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네가 날씬하면 예뻐서 좋아!
네가 통통하면 귀여워 좋아!
난 너의 오빠라도 좋고,
난 너의 아빠라도 좋고,
난 너의 무엇이든 좋아!
니 얘기 들으면 더 듣고 싶고,
니 얼굴 그리면 더 보고 싶고,
너를 바라보는 나를 보고있는 나를,
너를 생각하는 나를 사랑하는 나를,
별이 내게로 왔다.
벌이 내게로 왔다.
사랑은 때론 별처럼 빛나고, 벌에 쏘인 것처럼 아프다.「벌」은 그 두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는 시다.
사랑의 다양한 얼굴을 유쾌하게 풀어내면서도, 그 안에 자기 인식과 감정의 진폭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네가 날씬하면 예뻐서 좋아 / 네가 통통하면 귀여워서 좋아” 이 첫 구절은 외모에 대한 조건 없는 수용을 보여준다. 사랑은 특정한 모습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향한 애정이라는 선언이다.
이어지는 “난 너의 오빠라도 좋고 / 아빠라도 좋고 / 무엇이든 좋아”는 관계의 경계를 허물며, 역할보다 감정이 우선됨을 드러낸다. 사랑은 이름이 아니라 느낌이다.
“니 얘기 들으면 더 듣고 싶고 / 니 얼굴 그리면 더 보고 싶고” 이 구절은 사랑의 확장성과 중독성을 보여준다.
사랑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며, 더 들을수록, 더 볼수록, 더 원하게 되는 감정이다. 그리고 시는 점점 내면으로 들어간다. “너를 바라보는 나를 / 너를 생각하는 나를 / 사랑하는 나를” 사랑은 타인을 향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거울이 된다. 사랑하는 순간, 화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마지막 두 줄,“별이 내게로 왔다 / 벌이 내게로 왔다”는 이 시의 정서적 반전이자 상징적 결말이다. ‘별’은 설렘과 이상을, '벌’은 현실과 자극을 상징한다. 사랑은 빛나지만, 때로는 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화자에게 날아들었을 때, 그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벌」은 짧지만 밀도 높은 시다. 외모, 관계, 감정, 자아—그 모든 층위에서 ‘너’라는 존재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다. 그리고 그 사랑은 화자를 변화시키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
마지막 줄, “벌이 내게로 왔다”는 사랑이 주는 아픔조차 기꺼이 받아들이는 선언이다.
& 이 시의 소재는 ‘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어떤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몇 번의 만남 속에서 호감이 조금씩 자라났다.
미술관을 함께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같았던 어느 날—나는 마음을 전했다.
그녀는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주거에 대한 말 한마디가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 말이 그녀의 진심이었는지, 내 자격지심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후로 몇 번 더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나는 예전처럼 살갑게 대할 수 없었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벌에게 쏘인 듯했다.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생채기가 난 건 분명했다.
몇 년 뒤, 텔레그램으로 그녀에게서 DM이 왔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카톡에서 그녀의 결혼 사진을 보게 되었다.
한 사람에게 품었던 다양한 감정과 생각.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은 기억에 남은 작은 ‘벌’이 되었다.
별처럼 다가와, 벌처럼 쏘고 간 사람, 약간 아프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