 아리아를 머릿속으로 반복하다 보면 어느 정도 다스려졌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고상한 음악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지금은 장르를 안 가리고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실 나는 헤비메탈과 락발라드를 좋아했다. 우연히 김경호가 라이브에서 'Rising force'란 곡을 시전 했는데, 음악이 헤비 하면서도 비트가 엄청나게 빨랐고, 간주 부분에 나오는 바로크 주법은 굉장히 신선하게 들렸다. 원곡을 찾아들어보니 잉베이 맘스틴이라는 기타리스트가 클래식과 헤비메탈을 접목시킨 곡이었고, 바흐의 멜로디에 파가니니의 스킬을 얹어놓은 듯한 기타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비록 지금은 한물갔다는 평을 듣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잉베이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그의 반골기질을 기억하고 있고 너무나 사랑한다.
김경호 밴드도 대단하긴 했지만 잉베이의 음악을 흉내 내는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가왕 조용필도 '청춘시대'란 노래로 'Far beyond sun'이란 곡을 표절하기도 했었다. 처음에 잉베이 맘스틴이 데뷔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기타 소리를 듣고 테이프를 빨리 감아서 그런 소리를 내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그의 속주 실력은 경이로웠다. 나의 필명도 그의 노래 'Rising force'에서 딴 것이다. 달리기 하다가 이 노래가 나오면, 나는 볼륨을 키우고 기타 선율에 맞추어 속도를 더 올린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제목처럼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
그는 헤비메탈을 연주하고있지만 클래식장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잉베이 맘스틴은 바흐의 음악을 많이 차용했다. 나는 원곡에 관심이 생겼고, 그렇게 바흐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음악의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간간히 공연에 가거나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클래식에 대한맛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영화나 드라마 OST에 나오는 음악을 듣다가 만나면 마치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를 만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 확실히 덜 지루하고, 특히 소설을 읽을 때 분위기와 걸맞은 음악을 들으면 내용에 젖어들게 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상실의 시대'에 관한 글을 쓰게 될 날이 온다면 책에 나오는 음악을 리스트에 올린 후, 랜덤으로 맞추어 놓고, 문장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적어볼 것이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나면 홍대에 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하루키 팬들의 성지인 '피터 캣'이라는 북까페가 있기 때문이다.
카페 주인은 원래 책을 좋아하시는 분인데, 대기업 다니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직장을 접고, 자신이 좋아하는 하루키의 책들을 수집하여, 북까페를 열었다. 이곳은 책 속에 나오는 칵테일도 모두 재현하였고, 커피도 취향대로 주문할 수 있다. 내가 이 장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장이 수집한 음반을 들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이곳은 눈치 안 보고 있고 싶은 만큼 책을 읽어도 된다. 그것은 피터 캣만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피터캣 블로그에서 퍼옴
나는 우연히 그곳을 설명하는 책자를 도서관에서
발견하게 되었고, 읽고 난 후 바로 그곳을 찾아갔다.
책을 읽고 여기를 찾아왔다고 말하니 주인장이 가게 단골인 기자분이 그 책을 썼고, NHK에서도 취재하러 왔었다고 자랑스러워하셨다. 주인장과 세 시간 동안 하루키와 그의 소설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주인장에게 인문학 공부한 것이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는 나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손님, 그럴수록 소설을 읽으셔야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지금까지 당연한 게 여겨지던 것들이 차단되면서 나에게도 코로나 블루스가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믿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씩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상상력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차단된 세계, 그것은 지옥이었다.
현실에서 삶에 지쳐가게 되고 스스로 꿈꾸는 것조차 버거워하게될 때 철학서는 위로하기는커녕 잔인한 질책만 던진다. 하지만 소설은 그러한 아픔을 자신만의 서사로 이끌어주고,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위로를 받고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