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그 멜로디가 귓가에 들리면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눈앞에 서 있는 듯한 사람들
손끝에 닿을 것 같은 장소들
기억이 떠오른다. 얼굴이 떠오른다.
모든 게 너무나도, 선명히 떠오른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내 곁에서 걷던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나와 그녀에 대해, 그리고 다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골똘하게 또 생각을 했다.
그녀가 원한다면, 나는 아무렴 좋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나의 온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손에 쥘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아픔은 없다.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저 울적한 울림이 있을 따름이다.
잃어버린 시간, 떠나간 사람들, 돌아오지 않을 추억,
그리고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잃어버렸던 많은 것들.
그 울림마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이 끝내 사라져 버렸듯이.
— 하루키의 숲을 지나서
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패러디한 작품이지만,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키의 세계를 통과하면서, 자신만의 감정적 결을 덧입힌 재창작이다.
시는 한 멜로디로부터 시작된다. 그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억을 호출하는 감정의 장치다.
“그 멜로디가 귓가에 들리게 되면 /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된다” — 이 구절은 음악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시적 화자를 과거로 데려가는 장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기억은 선명하다. 사람과 장소가 눈앞에 서고,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 선명함은 지금-여기와는 닿지 않는 거리를 품고 있다. 시인은 그 기억 속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 그때 내 곁에서 걷던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생각하고…” — 이 반복은 하루키 특유의 내면 독백 구조를 따르면서도, 관계의 흔적과 자기 성찰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백은 담담하면서도 복잡하다. “그녀가 원한다면 나는 아무렴 좋았다.”
이 문장은 사랑의 비대칭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태도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온기가 아니었다는 인식은, 시적 화자가 감정의 중심에서 밀려났음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자각은 격렬한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픔은 없다. 하나도 아프지 않다. / 그저 울적한 울림이 있을 따름이다.” 이 구절은 감정의 무뎌짐이 아니라, 감정이 침잠한 상태를 보여준다. 울적한 울림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가 지나간 자리에서 남은 잔향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잃어버린 것들—시간, 사람, 추억—이 언급된다. 그리고 시인은 말한다:
“그 울림마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 다른 모든 것이 끝내 사라져 버렸듯이.” 이 문장은 감정의 소멸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기억을 보내는 방식이다.
&『노르웨이의 숲』은 우리나라에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된 적이 있다. 그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정작 하루키는 이 상황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원제가 지닌 중의적인 의미가 한쪽으로만 기울어져버린 데 대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상실의 기록이 아니라, 삶과 죽음, 이별과 회복의 변주가 이어지는 이야기다. 읽어보면 알 수 있듯, 작품의 분위기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나가사와처럼, 30년 이내에 쓰인 책은 선호하지 않는다. 트렌디하거나 쉽게 읽히는 책은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다. 학술서나 지식 전달용이 아니라면, 그런 책들을 굳이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있을까. 목차만 훑어도 맥락이 잡히는 책이라면, 굳이 내용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현실을 왜곡하거나 편을 가르며, 과도하게 긍정적인 책은 무시한다. 그런 책들은 사이비 종교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그 데이터가 지닌 가치라는 말이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읽히는 책이라면, 그 책에는 분명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노르웨이의 숲』은 출간된 지 30년이 되지 않았지만 예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환상적인 장치들이 등장하지만, 읽을수록 감상이 달라지고, 그 시대의 청춘들이 직면했던 문제들이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문학작품을 읽을 때만큼은 펜과 노트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인상적인 구절을 적을 때마다 손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짜릿함,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아마 낚시꾼들이 월척을 잡았을 때 느끼는 손맛이 그렇지 않을까.
이 시는 소설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토대로 나름의 해석을 거쳐 시로 주조한 것이다. 다른 시에서도 그런 문장들의 변형된 모습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관계를 생각한다. 그 사이에는 기즈키가 있었다. 그는 세상에 없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두 사람.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사랑하게 되면서 기즈키에 대한 기억은 옅어져 가지만, 나오코는 그런 와타나베에게서 기즈키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
결국 나오코는 기즈키의 뒤를 따라 ‘노르웨이 숲’으로 가버렸다. 와타나베에게 그러한 이별은 상처로 남았고, 그 상처를 묻어두고 살아간다.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나오코의 얼굴은 흐려지고, 생각나는 것은 그녀와 함께 했던 풍경뿐이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귀에 익은 멜로디가 들린다. 그 울림은 가슴 언저리를 짙게 누른다.
희미해져 가는 상실의 감정과 기억 속에서, 앞으로도 남아있는 조각들을 문장으로 엮을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상실을 품고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