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가 함께하는 코스모스 5
4#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2)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 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조개껍데기를 찾아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 그대로 펼쳐져 있다. -161p
"자연의 진리가, 나의 거부로 쫓겨났었지만, 인정을 받고자 겉모습을 바꾸고 슬그머니 뒷문으로 들어왔으니...... 아, 나야말로 참으로 멍청이 었구나!"
카프카의 '성'이란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 책에서 주인공은 성의 주인을 만나기 위해, 그에 대한 단서를 수집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도와줄 이들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쓸쓸히 지쳐 죽어간다. 이에 대해 진리를 찾아 떠났던 인간이 겪게 되는 허무함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케플러 이전까지의 천문학자들은 행성들이 마땅히 원 궤도를 돌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들은 행성들이 이 땅보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완벽함과 신비를 갖춘 존재로써 믿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단테의 '신곡' 중 천국 편에 나오는 9개의 행성을 묘사하는 부분에 잘 묘사되어 있다.
천국을 상징하는 이러한 행성들이 완전한 원 궤도가 아니라 불완전한 타원궤도로 기울어져 돌고 있다는 사실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신학자이기도 했던 케플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우리가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고 있었던 행성들 실은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 신의 존재를 알기 위해 지금까지 했었던 노력들이 오히려 신의 존재를 약화시키게 만들었다는 것에 그는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벽한 원궤도와 불완전한 타원의 움직임은 우주라는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어낸다. 진리, 그것은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것을 도출해내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자유로운 존재방식이다.
"이 소리의 화음으로 인간은 영원을 한 시간 안에 연주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거룩한 열광의 도가니에 나 자신을 고스란히 내어 맡긴다."
물체가 떨어지는 일은 태초부터 있었고, 달이 지구 둘레를 돈다는 사실도 예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현상이 같은 힘에 따라 일어난다는 엄청난 발견을 한 사람은 뉴턴이다. 그것은 뉴턴이 추상적인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결론이다.
뉴턴 또한 과학자이자 신학자이기도 했는데, 그는 신의 존재를 수학과 기하학으로 정의하면 1이라는 논리 값으로 귀결된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그는 삼위일체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신은 자신을 유일한 존재이면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선구자들은 그를 경외심으로 찾았고, 끊임없이 진리를 갈망하는 가운데 철학과 과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관점을 벗어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이유는 그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불완전하게 태어난 피조물이 완벽한 존재의 뜻을 다 알 수가 있겠는가? 다만 어느 정도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진리를 향해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리는 한 발 더 멀어져 우리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그러나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추구하는 일들이 무의미하고 허무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은 무거워서 다른 쪽을 바라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가볍게 살려하고, 복잡한 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그저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