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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속의 현실

#변신, #프란츠 카프카, #소외, #체제

by 비루투스

*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1)



카프카는 불과 41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이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살아남아 사상과 철학, 영상매체, 문학 등 여러 영역에서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카프카란 이름을 들을 때 《변신》, 《성》, 《심판》 등의 문학 작품을 떠올릴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는지, 그의 세계관은 어떠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카프카라는 인물을 다룬 영화와 그의 삶에 대해서 짧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부유한 유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폐결핵으로 41세의 생을 마쳤다. 카프카의 독자적인 세계관은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특이한 환경의 소산이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한 사람으로, 아들의 예민한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이 바라는 길을 강요했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카프카는 아버지에 대해서 평생 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열등감을 가졌다고 한다. 반면에 그의 어머니는 학구적인 가계 출신으로 선량하고 마음씨 고운 여성이었다(카프카는 부계보다는 모계 쪽 성향이 강했다.)

카프카는 평생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한편으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면이 있었으며 시간관념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카프카의 일생은 현실과 이상에서 갈등하고, 혼돈과 방황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는 자신이 무기력하고 무능하다는 인식 속에서 사랑이나 결혼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의 판타지적인 희망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족쇄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변신》, 《성》, 《심판》


'한숨 더 자서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잊어버린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했으나 전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2)


카프카의 작품은 인간 존재의 불안과 체제 속 소외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변신》은 근면한 세일즈맨인 주인공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가족에게서조차 외면당하고, 더 이상 말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으며, 결국은 조용히 사라진다. 이 작품은 인간이 ‘유용성’을 상실했을 때 겪게 되는 소외 상황을 극단적으로 묘사한다.

《성》은 카프카가 폐결핵 요양 중에 쓴 소설로, 주인공 K가 성관으로부터 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을로 오게 되지만, 정작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의 냉담한 대우와 멸시를 받는다.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심지어 성주인 클람의 애인이었던 프리다와 관계를 맺으면서까지 성에 들어가려고 하나 결국 이르지 못하고 죽는다. 이 작품에서 성은 절대권자인 신 혹은 체제를 상징하며, 인간이 그 언저리에도 닿지 못하고 스러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심판》은 요제프 K라는 인물이 이유도 없이 체포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한 채,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인 법정 시스템에 휘말린다. 그는 무죄를 주장하지만, 누구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끝내 알지 못한 채, 사형집행인들에게 묵묵히 끌려가 죽음을 맞는다. 이 작품에서 법은 실제 제도라기보다는 상징적 구조로 등장하며, 인간이 체제 속에서 얼마나 쉽게 규정되고 제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 작품 모두에서 카프카는 말할 수 있지만 의미는 없고, 질문할 수 있지만 답은 없는 세계를 그린다. 결국 인물들은 침묵 속에서 사라진다. 이 침묵은 말할 수 없음이 아니라, 말하지 않음이다. 그것은 윤리적 실패이자 존재론적 무력감의 표현이다.



영화 《카프카》와 문학의 재해석


오른쪽으로 문을 뒤척여보려고 온갖 힘을 다 써봤건만 번번이 건들건들 벌렁 자빠진 자세로 되돌아오기만 했다. 3)


필자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카프카》를 보고 이 인물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영화는 1919년 프라하를 배경으로, 실존 인물 카프카를 주인공으로 삼되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허구적 사건과 결합해 재구성한다.

영화 속 카프카는 동료의 실종을 계기로 비밀 조직과 권력의 음모를 추적하며, 도시 상층부의 ‘성’에 잠입한다. 그곳에서 그는 무르나우 박사가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벌이며 대중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다. 박사는 “개인을 상대하기는 힘들지만 대중을 지배하기는 쉽다”라고 말하며 체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카프카는 폭탄을 이용해 성을 폭파하고 탈출하지만,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경찰은 동료의 죽음을 자살로 처리하고, 카프카는 이에 묵묵히 동의한다. 영화는 그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왜 침묵했을까. 그것은 말할 수 없음이 아니라, 말하지 않음이다. 진실은 파편화되어 있고, 체제는 그것을 감춘다. 말은 있지만 의미는 없고, 질문은 있지만 답은 없다. 그레고르가 소파 밑으로 들어가 안도감을 느끼듯, 인간은 종종 진실을 마주한 순간 은신처를 찾는다.

《성》의 K, 《심판》의 요제프 K 역시 진실에 접근하지만, 끝내 그것을 해명하거나 극복하지 못한 채 소멸된다. 영화 속 카프카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침묵 속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침묵은 단순한 철학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윤리적 비겁함과 존재론적 모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약한 모습과 겹친다. 그는 체제의 폭력과 인간 실험의 실체를 목격하고도, 그것을 폭로하지 않았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경찰의 자살 판정에 동의하며, 체제의 언어에 편입된다. 이 순간, 카프카는 자신이 비판하던 세계의 일부가 된다.

그의 침묵은 자기 보호이자 자기기만이며, 동시에 체제에 대한 암묵적 협조다. 그는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그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저항을 꿈꾸지만, 침묵을 선택한다. 이 모순은 카프카적 인간의 핵심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체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체제에 동조하는 이중적 태도. 그것은 인간이 진실 앞에서 얼마나 쉽게 후퇴하고, 얼마나 정교하게 자기기만을 수행하는지를 보여준다.



미완의 상징적 의미


비록 그렇게 하여 침대에서 풀려날 가망이 지극히 미미하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희생하는 편이 가장 현명하겠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절망적인 결심보다는 침착하고도 지극히 침착한 숙고가 훨씬 더 낫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중간중간에 상기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4)


카프카의 가장 큰 매력은 그의 작품을 어느 한 부류로 구분할 수 없다는 데서 온다. 그의 소설의 문체는 지극히 현실적이나 그 배경 상황은 초현실적이다. 그리고 미완결로 끝나는 작품이 많은데, 그것은 그의 삶이 미완이라는 것을 작가 자신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카프카의 작품은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즉, 우리가 작품을 읽고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또 다른 미궁에 빠지게 된다.


카프카는 인간 소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고 자본주의의 익명성에 치열하게 저항한 작가다. 따라서 카프카의 삶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는 것 외에도, 그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서 확인하는 것도 그를 읽는 또 다른 묘미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가 진실을 마주하고도 침묵을 선택하는 장면은, 그의 문학이 던지는 질문과 정확히 겹친다.

카프카를 읽는다는 것은, 그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사유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어떤 것을 계속 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 어느 날 >


방 안은 나왔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비는 언제부터 쏟아지기 시작했을까?

옷이 젖어버린 채, 문득 드는 떤 생각
이제는 그것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것

그렇게 멀리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긴 여행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만,
목적지에 가기 전까지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존재했던 무언가를,

단단히 묶고 또 묶어서 어디엔가에 두는 일

비는 다시 내리고,
코끝에 전해지는 젖은 나뭇잎 냄새


♧ 참고도서


<『변신』,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5.06.17>

1) 9p

2) 10p

3) 10p

4) 15p



책은 우리 안에서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 어느 날 >


방 안은 나왔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비는 언제부터 쏟아지기 시작했을까?

옷이 젖어버린 채, 문득 드는 떤 생각
이제는 그것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것

그렇게 멀리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긴 여행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만,
목적지에 가기 전까지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존재했던 무언가를,

단단히 묶고 또 묶어서 어디엔가에 두는 일

비는 다시 내리고,
코끝에 전해지는 젖은 나뭇잎 냄새




& 글은 약 20년 전 오마이뉴스에 게재했던 글을 다시 분해하고 재해석해 새롭게 써본 것입니다. 당시 제 은사님께서 오마이뉴스 인플루언서로 활발히 활동하시던 분이셨고, 저는 학점을 잘 받기 위한 순수(?)한 열정으로 몇 편의 글을 적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글을 쓴다기보다는 교수님께 잘 보이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네요.

그 글을 다시 꺼내 보았을 때, 솔직히 너무 오글거려서 누가 볼까 봐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문학과 고전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깊어졌고, 그 시절의 글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민망함은 여전했지만, 그 오글거림이 오히려 순수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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