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편집

마음의 도덕

#마음. #나쓰메 소세키,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by 비루투스

*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기탄없이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되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안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만한 것을 붙잡게. 1)



니체는 도덕의 기원을 따라가 보면, 그것은 선악을 구별하는 단순한 규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힘의 투쟁 속에서 형성된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적 도덕이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고 삶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했으며, 강자가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고 스스로를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이라고 보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인간이 가진 욕망과 양심,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모순을 치밀하게 탐구한다는 점에서 니체의 이론과 비교해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도덕의 계보와 마음


아무튼 사랑은 죄악이네, 알겠나? 그리고 신성한 거지. 2)


『도덕의 계보』는 세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니체가 극복하고자 한 대상은 그리스도교 이념이 지배하는 ‘선악’의 도덕이다. 그는 모든 생명체가 수많은 작은 의지를 복속시키고 통합하려는 강한 힘의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도덕은 단순히 선과 악의 구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힘에 대한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니체는 도덕을 ‘노예도덕’과 ‘주인도덕’으로 구분했다. 노예도덕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외부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강자에 대한 약자의 질투와 시기에서 비롯된다. 약자는 자신의 나약함을 ‘선’으로 간주하며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을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존재로 만들 뿐이다. 반면 주인도덕은 자신을 긍정하고 창조적인 가치 형성에 집중하는 태도로, 이를 따르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규범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기준을 창조하며 존재 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마음의 주인공 '나'는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선생’이라는 인물과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선생은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친절히 대하지만 내면을 철저히 감춘 채, 심지어 가장 가까운 관계인 아내에게조차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어린 시절 가장 신뢰했던 작은아버지에게 배신당하고, 마음속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정든 고향을 떠나버렸다.


K는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며 학문에 몰두하는 인물이다. 선생은 그의 태도에 매력을 느껴 자신의 하숙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친한 친구였던 K가 연모하던 여인에게 동일한 감정을 품게 되면서, 변치 않을 것 같던 신의와 우정은 질투와 분노로 변한다. 결국 선생은 K의 가치관의 모순을 지적하며 그의 자존심을 짓밟는 발언을 하고,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K는 자살을 선택한다. 선생은 그토록 바라던 여인과 결혼하지만,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니체와 파울 레


나는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네. 말하자면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남들도 믿을 수 없게 된 거지. 자신을 저주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거네. 3)


니체는 1873년 파울 레를 알게 되었고, 이후 루 살로메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받아들이면서 세 사람은 학문을 연구하고 지적 성과를 공유하며 즐겁게 지냈다.

파울 레는 도덕의 기원을 ‘동정’, ‘사랑’, ‘연민’과 같은 감정적 요소보다 신체적 차원에서 먼저 찾으려 했다. 그는 도덕이 유용성과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를 토대로 형성되지만, 도덕적 행동의 근본적인 원동력은 동정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줄이려는 본능적 욕구를 지니며, 이러한 측면에서 이기주의는 이타주의와 화합하여 도덕을 성립시킨다는 것이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레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레는 니체를 위험한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었고 점차 그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이에 니체는 큰 실망과 배신감을 맛보았으며, 『도덕의 계보』에서는 레의 이론을 비판하며 “레의 이론은 근거가 희박하고 오히려 상반되는 것들이 자신의 관심을 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니체는 레의 주장과 달리 도덕의 기원은 ‘받는 자’가 아닌 ‘주는 자’의 입장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는 도덕이란 강자의 도덕에서 파생되며, 여기에서 ‘고귀함’, 즉 ‘좋음’이라는 가치가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도덕은 외부의 기준이나 동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자신의 힘을 긍정하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도 도덕이 특정한 형태를 가지든 가지지 않든 결국 상호 간의 이익이 작용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강자가 단순히 힘으로만 약자를 억압하는 권력 구조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고, 강자와 약자 사이의 관계는 언제든지 전복될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니체가 파울 레의 도덕 이론을 강하게 반박한 데에는 철학적 입장뿐 아니라 개인적인 상실감과 배신감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메타인지적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구성하려 했지만, 그의 주장에는 감정적 요소가 지나치게 개입되면서 때때로 논리적 비약과 억지스러운 측면이 나타나기도 했다.



강자의 도덕과 정념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야. 4)

니체는 자신을 배신한 친구를 용서할 수 없었고, 그 분노는 그의 철학적 사고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는 콤플렉스와 자격지심으로 이어졌으며, 그는 자신의 이론을 철저히 확립해 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이러한 감정은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루 살로메에게까지 확장되지 않았을까? 그의 저서 곳곳에서 발견되는 상처와 의심의 흔적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것으로 규정하며 이를 ‘강자의 도덕’이라 명명하고 싶어 했으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포장하려는 반대급부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버트런드 러셀 역시 니체의 이론이 일관성 있고 명쾌하지만, 감정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어 철학자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니체의 저서에는 그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문장들이 상당수 존재하며,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향된 시각에 매몰될 위험이 있다. 그의 철학적 개념이 히틀러에 의해 악용되면서 역사적으로 그 위험성이 증명되기도 했다.


니체는 현실을 힘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았으며, 이는 그의 존재론적 사고에도 반영되었다. 그는 현존하는 모든 것이 우월한 힘을 지닌 존재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독점적으로 이용되며, 새로운 용도로 변형되거나 전환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유기체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과정은 하나의 제압이자 지배이며, 이는 다시 새로운 해석과 정리로 이어지고, 그 결과 종래의 ‘의미’와 ‘목적’은 필연적으로 모호해지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도덕은 단순히 강자의 도구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점에서, 모든 국면을 힘의 관계로만 설명하는 니체의 철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니체의 도덕 개념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적용하기보다 그 한계를 인식하고 좀 더 포괄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인과 노예의 과정은 서로 분리되고 배제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곳에는 지배와 복종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레와 살로메와의 관계도 점차 소원해졌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이후의 니체 저서에서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여성에 대한 경멸적 시선이 군데군데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철학적 논의가 아니라, 그가 경험한 감정적 상처와 배신감이 그의 사상 전반에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니체 철학의 의의와 한계


나는 차가운 머리로 새로운 말을 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말을 하는 게 살아있는 거라고 믿고 있거든. 피의 힘으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이지. 말이 공기에 파동을 전할 뿐 아니라 좀 더 강력한 것에 좀 더 강하게 작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야. 5)


『도덕의 계보학』은 논리가 명쾌하면서도 우리가 간과하거나 숨기고 싶은 이면까지 샅샅이 파헤친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 특히 약자들에게도 권력의지가 내포되어 있다는 그의 통찰은 날카롭다. 이를 역사적 사실에 적용해 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혁명의 토대가 되었던 이론들이 그 의도와 달리 왜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권력은 단지 위치만 달라질 뿐,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니체의 그리스도교 비판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본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금욕을 비판한 대목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성직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자신의 특성을 부각하기 위해 내세우는 금욕의 이상은 결국 어떤 것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며, 부정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반면 니체가 추구하는 금욕은 어떤 이상이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긍정하는 것이며, 결과와 상관없이, 혹은 모든 것을 잃더라도 긍정에 긍정을 더하는 ‘초극의지’이다.


니체는 선악으로 구분된 도덕이라는 통념에 대항하여 망치를 들고 그 틀을 부수었다. 흩어진 도덕의 조각들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다시 붙여나가며,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그러나 니체가 도덕에서 배제해 버린 가치들, 즉 쇼펜하우어가 강조한 ‘연민’과 ‘동정’, 그리스도교가 강조한 ‘사랑’, 파울 레가 주장한 ‘이익’ 같은 요소들은 도덕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문명의 진보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니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가치들이 없는 도덕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덕의 본질


나는 그에게 말해주었네. 자네는 인간답다. 어쩌면 너무 인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답지 않은 말을 한다. 또 인간답지 않은 말을 한다. 또 인간답지 않은 듯이 행동한다. 6)


니체가 아무리 도덕의 혼탁함에 반기를 들고 문명을 부정적으로 말하더라도, 그 또한 문명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도덕에서 가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신체와 본능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왜소한 체구를 지녔던 니체는 아마도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도덕은 주권자의 의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이익이 될 만한 것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다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호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도덕은 법률로 발전했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그 속에 다양한 가치들이 내포되었다.


결국 도덕은 단순히 강자와 약자의 힘의 투쟁 속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협력과 공존을 바탕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강자와 약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형성했고, 도덕은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니체의 도덕 이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인간관계 속에서 감정과 관계의 섬세한 상호작용을 무시하게 될 위험이 있으며, 더 나아가 도덕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니체의 철학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현실에 극단적으로 적용하면 결국 자기 파괴로 귀결된다는 역설을 남긴다. 그는 강자의 논리를 표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나약한 존재로 남았고, 결국 깊은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정신착란을 겪으며 삶을 마감했다.


니체의 도덕 이론을 『마음』의 등장인물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까? K는 자기 내면의 욕구를 외면하지 않았지만, 도덕적 이상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선’이라 믿었지만, 그 믿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소외와 고립을 초래했다. 이는 니체가 말하는 노예도덕의 성향과 맞닿아 있으며, 자기희생을 미화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반면 선생은 힘에 대한 의지를 발휘해 K를 궁지로 몰아넣었지만, 그로 인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차 무력감에 빠졌다. 그는 K의 죽음 앞에서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한 채 침묵했는데, 이러한 내면의 갈등은 『마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인 죄책감과 연결된다.

선생의 행동은 강자의 자기 확신과는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타인의 죽음 앞에서 도덕적 회의감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K와 선생 모두 자기 존재를 온전히 긍정하지 못한 채 불안과 갈등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약한 인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음』 속 인간적 갈등과 니체의 도덕 이론은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도덕은 단순한 힘의 논리로만 설명될 수 있는가? 사랑과 배신, 질투와 속박이 얽힌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도덕은 단순한 이론적 관점이 아니라 복잡한 감정과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우리는 다시금 깨닫게 된다.

오히려 니체가 도덕을 ‘힘의 투쟁’으로만 바라보며 배제해 버린 요소들이 도덕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관계 속에서 협력과 공존을 바탕으로 발전해 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음의 도덕 』 논리적 구조 (챗GPT분석)


I. 서론

인간 세상의 어두운 면 직시

도덕은 힘의 투쟁 속 해석

기독교 도덕: 본능 억압, 삶 부정

강자의 자기 긍정과 가치 창조


II. 도덕의 계보와 『마음』

『도덕의 계보』: 선악 도덕 극복 시도

모든 생명체의 ‘힘의 의지’

노예도덕: 약자의 질투·수동성

주인도덕: 자기 긍정·창조적 가치

『마음』 인물

선생: 내면 은폐, 배신 경험,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살.

K: 금욕·학문, 사랑 갈등 후 자살


III. 니체와 파울 레

레: 도덕 기원은 신체·동정심

니체: 초기 긍정, 후에 비판

『도덕의 계보』: 레 이론 근거 희박

도덕은 ‘주는 자’의 입장, 강자의 고귀함

상호 이익 작용 인식

갈등: 철학적 차이 + 개인적 배신


IV. 강자의 도덕과 정념

배신·분노가 철학에 영향

루 살로메와의 상처 확장

‘강자의 도덕’: 콤플렉스 포장 가능성

러셀: 명쾌하나 감정적, 객관성 부족

히틀러에 의해 악용

힘의 관계: 제압·지배·재해석

한계: 도덕은 사회적 이해관계 조율

주인·노예 관계는 상호작용적

레·살로메 관계 파국 → 인간 불신·여성 경멸


V. 니체 철학의 의의와 한계

『도덕의 계보학』: 숨겨진 이면 파헤침

약자도 권력의지 내포

혁명 이론이 주변부에 머문 이유 설명

기독교·금욕 비판

금욕 유형

성직자·철학자: 부정적

니체: 긍정적 ‘초극의지’

선악 도덕 틀 파괴, 본질 재구성

배제된 가치(연민·사랑·이익)는 문명 발전에 중요


VI. 도덕의 본질

니체도 문명 수혜자

도덕은 주권자의 의지에서 출발, 공동체 유지 위해 이익 고려

도덕 → 법률 → 문명 발전

도덕은 힘의 투쟁 아닌 협력·공존 속 발전

역설: 욕망 강조하나 극단적 적용은 자기 파괴

니체: 강자 논리 표방했으나 나약한 존재


VII. 『마음』 속 인물과 적용

K: 욕구 외면, 이상 절대화 → 자살 자기희생 미화, 노예도덕적 성향

선생: 힘의 의지 발휘, 그러나 죄책감에 무력화 행동 정당화 실패, 죄책감 반복

두 인물: 자기 긍정 실패, 약한 인간 전형


VIII. 결론

『마음』과 니체 도덕 이론은 질문 제기: 도덕은 힘의 논리로만 설명 가능한가?

도덕은 인간관계 속 감정·상호작용에서 형성

배제된 가치(연민·사랑·이익)는 도덕 형성에 핵심

도덕은 힘의 투쟁뿐 아니라 협력·공존 속 발전



©참고문헌


< 나츠메 소세키, 마음 (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06.25. >


1) 151p

2) 48p

3) 49p

4) 240p

5) 165p

6) 216p


<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1.06.30. >


7) 12p



& 니체를 읽는 일은 언제나 모순과 아이러니 속을 거니는 경험이다. 그의 철학은 명쾌하면서도 솔직하고, 동시에 감정의 흔적을 숨기지 않는다. 강렬한 문체는 독자를 사유의 장으로 끌어들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러셀은 그의 저서를 철학이라 부르기 어렵다고 했다. 감정적 요소가 지나치게 짙게 깔려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니체는 감정을 배제하고 도덕의 계보를 파헤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의 논리 속에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동정과 사랑, 연민을 배제한 도덕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도덕과 법이 권력 의지를 강화하는 도구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생활 준칙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이익과 설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의 서문에서 드러나는 입장 번복은 니체의 사유가 단순한 논리적 체계라기보다 인간적 갈등과 콤플렉스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친구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내적 긴장이 그의 철학을 흔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했을 때, 나는 니체의 책을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라 입체적인 인간의 기록으로 느꼈다.


결국 문제는 ‘저자와 저작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니체의 경우, 그의 철학은 삶과 감정, 내적 갈등과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니체를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라 감정과 상처로 얼룩진 인간으로 본다. 따라서 나는 니체를 평가할 때, 그가 사용한 방식 그대로—감정과 삶을 철학 속에 끌어들이는 방식으로—그를 바라본다. 니체가 도덕을 힘의 투쟁으로 환원했듯이, 나는 그의 철학을 감정의 투쟁으로 환원한다. 그는 도덕을 부수기 위해 망치를 들었지만, 나는 그 망치가 그의 내면을 향해 휘둘러졌다는 사실을 본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를 파헤쳤다면, 나는 그의 감정의 계보를 더듬어 본 셈이다. 이런 해석은 다소 억지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글은 학술적 논문이 아니라 개인적 감상을 담은 에세이라는 점에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결국 내가 시도한 것은 니체를 단순히 비판하거나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방식으로 그를 다시 읽어내려는 작은 모험이었다.



< 순수 >


선택 앞에서 멈췄다.

망설임이 흐린 기억을,

더 깊은 침묵이 흘렀다.


머뭇거림 속에서 묻는 질문,

사랑은 죄악인가?신성함인가?

가슴에 묻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알면서도, 계속 묻고, 답하며,

잿더미 속에서 온기를 움켜쥔다.



더 나아가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라고 물으면서, 앞서 말한 것처럼 훨씬 나중에 이르러서야 우리의 체험,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를 알려주는 열두 번의 진동하는 종소리를 모두 세워보게 된다. 아아! 그러나 우리는 잘못 세는 것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으로 남는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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