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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요지경인가

<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

by 비루투스


* 이 세계의 거울 속의 등가물일 따름인 다른 세계, 그러면 이 세계는 무엇인가? 1)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추상의 매력을 낳았던, 어떤 것에서 다른 것 사이에 게재되었던 지고의 다름이 사라져 버렸다. 2)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는 원본이 존재하지 않거나 원본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 또는 기호를 의미한다. '시뮬라시옹'은 이러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현실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진 가상현실을 사람들이 실제적인 것으로 믿게 되는 과정을 말하며, 그는 이를 통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작용하는 상태를 '초실재(hyperreality)'라 정의했다. 시뮬라시옹은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전환시키며, 인간의 존재와 소유의 방식 역시 변화시킨다.


'시뮬라시옹'은 인간의 존재와 소유의 방식이 변화하여 초실재 속에서 융합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며, 에리히 프롬이 제안한 ‘소유’와 ‘존재’의 개념에 대하여도 흥미로운 해석을 가능케 한다.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 소유는 실재를 기호로 대체하게 되며, 존재는 점점 더 복제된 경험으로 변질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초실재의 세계에서 소멸하고 있는 실재를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볼 것인가?



소유와 존재의 기호화


인종학이 살기 위해서는 그의 대상이 죽어야 한다. 대상은 발견된데 대한 복수를 죽음으로서 하고, 이로서 그를 파악하고자 하는 과학에 도전한다. 3)

아름다운 꽃을 꺾는 행위는 단순히 꽃을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미지로 소비하는 것이다. 꺾인 꽃은 생기를 잃고, 이제는 본래의 존재가 아닌 '소유'를 통해 새롭게 정의된 시뮬라크르로 변한다. 이는 단순한 실재라기보다는 재현된 이미지로 존재할 뿐이며, 현대 인간이 실재를 다루는 방식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유의 관점에서는 사랑을 ‘명사’로 보고, 사랑을 가진다고 표현한다. 가지려는 사랑은 대체물을 항상 필요로 하고, 그것이 결핍될 때, 지속성이 떨어지게 된다. 반면 존재의 관점에서는 사랑은 하는 것, ‘동사’이며 그것의 대상은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존재'는 재현된 이미지가 아닌, 본질적인 경험과 의미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진가를 느끼려는 태도를 포함하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가치조차 복제된 경험으로 변질되며, 결국 시뮬라크르 속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소비, 욕망, 그리고 시뮬라크르의 순환


조종이란 불확실한 인과성으로서 거기서는 긍정과 부정이 서로서로 생산하고, 서로 겹치며, 또 거기서는 더 이상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것이 없다. 4)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번영'이라는 이상적 기호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실재를 초월해, 소비와 경쟁이란 상징체계가 실재를 대체해 왔고, 부의 축적과 혁신은 더 이상 실질적 가치의 생산보다, 시장에서 투영된 이미지와 기호적 가치에 의해 정의되어 버렸다. 소비자는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마케팅에 의해 조종당할 뿐이다. 광고는 소비자와 의사소통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소진되어 버린 정보를 의미 있는 것처럼 연출하여, 소비를 유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현대 사회에서는 오로지 그것만이 '본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소비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시뮬라크르를 강화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 광고는 욕망을 조작하여, 현실을 대체할 이미지를 끊임없이 생산하여 기호로 구성된 이미지를 현실로 믿도록 유도한다. 소비자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상품을 소유하고자 하지만, 실제로는 광고와 마케팅이 만든 허상 속에서 기호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소유와 존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인간은 점점 더 실재적 경험보다는 복제된 이미지를 소유하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기호와 이미지로 가득 찬 세상에서 실재적 존재를 잃어가게 되고, 소유와 존재는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대체하며 순환하게 될 것이다.



기술과 데이터 그리고 초실재


사실들은 더 이상 고유한 탄도가 없으며 그들은 모델들의 교차점에서 탄생하고, 단 하나의 사실이라 할지라도 동시에 모든 모델들에 의하여 생산될 수 있다. 5),

현대 기술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시뮬라시옹을 창조한다. 죽음과 질병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되면서 인간의 행복과 가치관 역시 변하고 있고, 거대 기업들은 인간의 감정, 도덕성, 그리고 신체적 데이터를 수집하여 정량화하고, 이를 디지털화된 형태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점차 고유한 실재를 잃고 초실재 속에서 데이터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경계하기보다 오히려 친근감을 보이며, 정보수집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마트 기기와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 삶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우리를 감시하고 데이터를 수집한다. 우리가 기계를 신뢰하고 의존하는 만큼, 기계는 우리의 삶을 분석하고 활용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기업은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욱 효율적인 시스템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현대 기술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시뮬라시옹을 창조한다. 죽음과 질병이 해결 가능한 문제로 인식되면서, 인간의 행복과 가치관 역시 변화하고 있고, 거대 기업들은 인간의 감정, 도덕성, 그리고 신체적 데이터를 수집하여 정량화하고, 이를 디지털화된 형태로 전환하고자 한다.

스마트 기기는 사물인터넷으로 우리의 건강을 체크해 주고 노화된 신체와 장기는 인공물로 교체가 가능해지고, 더 나아가 ‘뉴럴링크’는 신체를 넘어 정신까지도 기계에 이식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마트 기기를 신뢰하는 만큼 기계는 주인인 우리에게 충실한 것만은 아니며, 그것은 수집한 정보를 제조업체에 업데이트하여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소위 빅테크 기업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를 토대로 사업과 마케팅을 구상하고,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초실재 세계 속에서 점차 고유한 실재를 잃고 데이터화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본질의 의미


왜냐하면 영화는 여전히 이미지이기 때문에 즉, 영화는 단순한 화면과 시각적 형태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신화이다. 복사, 환상, 거울, 꿈 등의 성격을 아직도 띠고 있는 것이다. 6)


에리히 프롬은 '소유'와 '존재'를 통해 인간 본질의 양면성을 탐구했고, "소유 양식에서는 과거에 축적한 것에 얽매이며, 존재 양식은 '지금, 여기'에서만 진정으로 경험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는 과거조차 초실재 속에서 시뮬라크르로 살아남으며, 존재 또한 복제된 경험과 이미지를 방출하는 행위로 변질될 수 있을 뿐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람들이 이러한 데이터의 흐름 속에 합류함으로써 자신이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끼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우리가 초실재 속에서 방향을 잃게 되는 이유를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데이터 알고리즘은 앞으로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최적의 방법을 찾아낼 가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존재 의미는 점점 희석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컴퓨터의 성능을 높이는 과정에서 사건들이 점점 더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는데, 이는 기계가 정형화된 측정과 예측에 의존하는 반면, 인간은 정량화할 수 없는 유기체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존재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으며, 이러한 열망은 초현실적인 상황에서도 삶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중요한 동기가 될 것이다.

변화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길 수 있지만 동시에 잃어버렸던 가능성을 되찾을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 본질의 의미를 끊임없이 추구하려는 시도와 노력은, 그것이 설령 시뮬라시옹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 될지라도, 초현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기를 열어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도 여전히 참신하고 대담한 상상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하태환 옮김), 민음사 2013. 7.17 >

1) 180p

2) 13p

3) 29p

4) 46p

5) 105p



그러나 우리는 자본의 단말마적 고뇌가 우리에게 행사한 깊은 미혹에 저항하여, 우리가 실제 그 고통자인 자본에 의한 자기 자신의 단말마적 고통의 무대화에 저항하여 싸워야 한다. 자본에게 자기 죽음의 주도권을 주는 것은 그에게 혁명의 모든 특권을 주는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239p>




< 시 작 >


삶이 자신의 이름을 상실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질문들에 대답해야만 한다.


어차피 삶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러한 파편들을 그러모으는 것이 앎


자기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리는 이는

새롭게 태어날 가능성에 몸을 맡기고


과거와 미래가 뒤얽힌 시공간에 홀로 머물러

온몸으로 마주하고 양팔로, 그것을 얼싸안아


감정의 흐름에 손을 휘젓고 단어를 건져내어,

이성은 정해진 뼈대에 맞추어 살을 붙여내고,

무한한 관계의 연결 속에 자신을 던져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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