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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코스모스

'포스'가 함께하는 코스모스 4

#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1)

by 비루투스

*인간은 세상을 파악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애초부터 인간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배후를 의식하며 살았다. 인류가 사냥을 하고 불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 하다못해 책마저 없었던 시절들이 있었다. 인류는 지난날의 거의 대부분을 이런 상태로 보냈다. 우리 조상들은 달 없는 밤,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이 사그라져 깜부기불이 되면 그 주위에 앉아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107p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인간이 신의 영역을 지배하여, 노화와 죽음 같은 문제까지 해결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인류는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점점 더 격하되고 있다. 신도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근대 이전의 과학자는 성직자나 철학자이기도 했다. 인간의 관념 속에서 신의 섭리를 이해하기 위해 철학과 과학은 공존하며 개념과 법칙들을 창출하였다. 물론 불합리한 영역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 현대 과학은 그러한 불합리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발전하였다.

과학의 성과들은 엄청났고 점차적으로 전문화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전문화의 성과는 엄청났고, 과학은 이를 토대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중심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화롯불 주변에서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별을 보면서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인류는 상상의 나래 속에서 세상을 파악하는 지혜를 얻었다. 그러한 지혜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세계 각국의 종교와 신화, 더 나아가 철학에도 녹아들어 있고 과학이론 또한 이러한 상상력을 토대로 발전한 것이다.

유독 코스모스에는 진화론에 대한 언급들이 많다. 진화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관점으로만 인간과 우주를 물질적인 존재로 한정하는 것은 그것의 본질적인 면을 간과할 수 있는 오류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사유하는 존재이며, 우주는 그러한 인간과 함께 공명하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진화론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몰라도,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은 진화의 관점에서 한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는 칼 세이건에게 과정을 배제하고 결과적인 것만을 우선시하는 관점은 지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진화론도 가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언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의 것들을 전복시키게 될지도 모른다. 중세 암흑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천동설이 뒤집힌 것처럼 진화론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학문은 다양한 이론들이 서로 충돌하는 영역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면에서 철학과 과학은 유사점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 내포되어 있는 질서와 조화를 찾아가는 것이 바로 코스모스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뭐든지 굳어버린 것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우리는 살아서 움직이는 그러한 진리를 찾기를 원한다.


인간은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고 스스로 고립되게 만들지만, 별들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우리의 머리 위에서 그 빛을 비추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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