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존재

by 비루투스

전혀 슬프지 않은데,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잠들 때마다 비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고독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았지만, 떠나지 못했다.

문이 열리자, 비 냄새를 품은 밤공기가 들어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그저 하릴없이 걸었다.

비가 그친 정원에는 못 보던 꽃들이 있었고,
향기 속에서 어떤 감정들이 피어나는 듯했다.

밤하늘 높은 곳에 하얗고 둥근달이 떠있었고,
다른 무언가를, 나는 그곳에 그리고 싶어졌다.



—비 오는 날, 밤공기처럼 스며드는 감정


전혀 슬프지 않은데,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여름」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감정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그저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조용히 꺼내 보인다. 이 시는 감정의 이름을 붙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름 없는 감정들이 비 냄새를 머금은 밤공기처럼 조용히 스며들어온다.


잠들 때마다 비가 오기를 바랐던 마음. 고독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순간.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했던 시간. 이 모든 감정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자각된다. 시인은 감정을 분석하지 않고, 그 감정이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문이 열리고, 밤공기가 들어온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하릴없이 걷는 모습은 방황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행위다. 비가 그친 정원에 핀 못 보던 꽃들, 그 향기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은 새로운 이름을 갖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며, 그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마지막, 밤하늘 높은 곳에 떠 있는 둥근달. 그곳에 다른 무언가를 그리고 싶어졌다는 고백은 감정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감정의 시작이다. 이 시는 회복이나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자각이다.


「여름」은 감정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도 그 깊이를 전하는 시다. 슬픔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 울음은 마음을 흔든다. 방황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 걸음은 내면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 시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배경으로, 감정의 자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조용하고도 강렬한 독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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