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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기억

by 비루투스

신해철 형님이 살아생전에 말했었지
세상에 길들여지면 꿈은 멀어진다고
남들과 닮아가면서 꿈은 떠나간다고

영원히!

내 눈은 희미해져서 별빛은 보이지 않고
소음에 묻혀버려서 노래가 들리지 않네

나는 누구일까? 내일을 기대할까?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항상 내 곁에 있지만 그대는 없다.

내가 날 알아보지 못하는데,
누가 날 위로해 주지 여러분?



—나는 누구일까


「여러분」은 마치 무대 위에서 홀로 마이크를 잡고 외치는 한 사람의 고백처럼 읽힌다. 신해철이라는 상징적 인물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되는 이 시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실에 길들여진 삶에 대한 저항의 선언이다.

“세상에 길들여지면 꿈은 멀어진다고” 말했던 그의 목소리는, 시인의 내면에서 다시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울림은 곧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 이어진다—“나는 누구일까?”

이 시는 정체성의 혼란과 감각의 상실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 풍경을 그려낸다. “내 눈은 희미해져서 별빛은 보이지 않고 / 소음에 묻혀버려서 노래가 들리지 않네”라는 구절은 단순한 시각과 청각의 상실을 넘어, 삶의 방향과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를 상징한다. 별빛은 꿈이고, 노래는 희망이다. 그것들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건, 시인이 지금 어둠 속에 있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이 시의 가장 강력한 순간은 마지막이다. “누가 날 위로해 주지 여러분?”이라는 절규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다. 그것은 공감과 연대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호소다. ‘여러분’이라는 단어는 익명성과 다수를 동시에 품고 있다. 시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모두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그 말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는 외로움과 맞닿는다.

이 시는 단순한 자아 탐색의 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점점 닮아가는 삶에 대한 경고,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존재의 고백이다. 동시에, 그 고백은 위로를 향한 손짓이기도 하다. 시인은 말한다. “내가 날 알아보지 못하는데.” 이 문장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느껴봤을 혼란과 무력감을 대변한다.



& 예전에 일본 문화가 금기시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에반게리온’이라는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이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조차 사전심의라는 이유로 가위질되어야만 했다.

그 시절, 일본 원판 만화를 소지한 아이들은 일종의 문화 전도사 역할을 했다. 나는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과의 교류는 단순한 취향 공유를 넘어, 금기 너머의 세계를 엿보는 창이기도 했다.
그러다 엑스 재팬의 ‘Endless Rain’이라는 노래의 도입부를 듣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피아노로 시작되는 그 서정적인 멜로디는, 마치 내 안의 무언가를 조용히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음악을 하는 그룹들이 많았지만, 지금까지도 내게 ‘넥스트’만큼 자부심을 주는 밴드는 없다. 당시 나는 한국 대중음악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넥스트도 타이틀곡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Here I Stand For You’를 듣게 되었고, 그 순간 ‘Endless Rain’을 처음 들었을 때만큼의 감흥이 밀려왔다.
엑스 재팬의 곡은 도입부에서 감정을 건드렸다면, 넥스트의 곡은 가사에서 울림이 왔다.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가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지금 생각해도, 이 가사는 너무 멋지다. 그때부터 나는 늦게나마 신해철에게 입문하게 되었고, 그의 음악—특히 가사—는 지금까지도 내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러닝할 때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듣는다. 신해철의 노래는 내 플레이리스트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시상이 떠오르거나 글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쓴 시와 에세이에는 곳곳에 신해철의 흔적이 묻어 있다. 내 글을 읽은 사람 중에는 그 흔적을 알아본 이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솔직한 감정 표현, 강한 메시지. 그는 뮤지션이지만 철학자이고 작가이기도 했다. 나는 그로부터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배웠고, 따뜻한 시선도 함께 느꼈다.

‘영원히’라는 곡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짐이지. 남들과 닮아가는 동안, 꿈은 우리 곁을 떠나네.”
나는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도 분투하고 있다. 예전에는 외부의 시선이 나를 바꾸려 했다면, 요즘은 통속화된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나를 흔든다. 해철 형님이라면 지금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아쉽게도 그는 이 세상에 없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어지럽다. 그의 독설이 너무나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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