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편집

시간과 공간의 의미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

by 비루투스

* 시간이 ‘흐른다.’라는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항상 같을까? 1)


괴테는 색채는 빛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빛과 어둠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인식 사이에서 발생하게 되는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색이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뉴턴의 이론과 상반되는데, 같은 대상을 두고 色과 色彩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미묘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뉴턴에게 색은 물체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이 우리의 눈에 도달하는 물리적인 현상에 불과하지만, 괴테에게 색채는 인간이 대상에 대해 가지게 되는 주관적인 인식과 감정까지 포함하여 문화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시공간’의 정의

어떤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어떤 곳에서는 빨리 흐른다. 2)

물리적으로 동일한 1분이라도, 기다림 속에서는 길게 느껴지고 몰입 속에서는 짧게 지나간다.

우리는 시계를 통해 시간을 측정하고, 달력을 통해 시간을 구분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경험은 결코 균일하지 않다.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단위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감정, 기억과 기대 속에서 다르게 흐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을 변화의 척도로 삼았고, 그것을 운동의 원인으로도 보았다. 물체가 운동할 때 시간도 함께 변화하기 때문에 시간은 운동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며, 의식과 경험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공간 또한 물체의 운동과 함께 변화하면서 물체의 위치와 크기를 결정하고, 물체를 운동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대적인 입장에서는 두 물체가 접촉하지 않더라도 그 사이에 다른 무엇인가가 있고, 그것은 또 하나의 물체가 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있을 수 없다.


뉴턴은 시간과 공간은 물질과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는 모든 물체가 각각의 독립적인 요소로서 존재하며, 공간과 시간 또한 물체의 운동을 측정하는데 필요한 불변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구분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도 인간의 인식과 경험과는 무관하며 시간 그 자체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았다.


뉴턴은 시간과 공간은 물질과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물체가 각각의 독립적인 요소로서 존재하며, 공간과 시간 또한 물체의 운동을 측정하는 데 필요한 불변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인간의 인식과 경험과는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시계는 그 흐름을 측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뉴턴에게 공간은 외부의 어떤 대상이나 인간 의식에도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신의 속성을 지닌 절대적 실체였다.


한편, 라이프니츠는 시공간을 인간의 경험과 시간 속에서 형성된 관계적 구조 속에서 구성된 것으로 보았다. 그의 ‘모나드’ 개념은 세계를 구성하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단위로서, 외부와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신의 조화 속에서 전체를 이루는 존재이며, 시공간은 이러한 모나드들이 신의 조화법칙에 따라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결과였다.


라이프니츠에게 시간은 여러 사건의 선후관계를 따져놓은 것이고, 공간은 이런 시간적인 관계에서 ‘동시’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만 모아놓은 것이다. 따라서 시간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며, 물체의 운동과 함께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과는 독립적인 요소로 존재한다. 반면에 공간은 독립적인 요소가 아니라 물체들 사이의 관계이며, 공간이 물체의 위치와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와 물체의 운동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시공간’의 선험성

시간은 ‘때’를 물을 때와 관련된 것이다. 공간은 ‘어디’를 물을 때와 관련된 것이다. 3)

우리는 세계를 경험하기 이전에 이미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을 통해 그것을 인식한다. 칸트는 이러한 틀을 ‘선험적 형식’이라 불렀다.


뉴턴은 시간을 물질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보았고, 라이프니츠는 사건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상대적 구조로 이해했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인간 인식의 선험적 형식으로 보며,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틀이라 주장했다.


칸트는 인식을 단순히 경험의 결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경험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형이상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인식이 경험을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에 이미 인식 내부에서 일정한 확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인식의 구조는 감성과 지성으로 나뉜다. 감성은 오관을 통해 외부 대상을 지각하고 표상을 형성하는 능력이며, 지성은 그 표상을 개념화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감성을 통해 표상된 대상은 ‘현상’이라 불리며, 지성은 이러한 현상을 대상으로 사고를 수행한다. 지성의 모든 활동은 판단으로 환원되며, 이러한 사고는 대상을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개념화 과정을 거쳐 개념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판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칸트는 감성의 형식을 시간과 공간으로 구분했다. 시간은 내적 직관의 형식이고, 공간은 외적 직관의 형식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안에서 표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틀은 경험의 결과가 아니라, 경험이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선험적 구조가 되고, 그것 자체는 경험될 수 없는 것이 된다.


칸트는 뉴턴의 절대적 공간 개념을 거부하면서도, 라이프니츠의 관계적 공간 개념과도 거리를 두었다. 뉴턴은 공간을 물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절대적 실체로 보았고, 라이프니츠는 공간을 사물 간의 관계로 이해했다. 칸트는 이 둘을 넘어, 공간은 우리의 인식이 가능하기 위한 ‘표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즉, 공간은 외적 경험의 결과가 아니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형식이다.

따라서 ‘텅 빈 곳’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선험적 특성을 지닌다. 시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 ‘동시적’으로 움직였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다양한 사건을 하나의 시간 틀 안에서 개념화하여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시간은 경험의 결과가 아니라, 경험을 구성하는 형식이다.


예술 속의 시간

우리 모두가 한 줄로 놓여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그 어떤 관계도 없는 게 아니다 변화와 사건은 허상이 아니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하나의 세계적인 질서에 따라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


시간은 단순히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기억과 감정, 기대와 불안이 얽혀 흐르는 인식의 구조다. 우리가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감각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존재한다.
시간은 인간의 인식 속에서 흐른다. 예술은 그 흐름을 붙잡고, 감각의 언어로 다시 짓는다.


음악은 시간의 순수한 형식이다. 소리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오직 시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리듬과 템포는 감정의 고조와 해소를 이끌어내며, 베토벤의 교향곡은 감정의 흐름을 시간의 구조로 엮어낸 서사다. 존 케이지의 침묵은 오히려 시간 그 자체를 음악의 주체로 드러낸다.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듣는다.


영화는 시간의 편집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서사처럼 시간은 인물의 감정과 기억을 따라 뒤틀리고, 타르코프스키의 느린 숏은 시간의 질감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영화는 기억과 회상, 예측과 반전 속에서 인간의 인식을 확장한다.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서사 속에서 다시 배열되고, 감정의 구조로 재편된다.


회화와 사진은 시간의 정지다. 그러나 그 정지된 이미지 속에는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고요한 순간은 시간의 정적과 인간의 고독을 담아내고, 살바도르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는 시간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시각화한다. 정지된 이미지 속에서도 우리는 과거의 흔적, 미래의 암시, 현재의 감정을 읽는다. 시간은 멈춰 있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문학은 시간의 언어적 형상화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기억과 감각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탐색하고, 보르헤스는 시간의 순환과 무한성을 언어로 풀어낸다. 문학은 시간의 주관적 경험을 언어로 재현하며, 독자는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발견하게 된다. 문장은 시간의 리듬이고, 서사는 시간의 구조다.


예술은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감각적 경험으로 전환한다. 시간은 기억과 정체성, 기대와 불안, 창조와 소멸의 구조로 예술 속에 녹아들며, 예술은 시간의 흐름을 멈추거나 가속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인간의 인식을 확장한다. 예술은 시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다시 살아내는 방식이다.


'외감'과 '내감', '숭고미'

우리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을 때 대화를 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피부를 스치면서 감정과 생각을 교환한다. 5)


칸트는 대상을 우리 바깥에 있는 것으로, 즉 공간적으로 표시되는 것을 ‘외감’이라 불렀다. 그는 이러한 외감을 매개로 우리 마음의 내적 상태를 직관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 내적 직관을 ‘내감’이라 했다. 내감은 대상을 시간의 관계 속에서 표상하게 된다.

‘사건’은 외부에서 발생하는 일을 의미하며, 외감을 통해 인식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시각과 청각 같은 감각 기관을 통해 그 사건을 인식한다. 반면 ‘사태’는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내부의 감정을 의미하며, 내감을 통해 인식된다. 교통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슬픔,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사건을 인식할 때는 외감을 통해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사태를 인식할 때는 내감을 통해 주관적인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칸트는 외감과 내감을 구분하면서, 시간은 외적으로 직관될 수 없고 공간은 내적으로 직관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감각인 외감이 우리 내부로 들어오게 될 때, 인간은 시공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나 현상을 마주했을 때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을 ‘숭고미’라 명명했고, 이를 ‘무한한 것에 대한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감정은 외감과 내감이 결합할 때 발생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조화롭게 발전한다고 보았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입자들은 시간 속에 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그러한 상호작용에 의거해서만 입자들은 진실로 존재한다. 6)

괴테가 색채를 빛과 어둠, 그리고 인식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 설명을 넘어선 철학적 통찰이다. 색은 단지 파장의 조합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뉴턴에게 색은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물리 현상이지만, 괴테에게 색채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인식의 결과다.


시간은 단순히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기억과 감정, 기대와 불안이 얽혀 흐르는 인식의 구조다. 우리가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감각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이 흐름이 관찰자의 속도와 중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입자들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변화가 없다면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시간은 변화의 척도일 뿐이며, 물자체는 시간 속에 살지 않는다. 이는 뉴턴의 절대적 시간 개념을 뒤흔들며, 라이프니츠의 관계적 시간 개념과 맞닿아 있다.

시간은 변화의 척도일 뿐이며, 그 자체로는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것은 변화가 있기 때문이며, 변화가 없다면 시간은 정지된 개념으로 남는다. 이는 인간의 내면에서 흐른다고 느끼는 시간조차도, 감정의 변화와 기억의 움직임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이다


시간 속에 살지 않는 것은 오직 ‘물자체’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시간 안에서 변화하는 ‘현상’이다. 칸트의 철학에 따르면, 물자체는 인간의 인식 너머에 존재하며,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안에서 표상된 현상이며, 그 틀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현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능동적인 종합의 산물로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존재다.


자유와 선택

그렇다면 정말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7)

시간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감각, 존재 방식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는 복합적 구조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따라 존재하다. 그러므로 시간은 인간의 자유와도 연결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에 선택할 수 있다. 과거는 기억과 회환, 후회의 대상이지만, 미래는 불확실성과 가능성의 공간이다. 인간은 그 가능성 속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창조하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자유’는 어떤 상태를 스스로 시작하는 능력을 말하며, 외부의 자연법칙이나 시간적 인과성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원인이 되는 ‘자발성’에 기초한다. 이러한 자발성은 경험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순수한 자기의식에서 비롯된다.

자기 자신을 그대로 응시하는 그 순간,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넘어선 존재로서,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과거는 우리가 바꿀 수 없다. 후회와 회환, 행복한 기억 같은 것만 간직할 수 있다. 반면 미래는 불확실하고 욕망과 불안이 교차하며 어쩌면 미래자체를 운명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살 수 있고,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할 수도 있다.


미래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논리적 구조 (챗GPT분석)


I. 시간의 의미와 흐름

시간은 물리적 단위가 아닌 인간의 인식과 감정 속에서 다양하게 체험된다.

“시간이 흐른다”는 표현은 심리적·문화적 맥락에서 해석된다.

몰입과 기다림에 따라 시간의 체감은 달라진다.


II. 색채와 인식: 괴테 vs 뉴턴

뉴턴: 색은 빛의 파장이 반사되어 눈에 도달하는 물리적 현상이다.

괴테: 색채는 빛과 어둠, 인식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주관적 경험이다.

색과 색채의 구분은 물리적 설명과 인식적 해석의 차이를 드러낸다.


III. 시공간의 정의와 철학적 입장


III-A. 아리스토텔레스

시간: 변화의 척도, 운동의 원인

공간: 물체의 운동과 위치를 결정하는 관계적 구조


III-B. 뉴턴

시간과 공간은 물질과 무관하게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장치


III-C. 라이프니츠

시간: 사건의 선후관계

공간: 물체들 사이의 관계

모나드: 더 이상 분해되지 않는 존재 단위로 세계 구성


IV. 칸트의 시공간 인식론

시간과 공간은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선험적 형식’이다.

감성: 오관을 통해 표상을 형성한다.

지성: 개념화와 판단을 통해 사고를 구성한다.

현상: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인식되는 대상

물자체: 인식 너머에 존재하며 직접 경험할 수 없다.


V. 예술 속의 시간


V-A. 음악

시간의 순수한 형식

리듬과 템포는 감정의 흐름을 구성

존 케이지의 침묵은 시간 자체를 드러낸다


V-B. 영화

시간의 편집과 재배열

놀란: 기억과 감정에 따라 시간 왜곡

타르코프스키: 느린 숏으로 시간의 질감 표현


V-C. 회화와 사진

시간의 정지 속 흔적

호퍼: 고요한 순간의 정적

달리: 녹아내리는 시계로 시간의 유동성 표현


V-D. 문학

시간의 언어적 형상화

프루스트: 기억과 감각을 통한 시간 탐색

보르헤스: 시간의 순환과 무한성


VI. 외감과 내감, 숭고미

외감: 공간적으로 인식되는 외부 대상

내감: 시간 속에서 표상되는 내적 감정

사건: 외감으로 인식되는 외부의 일

사태: 내감으로 인식되는 감정의 변화

숭고미: 외감과 내감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무한한 것에 대한 감정


VII.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로벨리: 시간은 입자들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변화가 없다면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인간의 내면에서 감정과 기억의 변화로 인식된다

물자체는 시간 속에 살지 않으며, 현상만 시간 안에서 변화한다


VIII. 자유와 선택

시간은 인간의 인식과 존재 방식에 따라 구성되는 복합적 구조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선택 가능한 가능성의 공간

자유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며, 자발성은 자기의식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넘어선 존재로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참고도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쌤앤파커스, 2019.06.10>

1) 9p

2) 18p

3) 78p

4) 118p

5) 129p

6) 131p

7) 213p

8) 216p


내겐 삶, 이 짧은 삶은 감정들의 끊임없는 외침에 불과하다 이 외침은 우리를 이끌어 하느님의 이름 안에, 정치적 신념에, 우리를 안심시키는 의식 안에 가두어 결국 정리된 상태로 아주아주 거대한 사랑안에 머물게 한다. 결론적으로 아름답고 찬란한 외침인 것이다. 이 외침은 때로는 고통이 되고 때로는 노래가 된다. 8)



< 순수이성비판 >



상상이란, 마치 그랬던 것처럼

생각과 감정 속에 나를 놓는 것


세상은 정해진 퍼즐 조각

규칙에는 또 다른 규칙이

관계에는 또 다른 관계가

조용히 새벽은 잠을 깨우고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을 뒤로한 채

현실은 또 다른 현실로 이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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