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사랑은—
가벼운 숨결처럼.
아무 말 없이, 그저
가슴 깊은 곳에 스며들어
작은 바람이, 마음을 흔든다.
결혼은—
조용한 다짐처럼.
말없이, 그러나
삶의 가장 깊은 곳에 닿아
작은 인연이, 인생을 흔든다.
사랑과 결혼—
자신을 다 알지 못한 채,
서로를 영혼의 짝이라 믿는다.
완전한 사랑을 꿈꾸어 왔었지만
완전한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다.
잃어버린 감정은 잊혀져가고,
시간과 함께 조용히 지나간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고 난 후,
사랑이 기술임을 깨달을 것이다.
사랑은 질량이 아니라 파장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
샤갈이 그렇게 사랑을 그렸듯이,
시간과 공간을 가볍게 넘나들며,
그곳을 더 빛나는 곳으로 바꾼다.
불완전한 채로 서로를 비추고,
불완전한 채로 서로를 사랑해,
우리는, 각자가
그렇게, 조금씩
사람이, 되어간다.
사랑은 흔히 감정의 절정으로 묘사된다. 「사랑이 사람이 되었다」는 그 감정을 가벼운 숨결, 작은 바람, 조용한 다짐으로 표현한다. 시인은 사랑과 결혼을 각각 마음과 삶을 흔드는 미세한 진동으로 그려낸다. 그것은 격정이 아니라, 스며드는 힘이다. 말없이, 그러나 깊이 닿는 감정. 이 시는 사랑을 파장처럼 퍼지는 존재의 에너지로 바라본다.
사랑과 결혼은 자신을 다 알지 못한 채 시작된다. 시인은 말한다. “완전한 사랑을 꿈꾸어 왔었지만 / 완전한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 구절은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다. 우리는 서로를 영혼의 짝이라 믿지만, 그 믿음은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다. 시인은 그 불완전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시간이 흐르고, 잃어버린 감정은 잊혀져간다. 그리고 우리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사랑이 기술임을 깨달을 것이다.” 이 문장은 시 전체의 전환점이다. 사랑은 본능이 아니라,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감정의 훈련이며, 관계의 예술이다. 시인은 사랑을 질량이 아닌 파장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무게가 아니라 연결의 방식이다.
샤갈이 사랑을 그렸듯이,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그곳을 더 빛나는 곳으로 바꾼다. 이 구절은 사랑을 예술적 행위로 승화시킨다. 샤갈의 그림처럼, 사랑은 현실을 초월하고, 존재를 환하게 만든다. 시인은 사랑을 통해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불완전한 채로 서로를 비추고, 불완전한 채로 서로를 사랑하며,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사람이 되어간다.
& 어릴 적, 개울가에서 퍼온 개구리알을 투명한 페트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다. 병 안에서 올챙이들이 하나둘씩 부화하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 그야말로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먹이를 주지 않아도 뒷다리가 스멀스멀 자라나는 생명력에 감탄하며, 나는 그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날, 병에 물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게 올챙이들에게 더 좋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올챙이들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모두 죽어 있었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병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한 행동은 분명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더 넓고, 더 깨끗하고, 더 가득 찬 환경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충만함’은 오히려 그들의 숨 쉴 틈을 앗아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이 장면을 떠올린다. 무언가를 ‘완전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때로는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는지를. 부족함을 메우려는 마음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간극을 억지로 채우려다 보면, 오히려 숨통을 조이게 된다.
“붉은 장미를 얻으면, 그녀는 벽에 묻은 모기 핏자국이 되고, 흰 장미는 창가에 비친 밝은 달빛이 된다. 반대로 흰 장미를 얻으면, 그녀는 옷에 붙은 밥풀 같고, 붉은 장미는 마음속에 찍힌 붉은 연지처럼 아른거린다.”
‘색계’로 유명한 장아이링의 문장처럼,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손에 닿는 순간 익숙함과 권태로 변한다.
원하는 것은 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고, 손에 넣는 순간 평범해진다. 사랑도, 관계도, 삶의 많은 것들이 이 역설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결혼은 사랑의 완성일까, 아니면 종말일까. 나는 결혼을 못한 걸까, 아니면 안 한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시대마다 다른 결로 답할 수밖에 없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단어는 자주 쓰이지만, 그만큼 자주 오해되고 다르게 해석된다. 어쩌면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오해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은 더 어려워진다. 생각이 많아지고, 조건이 생기고, 그 조건들은 서로 충돌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다 보면 마음은 지치고 선택은 미뤄진다. 사랑은 감정이고, 결혼은 제도다. 감정은 흐르고, 제도는 머문다.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하다.
우리는 종종 관계에서도 삶에서도 ‘완전함’을 추구한다. 더 좋은 연인, 더 나은 직장, 더 완벽한 결혼. 부족함을 채우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그 채움이 지나치면 상대를 혹은 나 자신을 질식시킨다. 때로는 여백이 필요하다. 숨 쉴 틈이 있어야 관계도 사랑도 오래 간다.
사랑이 사람이 되었다는 건, 사랑이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상화된 감정이나 꿈결 같은 설렘이 아니라, 실제로 숨 쉬고 상처 입고 때로는 실망을 안겨주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다. 흔들리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반응하며, 기대를 저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랑은 곁에 머문다. 함께 살아가고, 함께 늙어가며, 함께 견뎌내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채로 사랑한다. 완벽하지 않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품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서툰 말과 엇갈린 감정 속에서도 다시 손을 내밀고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통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람이 되어간다. 더 단단해지고 더 부드러워지며 서로의 결을 알아가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사랑은 결국 우리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