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인간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책임이 주어지는 행위 중 하나이다.
자유로부터 파생되는 가치
"집단의 의사가 개개인의 독립성에 합법적으로 간섭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란 단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의미가 보편적인 의미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십 년에 이르지 않으며, 그러한 가치들은 모든 법제도가 지향하는 목표이며 여전히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이기도 하다.‘자유’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평등’은 신분·성별·재산·종족 등에 관계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는 모두 동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에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다. 그러한 자유는 평등이 전제될 때 실현 가능하다. 만약 평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떤 것에 종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체를 막기 위해 고안된 장치가 ‘민주주의’이며,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떠올릴 때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민주주의’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을 말하며 귀족 제나 군주제 또는 독재체제에 대응하는 뜻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지만,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들이 충돌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왜냐하면 전자의 국민은 개인에 대한 문제이지만 후자의 국민은 타인과의 관계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 속에서의 개인은, 타인을 고려하면서 자신에게 최선인 것을 판단하는 ‘도덕적 개인’이라기보다 자신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이기적 개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행해지는 국가의 ‘자의성’은 의도와 다르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며 그러한 외부의 결정이 개인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한 평등은 신분·성별·재산·종족 등에 따라 동등하지 않다는 현실 속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이라는 이론을 적용해 보면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의개념들은 혈통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가족을이루고있더라도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개성이 각기 다른 것처럼,반드시 공통되는 특질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 유사하게 겹쳐지는 범위 내에서 구성요소들은하나의 집합체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전 그리스와 플라톤의 자유론
고대 그리스 국가의 자유는 국가의 간섭 없이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삶을 누린다거나 개인적 이익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자유는 다른 민족의 지배나 누군가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의 자유는 공동체의 일을 논하고 공공정책 결정과정에 적극 참여할 때 최대한 실현할 수 있었으며 이는 개별구성원이 자신의 인간됨을 완성하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생산을 담당하는 노예계급이 있기에 향유 가능한 것이었고 남성이 아닌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이 없었다. 그리스에서 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그저 노예가 아닌 상태를 의미했을 뿐 그 자체가 인간의 본성이라거나 도덕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플라톤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인 생각을 억견인 ‘독사’라 부르고 독사와 반대로 이성을 통해 얻은 객관적 지식을 ‘에피스테메’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자유는 이성 정도, 유무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며 독사 속에서 살고 있는 자들에게는 평등이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평등이 불필요한 자들에게도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예언대로 아테네는 자유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영혼은 이성과 의지 그리고 욕망으로 이루어지며 국가는 이성의 정도에 따라 각각 통치자·수호자·생산자 계급으로 구분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각 계급이 지닌 이성· 의지·욕망이 지혜·용기·절제를 만들 때 ‘정의’가 생겨서 ‘이상 국가’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스와 마키아벨리의 자유론
아우구스티스에게는 자유는 도덕적인 책임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에게 있어 의지의 자유는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인간이 이성을 지닌 존재이며 이성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는 모습이 질서 있는 것으로 보았다. 행위의 자유는 외부의 장애물이나 간섭에 의해 방해받을 수도 있지만 의지의 자유에 관한 한 인간은 전적으로 자유로우며, 따라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원법’에 복종하는 사람들의 것을 참된 자유이며, 그렇지 못한 노예들에게 적용되는 규범을 ‘현세법’이 명하는 바에 따르는 자유로 구분한다. 영원법은 최고의 가치인 이유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법을 따르기 때문이며, 그러한 사람은 스스로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된다. 반면 현세법이 열등한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인간은 타율적인 개체로 종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세법이 영원법에서 파생된 것일 때 그 법이 준수되는 한도 내에서 인간사회의 질서가 보전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도 일정한 의미와 역할을 부여했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자유의 핵심은 자치와 자결이다. 군주국과 대비되는 공화국의 특질은 그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 자신의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는 말은 그들의 동의에 따른 법이 제정되고 모든 시민들이 그 법의 지배에 평등하게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선량한 때인 공화국의 탄생 기에 형성된 제도와 법률은 사람들이 사악하게 된 후에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군주론>에서는 자유로운 생활양식에 익숙해져 버린 도시국가의 지배자가 된 자는 그 도시를 파멸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도시에 의해 도리어 자신이 파멸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노예상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인민을 해방시키려고 시도하는 일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인민을 노예상태로 속박하고자 하는 일만큼 어렵고 위험한 것이라고 보았으나, 자유를 희구하는 인민의 열망이 자유에 해로운 경우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열망은 억압에서 또는 억압이 발생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자유는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써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투쟁할 때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사회계약론자의 자유론
토머스 홉스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의 보존을 위하여 스스로 원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연권’을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가 만연해 있고 일정한 법칙 없는 상황에서 인간들은 서로의 자유를 빼앗는 ‘만인을 위한 만인에 대한 전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타인과 이성으로 판단된 동의를 하게 되는 것을 자연법이라 명명했다. 이러한 계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려면 절대적 힘을 지닌 공적 기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적 권력을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무시무시한 바다괴물에 비유했다. 그는 국왕이 리바이어던처럼 강한 힘을 지니지 못하면 나라는 기능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주권자의 임무는 자연법에 의한 신민의 안전보장이며, 신민 또한 폭력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국가 권력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홉스에게 자유는 법과 정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며, 즉 자연 상태를 떠나 정치적 권위가 확립된 사회 상태에서 사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로크의 자연 상태는 홉스 식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도 무질서한 방종의 상태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자유는 자연법의 구속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자연법은 최고 이성의 법이며 그러한 계약의 결과로써 형성되는 국가는 ‘실정법’의 형태로 이성이 지배하는 국가이다. 로크가 홉스와 달리 국가에 대한 복종을 개인에 대한 억압으로 간주하지 않은 것은 개인의 자발적인 동의와 위임이 정치권력의 근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죄자를 처벌하거나 국민을 보호하는 권한은 공권력에 신탁하더라도 주권은 어디까지나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짓밟는다면 국민이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국가를 수립할 ‘저항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힘은 정당성을 만들지 못하며 복종의 의무는 오로지 정당한 권력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개개인은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여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지만,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사회상태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유지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유의 공통분모로써 일반의지를 주장했는데, 이 의지는 개인의 자유로운 계약으로 성립하는 국가가 가지는 단일한 것을 말한다.
개인의 의지는 본질상 부분성을 지향하지만 일반의지는 평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진다. 그렇다면 일반의지는 무엇인가?
그는 평등이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일반의지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며 오히려 간단히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시민은 저마다 시민으로서 일반 의지에 참여하지만 또한 개인으로서 일반 의지에 반하는 개별의지를 가질 수 도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사회계약은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한 사람은 누구든지 복종하도록 강요받게 된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강요당하는 평등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까?만약 평등을 절대적인 의미에서 받아들인다면 그의 일반의지 개념은 개인의 자유와 모순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인 의미에서 평등을 해석한다면 그가 반대한 것은 신분과 제도적 장치에 의한 불평등이었으며 사람들의 자연적인 능력의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밀의 자유론
밀은 자유를 행복과 연관시켜 이해했는데 그가 생각한 행복은 ‘발전’이었다. 인간이 이러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꼭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을 것과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이 타인의 이익과 조화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자유가 가져올 사회적 결과를 고려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라고 믿었다.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그의 원칙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자유의 이름으로 옹호될 수 없으며 그에 대한 사회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더 나아가 그는 만인에게 공통되는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독단적인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악의를 가지고 행해지는 적극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 위해를 가하는 경우까지도 포함시키며, 인간은 오직 사회의 ‘맥락’ 속에서만 그들 자신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행위 규범들은 먼저 법률을 통해 강제되어야 하고 법률로 정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많은 것들은 여론을 통해 강제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밀은 여론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을 포착했고, 그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법과 이성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당연히 자기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각 사람들의 ‘선입견’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감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보다 자신에게 수용가능하거나 친밀도에 따라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관습’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각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이성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통해 그 힘을 한층 더 강화시키기도 한다.카뮈의 ‘이방인’은 살인죄 때문에 사형을 당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 여론과 관습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밀이 정의하는 자유는 공동체를 전제로 하며, 동시에 공동체 내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고려까지도 필요로 한다. 또한 민주주의에서 속에서 구현되는 자기 통치는 타인에 대한 배제나 타인과의 관계결여가 아니라 설득과 타협, 합의를 요체로 하는 소통을 토대로 한다. 밀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언제라도 선입견과 감정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고, 완전한 법과 이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역사 속에서의 자유
자유주의적 공동체가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평등한 개인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면 자유주의적 국제관계는 자유롭고 평등한 주권국가를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사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있다. 앞서 이야기한 그리스도 처음에는 자율적인 정치공동체인 폴리스를 기반으로 했고 아테네는 자유의 수호자임을 자처하기도 했다.페르시아라는 공동의 적이 있을 때는 폴리스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단결했으나 적이 사라지자 아테네는 인근 폴리스의 정치에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아테네에 반감을 가진 폴리스들은 스파르타와 연합하여 아테네 패권을 무너뜨렸고, 필요이상의 힘과 영토를 갖게 된 스파르타 역시 변두리 국가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무너지고 만다. 그리스의 이상을 전파하려던 알렉산더의 꿈은 세계를 정복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유를 정복해 버렸다.
자유가 유린당했을 때 홀로 남아 있던 것은 다른 이들에 대한 구속과 독재였다. 그는 자신의 힘에 도취하여
페르시아의 황제처럼 옷을 입고 신이 되려 했다. 이에 반감을 가지고 충고하던 자신의 친구를 살해하기도 했고, 결국 그는 무리하게 전쟁을 하다가 결국 병사해 버리고 제국은 흩어져버리게 된다. 이것은 비단 그리스만의 일만은 아니며, 자유․평등·박애를 주창하며 전제 군주제를 전복시켰던 프랑스혁명도, 한편에서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박해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자유의 혁명 또한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에게 점령당해 버렸다. 그리고 1·2차 세계대전이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까지도 그렇지 못한 국가들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학살하기도 했다.자유가 그들만의 것으로 한정되어 버리고 다른 주체들을 압제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을 때, 시민은 ‘신민’이 되어버렸고, 공화국은 ‘제국’이라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자유는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할 때,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물과 같아서, 사람들은 잠시나마 목을 축이고 나면 그것을 담고 있던 '생수병'은 쓰레기통에 던져지게 된다.
자본과 소비 사회 속에서의 자유
오늘날에는 통신기술과 수송기술의 진보와 함께 지구상에 나타난 제국도 있다. 이 제국은 지본주의 아래에서 국경을 뛰어넘어 네트워크상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권력 시스템을 말한다. 이러한 시스템에는 중심이 없고 영토 확장도 필요가 없다.현대의 제국은 우리의 욕망이며, 즉 극단적 자본주의가 만든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국은 세부적인 일상까지 침투해 우리를 전 방위적으로 자본주의에 순응시키기 위해 관리·육성한다고 네그리와 하트는 주장했다.
소비자본주의 단계에서 ‘나’의 정체성은 소비자로서 내가 행사하는 자유를 통해 구현된다. 소비자 간의 경쟁은 상징과 의미를 둘러싸고 전개되며, 경쟁과정을 통해 선택지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다양해지는 특성을 갖게 된다. 자유의 시련은 오히려 ‘차별’과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며 이탈한 자들까지 그러한 자유에 포섭되도록 만들어버린다.소비의 세계가 개인적 자유의 핵심영역으로 부각되고 자유의 실현이 소비의 실천과 연결되면서 뒤따르게 되는 문제는, 생산 및 재분배의 과정에서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전통적인 관심이 점차 약화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신분이 나누어져 있던 시대보다도 차별과 격차를 더 크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소비의 자유를 실현하는데 몰두하는 개인은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권리로서의 자유에 관심이 없으며, 공적인 영역에서는 가급적 비켜나 있고자 한다. 그러나 네그리와 하트는 이러한 제국이 ‘네트워크’ 형태이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역이용하면 민중도 네트워크 상태로 연결해서 이러한 상황을 조장시키는 제국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국가와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는 모든 인간을 ‘멀티튜드’라고 부르며 권력에 저항하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폭력혁명과 구별되며, 인종·국적·계층을 초월한 사람들이 자기의 특기 분야를 통해 네트워크 형태로 연결되고 때때로 모여 토론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하나하나 해결하려는 힘이라 말했다.
밀의 해법
맬서스의 이론은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식량은 천천히 꾸준히 증가하기 때문에 불균형이 일어나 식량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빈곤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다윈의 ‘진화론’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고, 밀의 저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그렇다면 밀의 자유론에도 ‘적자생존’의 원리가 도입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덕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을 통한 자유를 중시했기 때문에 ‘약육강식’의 관점과는 차이점을 가진다. 따라서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자유인은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적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양적공리주의와 구별되는 지점이며, 시민이란 이성과 품위를 갖추며,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체에서 속한 사람들을 뜻하게 된다.
거대권력에 지배된 질서 있는 사회와 자유롭지만 무질서한 사회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할까? 밀이 질적 공리주의자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그는 거대권력에 지배되는 사회를 거부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정의한 자유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구속이 전제되는 것이므로 무질서한 사회에 대해서도 반대했을 것이다. 그는 '자유론'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자유로운 국가가 지향해야 할 태도를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가치가 있는 그런 주제들에 ‘스스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밀은 자유방임주의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오히려 적극적 자유 때문에 생겨나는 폐해가 상당한 경우가 훨씬 많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똑같이 만드는 평등은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루소의 일반의지가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정의’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른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지혜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자유론
지금까지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뜻대로 풀리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주변의 것들에 휘둘렸고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중 세월 호 사건이 일어났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어라!’라는 말은 의식 자체를 통째로 뒤흔들 만큼 거슬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닫게 된 것은 나 역시 주위의 ‘틀’ 속에서 길들여져 왔고, 그것을 벗어나서는 어떠한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손을 내밀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인생이 좀 더 수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나를 이끌어주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당연히 무시와 고립 밖에 없었고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위로하고 자신을 구원하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조건 중에서 가장 익숙한 것은 ‘책’이었고, 특기가 있다면 꾸준히 그것을 읽어 내는 것이었다.
도서관은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 나오는 동굴처럼 구애받지 않고 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고 ‘보르헤스’의 그림에 나오는 천국과 같았다.(그의 그림에서 천국은 온갖 책들로 둘러싸인 도서관이다.) 책은 이전까지 몰랐던 세상들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었고, 그것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내게 주어진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카뮈’는 세상은 원래 부조리한 것이며 그러한 것들에 저항할 때 사람은 성장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니체’는 높은 곳에 서기 위해서는 낮은 곳을 내려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칸트’는 나에게 명령한다. “너의 의지가 보편 의지가 되도록 하라!”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여 넘어졌지만 달려들고 또 달려들어 그를 쓰러뜨렸다. 사자가 힘이 약해져서 넘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그대로 서있었을 뿐이었고 야곱은 단지 그동안 강해졌을 뿐이다. 그 와중에서 그는 ‘환도뼈’를 다쳐 다리를 절게 되었으나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다.
‘샤르트르’에 따르면 나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은 ‘의식’뿐이다. 그 의식이 사물과 타인 등과 스스로를 구별하며 서서히 나라는 본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존재방식은 ‘대자존재’라고 표현했고 반대로 사물처럼 처음부터 본질로서 고정된 존재를 ‘즉자존재’라고 했다.나 자신이 스스로를 의식한 순간 ‘나’라는 존재는 과거부터 현재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아닌 ‘미래’에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나는 더 이상 익숙한 내가 아니며, ‘주체’로서 자신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더 이상 잃어버린 시간들에 매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반면 ‘레비트로스’는 인간의 사고나 행동은 그 바탕에 있는 사회적·문화적 구속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여 이러한 이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대립되는 두 이론의 교차점은 자유와 평등은 주어진 현실과 조건을 인정하고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저항하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자유에는 ‘피 냄새’가 나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했다.자유를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는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형벌과 수치심에 불과할 뿐이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은 갑자기 ‘파동’이 되었고 나의 세계는 조금씩 형성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