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만큼 사람과 헤어졌다.
교문을 지나 걷는 길,
이름 모를 나무 위에
하얀 꽃이 피어있었다.
포슬포슬한 꽃잎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바람에 실려온
조각난 추억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어느새 흩날린 자리는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평범했던 봄날의 오후
— 따뜻했던 봄날의 이별
이별은 흔히 슬픔과 상실로 기억된다. 시인은 그 감정을 다르게 바라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담담히 회고하며, 그 감정을 자연의 풍경 속에 녹여낸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흐름을 ‘좋은 날’이라 부른다. 이 시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선과 일상의 평온함 속에서 피어난 감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시의 시작은 간결하고 조용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 그만큼 사람과 헤어졌다” — 이 문장은 인생의 흐름을 담백하게 요약한다. 관계는 시작과 끝을 품고 있으며, 그 끝은 때로 말없이 지나간다.
시인은 그 이별을 교문을 지나 걷는 길에서 마주한다. 그 길 위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나무 위의 하얀 꽃”은, 기억 속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다. 하얗다는 색은 순수함과 동시에 공허함을 내포하며, 그 꽃은 감정의 매개체가 된다.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은 시의 감정적 전환점이다. “포슬포슬한 꽃잎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 바람에 실려온 조각난 추억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 여기서 바람은 시간의 흐름이자 감정의 전달자다. 추억은 완전하지 않다. 그것은 조각나 있고, 흩어져 있으며, 때로는 바람에 실려 불쑥 떠오른다. 이 장면은 독자에게도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러나 이 시는 슬픔에 머물지 않는다. “어느새 흩날린 자리는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 이 마지막 장면은 감정의 정화와 수용을 상징한다. 흩날림의 자리에 햇살이 스며들며, 시인은 이별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를 따뜻한 빛으로 채운다. 그것은 치유의 순간이며, 봄이라는 계절이 가진 이중성—이별과 시작—을 동시에 품은 장면이다.
그리고 시의 제목, 「좋은 날」. 이 말은 단순한 긍정이 아니다. 그것은 이별과 회상의 감정을 품은 채,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좋은 날’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슬픔을 부정하지 않고, 추억을 애써 지우지 않으며, 그 모든 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선이 담겨 있다.
「좋은 날」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일상의 틈에서 피어난 감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평범한 날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결국은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흩날리는 꽃잎과 햇살 사이에서 조용히 지나간다. 그래서, 오늘은 좋은 날이다.
& 아마도 이 노래는 주주클럽의 '나는 나'의 가사 중에서 '왜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은 사랑의 기억을 잃는 걸까? 좋았던 일도 많았을 텐데 감추려 하는 이유는 뭘까?'라는 의문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것이다.
나는 공부한답시고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다시피 하다가,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소개팅 형식의 만남을 가지기도 했었고, 결혼을 목적으로 '결정사 '같은 곳에 들락거리기도 했었다. 여러 번의 미팅을 가졌고, 건설적인 대화가 오간 적도 있었으며, 굳이 왜 나왔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 속에서 설렘을 동경했고, 아직도 그런 희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애와 결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처음 두 사람은 설렘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설렘의 방향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그것을 메워보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애는 결이 맞지 않으면 헤어지면 되지만, 결혼은 그 균열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된다. 책임감이 너무 강한 것도, 또는 너무 없는 것도 문제다.
나와 그녀는 어떤 계기 속에서 만났다. 원래부터 알고 지내긴 했지만, 그녀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어떤 책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미니북으로 만들어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 있었는데, 나는 그런 요약본을 봐도 줄거리나 이해는 되겠지만, 원본이 주는 감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얼굴이 불그레해진 걸로 보아 심기가 불편했던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바로 사과했고, 그에 대한 미안함으로부터 관심이 시작되었다. 전화를 주고받다가, 결국 나와 사귀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가졌고, 특히 손이 예뻤다.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였고, 그것에 진심인 나로서는 그런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그때 그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했고, 그래서 첫 데이트도 노량진에서 했다. 피자 전문점에서 수험 방법과 교재, 그리고 꿀팁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아직도 통창으로 바라본 한강 야경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많이 어렸지만 이해심이 있었고, 나의 패턴을 받아주었다. 예쁘고, 어리고, 배려할 줄도 아는 여자친구. 그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녀는 가끔 지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로 이해했고, 흥미롭게 들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녀의 곁에 있는 건 그가 아닌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처럼 떠돌이가 아니었고, 나름 수도권에 정착해서 어느 정도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시간이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그녀와 가정을 꾸리는 것도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꼼꼼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실효성과 자존감의 문제였을까? 그녀와 나 사이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공부 시간을 고려해 전화로만 안부를 묻거나, 같이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공부 패턴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오랜 수험생활에서 생긴 감으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험 공부는 양도 중요하지만 질도 중요하다. 더욱이 일하면서 공부를 하려면 밀도 있게 공부해야 하고, 시간 관리와 체력 안배뿐만 아니라 쉬는 날이면 더 집중해서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쉬는 날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화로만 통화했지만, 별로 그러지 않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일단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별 말이 없는 걸 보니 대충 감이 왔고, 결과는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한 번 그렇게 시험을 접하고 나면 그만둘 줄 알았다. 그녀도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니었고, 굳이 자신과 맞지 않는 공부를 오래 붙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공무원 처우도 최악이라, 임용된 사람들도 자기 발로 나가는 시점이었고, 차라리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실용적인 자산 공부를 하는 게 훨씬 더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험이 끝난 후 그런 취지로 말을 했고, 별 탈 없이 집에 돌아왔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이별의 조짐이 시작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로 데이트 약속을 잡아도 예전보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짧아졌던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결혼에 대한 압박을 하셨고, 좀 더 진지하게 대화를 진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우리 집에 찾아왔다. 같이 밥을 먹으며 거실에서 ‘무한도전’을 봤다. 그러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음악회나 전시회 가는 것보다, 이렇게 집에서 ‘무한도전’ 보는 게 훨씬 더 좋아.”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내 취향과 자신의 성장에 진심인 줄 알았고, 내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은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까지 내게 맞춰주고 있었던 것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해 봤는데, 우리는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녀가 내 앞에서 울었다. 하지만 한동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동안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화냈던 적도 없었고, 싸운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혔다.
“한동안 연락 안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잖아!”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부터 이별을 준비했던 것일까?
그날, 나는 그녀에게 앞으로도 함께 있어달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말없이, 그녀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길목을 조용히 걸었다.
“안녕.”
"안녕..."
그동안 사람을 많이 만났고, 그만큼 많이 헤어졌다.
특별한 이유 없이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있었고, 잠깐 설렘을 주고 간 사람도 있었다.
그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던 걸까?
하지만 그 설렘, 두근거림… 지속되진 못했을 뿐,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굳이 숨기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그때는 ‘좋은 날’이었고, 그녀와의 이별도 평범한 일상 중 하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