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시

#존재

by 비루투스

기억이 생생할 때,

그것을 기록해야만 한다.

시간이 지나면 바래질

생각과 감정들을 붙잡기 위해.


이 넓은 세상에서

기댈 곳은 오직 나 자신뿐.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주의 깊게 지키는 것이다.


침묵이 들린다.

귓속에서 그 소리가 울린다.

메아리는 거울 앞을 서성이게 하고,

상념들을 바닥에 흩뜨려 놓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록하는 것뿐이다.

언젠가는 그것이,

버거운 짐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저 알고 싶다.

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지.


침묵 속의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하게 들려온다.



—침묵을 붙들다.


기억은 사라진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래고, 감정은 희미해진다. 이 시는 그 사라짐을 막기 위한 기록의 윤리를 말한다. “기억이 생생할 때, 그것을 기록해야만 한다”는 첫 구절은 단순한 일상의 권유가 아니라, 존재를 붙드는 절박한 선언이다.

화자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기댈 곳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현대인의 고립된 자아를 상징하며, 그 고독 속에서 자기 규칙을 세우고 지켜내는 행위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다. 이 규칙은 외부의 법이 아니라, 내면의 윤리다.

“침묵이 들린다”는 역설은 이 시의 핵심이다. 침묵은 들리지 않지만, 화자는 그것을 내면의 소리로 인식한다. 그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거울 앞을 서성이게 하고, 상념을 흩뜨린다. 거울은 자기 성찰의 상징이며, 흩어진 상념은 정리되지 않은 기억의 파편이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기록하는 것이다.

기록은 때로 짐이 된다. “언젠가는 그것이 버거운 짐이 될지도 모르지만”이라는 고백은, 기억이 반드시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물음이 아니라, 삶을 지속하기 위한 존재론적 탐색이다.

마지막 구절, “침묵 속의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하게 들려온다”는 결말은, 자기 성찰의 끝에서 마침내 들려오는 진실의 소리를 암시한다. 그것은 외부의 소음이 아니라, 내면의 진동이며, 기록을 통해 비로소 들려오는 삶의 이유다.

이 시는 기억과 기록, 침묵과 고독, 그리고 존재의 이유를 탐색하는 철학적 시적 산문이다. 우리는 왜 기록하는가? 그것은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증거는, 침묵 속에서 가장 또렷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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