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다투고 헤어졌던 날
여행가방은
1995년 6월 29일,
그날에 머물러 있네.
가방을 가지고 들어왔지만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네.
돌아온 그날의 기억
대답 없는 몇 번의 시도
오늘은 나의 생일
행여나 싶은 마음
열리는 황금빛 빗장
환하게 웃는 우리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날. 수백 명의 삶이 갑작스레 끊겼고, 남겨진 이들은 그날의 기억 속에 머물렀다. 「Days」는 그날을 배경으로, 시간 속에 봉인된 감정을 조용히 꺼내 보여준다.
“여행가방은 / 1995년 6월 29일, / 그날에 머물러 있네.” 가방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 안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과 멈춰버린 시간이 들어 있다.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네”라는 고백은 상실을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 멈춰버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대답 없는 몇 번의 시도”는 관계의 단절과 그 후의 침묵을 암시한다. 반복된 시도는 희망의 흔적이고, 그 침묵은 상처의 깊이를 말해준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다시 떠오르는 날— “오늘은 나의 생일.” 생일이라는 개인적인 기념일이 기억의 문을 다시 두드리는 날이 된다.
“행여나 싶은 마음.”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감정의 진폭. 생일은 축하의 날이지만, 이 시에서는 기억과 재회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날로 그려진다. 그리고 마침내, “열리는 황금빛 빗장 / 환하게 웃는 우리들.”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기억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 시는 영화 「가을로」와도 깊은 연결을 가진다. 그 영화는 삼풍백화점 사고로 약혼녀를 잃은 남자가 그녀의 여행노트를 따라 가을의 풍경 속으로 떠나는 이야기다. 그 여정은 단순한 추억 되새김이 아니라, 상실을 마주하고 치유로 나아가는 길이다.
& 제가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을까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고, 당시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후 김지수와 유지태 주연의 영화 『가을로』를 보면서, 그동안 묻혀 있던 개인들의 서사를 이미지로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앤 드류안이 남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남긴 추천사를 접하게 되었고, 그가 언급한 서류가방에 대한 이야기가 제 마음 깊은 곳을 울렸습니다. 그 순간, 흩어져 있던 기억과 감정들이 한꺼번에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Days」라고 붙였습니다.
이 시는 한 개인의 삶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