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편집

불안의 엔트로피

< 구토, 장 폴 샤르트르 >

by 비루투스

* 도시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아침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오는 하루뿐이다. 일요일에 조금 모양을 낼 수 있을 뿐이다. 1)


일본에서는 종업원을 부를 때, 호칭보다는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쓰는데, 상품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손님인데도, 돈을 주고 종업원을 부리는 것 자체가 실례인 것처럼 대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식당에서는 가족처럼 '언니', '이모'라는 친근한 표현을 쓰면서도 '손님은 왕이다.'라는 기치아래, 종업원을 하대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리고 '아가씨', '총각'이라는 표현이 불편함을 준다고 하여 '여기요.'또는 '저기요'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결국 테이블마다 달리는 것은 버튼만 누르면 종업원을 부를 수 있는 호출벨이다.


변증법과 엔트로피

나는 나의 현재를 가지고 추억들을 만든다. 나는 현재 속에 내던져져 있고, 버려져 있다. 과거로 돌아가려고 해보지만 헛수고다. 나는 달아날 수가 없다. 2)


넥스트 1집의 '도시인'이라는 노래에서는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쫓기는 사람처럼 시곗바늘 보면서,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 경적소리....."라는 가사가 있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고,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여전한 것은 삶은 무거워지고 사람은 가벼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헤겔은 역사가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절대지'를 향해 나아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주체 중심의 의식 행위에 기반한 개념적이고 일방적인 해석으로, 주체 외의 모든 대상을 단지 표상의 수준에 머무르게 만든다.

반면, 자연현상의 비가역적 방향성을 나타내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엔트로피라는 상태변수는 항상 0보다 크거나 같을 뿐이며, 따라서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시공간이 표면상으로는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듯 하지만, 실상은 과거, 현재, 미래라고 불리는 알갱이들이 한 덩어리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실에 매여있고, 그러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시공간에 매이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므로 어떤 각도에서 그것을 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알갱이의 속

우리가 살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배경이 계속 바뀌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갈 뿐이다. 여기에 시작은 결코 없다. 날들이 아무 이유 없이 날들에 덧붙여지는데, 이것은 끝나지 않는 단조로운 덧셈이다. 3)


양자역학은 두 가지 발견으로 상대성이론을 주장했던 아인슈타인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첫째는 미시적 차원의 세계로써, 그곳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알갱이의 속성 때문에 항상 불연속성이 발견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움직임에는 우연한 요소인 본질적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한 입자의 현상태는 다음 순간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결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시적 차원에서 물체들의 변화는 확률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는 의미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입자의 움직임이 변화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투자도 마찬가지이다. 차트분석을 하고 기댓값을 산출하는 것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 될 테지만, 그러한 데이터 또한 과거의 사실일 뿐. 그것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드는 매개변수는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내포된 '욕망'이며, 그것은 수치화하여 데이터로 완벽하게 잡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리스크를 촉발되도록 만들고, 때로는 주가변동의 폭을 급변하게 하여 전문가들을 무안하게 만들겠지만 매스컴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당연했다는 듯이 말할 것이다.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주인공 로캉탱은 직업도 없고 가정도 없으며, 어떤 욕심이나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방향성이 어디로 정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알갱이'와 같은 속성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그는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던지다가 참을 수 없는 구토를 느끼게 되는데, 이후에도 문의 손잡이를 잡거나 타인의 얼굴을 보게 될 때, 맥주컵이 손에 닿았을 때도, 그러한 증상이 계속 나타나게 된다. 로캉탱은 이성과 합리성을 토대로 엮어져 있다고 믿어졌던 세계의 본질이 사실은, 맥락 없이 흩어진 낯선 것들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현실을 외면하려 했을 때, 참을 수 없는 구토와 현기증을 느낀다.

샤르트르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인간이 자신의 이해범주를 넘는 사물의 본래적 모습과 부딪치게 되었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낯설고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유리한 입장에 서있게 되면 시공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때로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반대의 경우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미래의 환상은 안개처럼 걷히게 되고, 존재가 사라지게 되면 그것과 연결되는 과거는 더 이상 의미가 남아있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우리 곁에는 변하지 않는 현재만이 머무르게 될 것이며, 그러한 인식이 로캉탱에게 구토로 나타나는 것이다.



대상과 구토


몸은 일단 한번 시작되면 저 혼자 살아간다. 하지만 생각을 계속 유지하고, 생각을 전개해나가는 것은 나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4)


우리는 대개 익숙한 사물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는 것에 '본래'라는 단어를 쓴다. 이 단어는 명사로는 '사물이나 사실이 전하여 내려온 그 처음', 부사로는 '처음부터 또는 근본부터'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거기에는 지극히 일방적인 측면이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사물 그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위축시켜 버리고, 대상의 본질적인 속성이 주체의 표상체계에 의해 왜곡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미지의 대상일지라도 인간의 정신을 통한 포섭과 이해를 거치게 되면 소급돼서 어떠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는데, 특정 대상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존재로 설정하는 과정을 '대상화' 또는 '타자화'라고 부르며, 추상적인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을 '개념화'라고 부른다. 대상화를 거치게 되면 사물은 인식을 통해 질서 있게 관리되게 되고, 개념화를 통해 그 대상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정의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 또는 수치를 통해 주변의 사물을 규정하여 지배하려 하고, 심지어 인간에게도 그러한 욕망을 투사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대상화는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또는 인간적 특성 없이 '객체'로 보는 경향을 설명할 때 사용되기도 하며,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대상화가 가능하다. 대상화의 과정 속에서 그 의도뿐만 아니라 다른 의도들이 섞이면서 '언어도단'의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경우 존의 정의가 교란되거나 잠식당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위협당하는 경우도 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상태를 '피투'라는 단어로 표현했고, 샤르트르는 '피투'된 인간이 겪게 되는 고통과 불안 속에서 '구토'를 느끼게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감은 분노나 기쁨과 같이 익숙한 감정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민감한 감각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기도 하고, 수동적인 위치에서 적극적인 태세전환을 촉발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으며, 그러한 행위들이 중첩되고 충돌하면서 기존의 세계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그것은 세계와 새롭게 관계 맺음을 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실존과 예술

한권의 책, 물론 그것은 우선은 지루하고도 피곤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이 완성되고, 내 뒤에 놓을 때가 올 테고 그것이 발하는 약간의 빛이 내 과거 위에 떨어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그 책을 통해 나의 삶을 혐오감없이 떠오릴수 있으리라 5)

키에르케고르는 이를 '실존'이라고 불렀고, 그것은 항상 의식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베르 카뮈는 이러한 상황에서 겪게 되는 딜레마를 '부조리'라고 불렀고,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를 순수한 의미의 '반항'이라고 했다. 반면에 '본질'은 이와 상대되는 의미로써 그 무엇이라 정의될 수 있는 성질을 말하는데, 샤르트르는 '본질보다 실존이 앞서는 것'이므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불완전하다는 말에는 어떤 측면에서 완전으로 나아가려는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고, 실존은 본질 쪽으로 향해가려는 속성이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만들어 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자유가 허락된 이유이기도 하다.


실존을 통해 사물의 외연이 확장되면, 그 안에 새로운 의미가 스며든다. 의식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틈이 생기고, 낡은 감각과 평범한 사유에 균열이 일어나며, 마침내 사물의 속살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본래'라는 단어는 정해진 용도나 익숙한 개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내포되어 뻗어나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된다.


대상이 주는 이미지에 가려졌던 특이성들은 어떤 계기를 통해 감각 전체를 관통하게 되고, 그것은 각자가 속해 있는 세계의 본질에 대해 의심을 던지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 형태는 작가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샤르트르에 따르면, 작가가 마주한 타자, 즉 독자의 자유가 작가에게 협력하지 않고는 결코, 글쓰기는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익숙하게 여겨왔던 모든 것들이 뒤흔들어지고, 그러한 삶의 파편들이 시간과 함께 성숙하게 될 때, 얽매여있던 가능성들이 욕구를 통해 조금씩 해방되기 시작하며, 일상적인 하루 속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후 우리는 그런 시도들을 한데 모아 '예술'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 불안의 엔트로피 』 논리적 구조 (챗GPT분석)


I. 실존과 본질의 철학적 대립
-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개념
- 카뮈의 부조리와 반항
- 샤르트르의 실존 우선론과 인간의 자유

II. 도시의 반복성과 일상의 무게
- 도시가 반복하는 하루의 구조
- 일요일의 예외성과 형식적 변화

III. 문화적 태도와 인간관계의 방식
- 일본의 ‘스미마셍’ 문화
- 한국의 친근한 호칭과 호출벨 시스템
- 손님과 종업원 사이의 권력 구조

IV. 시간과 존재: 변증법과 엔트로피
- 헤겔의 정반합과 절대지
- 열역학 제2법칙과 시간의 비가역성
- 과거·현재·미래의 동시적 존재

V. 알갱이의 속성과 양자역학의 불확실성
- 양자역학의 불연속성과 확률
- 인간 욕망과 투자 리스크의 본질
- 데이터의 한계와 예측 불가능성

VI. 사르트르의 『구토』와 존재의 불안
- 로캉탱의 구토 경험
- 낯선 현실과 세계의 나열
-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고정성

VII. 대상화와 개념화의 폭력성
- ‘본래’라는 단어의 일방성
- 대상화와 타자화의 철학적 의미
- 언어도단과 존재 위협의 가능성

VIII. 피투된 인간과 감각의 균열
- 하이데거의 ‘피투’ 개념
- 불안과 감각의 표면화
-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 맺음

IX. 실존과 예술의 탄생
- 예술을 통한 삶의 의미 회복
- 작가와 독자의 자유
- 일상 속에서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


©참고도서


< 구토, 장 폴 사르트르, 임호경 옮김, 2020.12.31>


1) 366p

2) 86p

3) 100p

4) 233p

5) 410p

6) 100p


이게 바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삶을 이야기할 때에는 모든 것이 바뀐다. 다만 이 변화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하나의 증거로, 사람들은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마치 진짜 이야기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6)


< 월광소나타 >


달빛 비치는 산길을 걷다 보면,
보이지 않던 사소한 장애물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전체 윤곽은 점점 뚜렷해진다.

평면화되어, 고립된 사물 사이로,
무섭고 섬뜩하게 보이는 얼굴들이

라이트를 켜서 그곳을 밝게 비추어 보지만,
어둠 속에서 환영들은 하나씩 사라져 버린다.

멀리 구석에서 가만히 응시하는 슬픔을,
다가가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울어버렸다.

메말라버린 소금기를 남겨놓은 채,
슬픔은 낯선 곳으로 지나가버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간과 공간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