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꿈에서 그리 친하지 않았던 동창생을 만났다.
아버님을 만났던 기억이 나서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우리 아버지를 아냐고 친구가 물었다.
아버님 시장에서 음식점 하지 않냐고 말했다.
너랑 너무 많이 닮아서 아직도 기억난다고
우리 아들도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면서
아버님이 웃으면서 돈을 받지 않으셨다고
널 보니까 그때 기억이 난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버님이 안 계신다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친구가 말했다.
그때 가슴이 먹먹해져 와서
친구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꿈은 종종 현실보다 더 진실한 감정을 품고 있다. 「꿈에서 깨다」는 그 제목처럼, 꿈이라는 무의식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기억과 상실, 그리고 인간적인 위로의 순간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시는 단순한 꿈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깊은 감정과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서정적 에세이로 읽힌다.
흥미로운 점은, 꿈속에서 만난 인물이 그리 친하지 않았던 동창생이라는 사실이다. 무의식은 종종 우리가 의식적으로 주목하지 않았던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친구는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 자신, 혹은 잊고 지낸 감정의 조각을 상징할 수 있다. 친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지금의 삶과 감정 상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
시의 화자는 그 친구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친구의 아버지를 기억해 낸다. 시장에서 음식점을 하던 아버님은 화자의 얼굴을 보고 “너랑 너무 닮아서 아직도 기억난다”라고 말하며, 돈을 받지 않고 음식을 건넸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린다. 이 장면은 단순한 회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인간 사이의 연결, 닮음에서 비롯된 정서적 유대, 그리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기억의 힘을 상징한다.
그러나 시는 곧 전환점을 맞는다. 친구는 이제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말하며, “사는 게 너무 힘들다”라고 고백한다. 이 짧은 문장은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꿈속에서 들은 말이지만, 그 슬픔은 현실처럼 생생하게 화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말없이 친구의 손을 잡는 장면은 이 시의 정점이다. 언어보다 깊은 위로, 인간적인 공감이 손끝을 통해 전달된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절제된 표현에 있다. 과장된 감정이나 화려한 수사 없이,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 이야기는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독자는 꿈속의 장면을 따라가며,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시는 기억의 따뜻함과 상실의 아픔,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위로의 가능성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꿈에서 깨다」는 단순한 잠에서의 각성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각성, 인간적인 연결의 회복, 그리고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순간을 의미한다. 친하지 않았던 동창생이 등장한 꿈은,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과 관계를 다시 마주하게 하는 무의식의 초대장이다. 꿈은 사라졌지만, 그 여운은 현실에 남아 화자의 마음을 흔든다.
& 고등학교 시절, ‘호빵’이라 불리던 같은 반 친구를 검찰직 7급 시험장에서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군 복무 중 축구를 하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몇 년 후 그 친구가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꿈 속에 등장해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 이미지들이 겹치며 나름의 맥락과 서사가 형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경으로 복무하던 시절, 아들 생각난다며 따뜻한 인심을 베풀어주셨던 분들, 그리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지인들에 대한 기억들이 겹쳐지며, 무의식 속에서 하나의 감정적 풍경이 만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이미지는, 지금은 유물이 되어버린 옛 서울역 청사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에서 ‘시장’이라는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집에 갈 때마다 지나치던 시장과 그곳을 오가던 사람들, 풍경들이 함께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저는 사라진 것들과 잊혀가는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 심상이 무의식에 깊이 새겨져 결국 이 시를 쓰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기억과 감정들이, 지금은 하나하나가 소중한 보물처럼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