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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기억

by 비루투스

어느 것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없는

모든 것을 돌이킬 수가 없는 시간들,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우울함으로 느껴진다,


선명할 때는 물음에 불과했던

그저 아련한 기다림들이었던,

점점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이

그렇게 소중해 보이던 것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나는 미래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없었고,

막역함 앞에서 겁먹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뒤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된 지금,

나는 금지된 시간 앞에 기대고 서있다.


굴뚝의 온기에 입 맞추고 있는 비둘기처럼,

되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그저 기다리면서,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을 기념하려고 한다.



— 사라지는 것들을 기념하다.


“연말”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달력의 끝이 아니다.그건 감정의 가장 깊은 층위가 드러나는 시간이다.

「연말」은 그 단어를 중심으로, 기억과 상실, 기다림과 기념이라는 감정의 언어로 시간을 풀어낸다.


시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것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없는 / 모든 것을 돌이킬 수가 없는 시간들” 이 문장은 연말이라는 시간의 이중적 본질을 드러낸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지만, 되돌릴 수도 없다. 그 시간은 우리 안에 남아 있으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흩어진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 우울함으로 느껴진다”는 말은 기억이 아름다울수록 현재가 더 쓸쓸해지는 감정을 보여준다. 연말은 그런 감정이 조용히 고개를 드는 시간이다. 시 속의 화자는 선명했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그 기억이 더 소중해지는 역설을 마주한다.


“그저 아련한 기다림들이었던 / 점점 희미해져 가는 기억들이” 이 구절은 기억의 감정적 진화를 보여준다. 당시엔 물음에 불과했던 순간들이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감정의 풍경이 된다.그리고 시는 현재로 넘어온다.

“나는 미래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 막역함 앞에서 겁먹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이 구절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 그리고 친밀한 관계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내면의 불안을 드러낸다.


“뒤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된 지금 / 나는 금지된 시간 앞에 기대고 서있다” 이 문장은 연말이라는 시간의 정서적 정지 상태를 표현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갈 용기도 없는 순간. 그 사이에서 화자는 기다림이라는 행위로 자신을 지탱한다.


“굴뚝의 온기에 입 맞추고 있는 비둘기처럼 / 되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그저 기다리면서” 이 비유는 시의 정서적 정점이다. 비둘기는 생존을 위해 온기를 찾고, 화자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념하기 위해 기다린다.

결국, “연말”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시간의 끝이 아니라, 감정의 정리와 기억의 기념이라는 시적 공간이다.



& 이 시를 썼을 당시, 코로나는 이미 전 세계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격리 조치와 모임 제한이 일상이 되었고,
사람이 거의 없는 해운대에서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시간과 공간 속에 서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원하며 이 글을 남겼습니다.

코로나 이전, 저는 인천공항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웠고, 클럽 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갈 때마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가는 날마다 재미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는 그 모든 희망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공항은 거의 폐쇄 직전이었고, 사람들은 쫓기듯 입국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인들이 그렇게 질서정연하고 차분하게 입국하는 모습을 입사이래로
처음 본 것 같았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우방국들은 우리를 외면했고, 많은 분들이 같은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겠구나.”

그 무렵, 소개팅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인천공항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무산된 적도 있었습니다.
‘인간 코로나’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모임은 계속 취소되었고, 그 때문에 혼기를 놓쳤다는 말을 지금은 웃으며 하기도 합니다.

코로나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언론은 연일
“공무원은 논다”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저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9개월 동안 지방으로 파견 나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 후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고, 오랜만에 해운대를 찾았습니다. 자주 가던 해운대시립미술관은 인원 제한으로 출입이 불가능했고, 저는 곧장 백사장으로 향했습니다.

해운대역에서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연말을 기념하는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심코 그 앞에 멈춰 섰고, 하얀 백사장을 바라보며 축제 때마다 들끓던 인파를 떠올렸습니다. 압사당할 뻔했던 기억조차
그리워졌습니다.

그 순간, ‘기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셨겠지만,
저는 그 텅 빈 공허 속에서 느꼈던 감정과 그리움을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성북동 비둘기’라는 표현은 봉쇄 조치로 갈 곳이 없어
북악산을 거쳐 성북동으로 내려왔던 기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표현은 그 시절의 저를 너무도 정확히 대변해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도 연말이 조금씩 다가옵니다.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추억과 경험도 함께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청년’일 수는 없으니까요.

언젠가 저에게도 진짜 연말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그 시절을 곱씹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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