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마라톤

#기억

by 비루투스

안갯속 차창너머, 춘천이 보이네!

생각은 벌써 출발선에서 뛰고 있고
발목의 통증이 아리하게 느껴진다.

구름 같은 인파 속, 자리다툼이 시작되고
심장은 두근거리며, 몸의 감각은 깨어나네

‘‘땅!’—출발소리가 들리면,
오르막길이 눈앞에 펼쳐지고,

한숨을 크게, 한껏 불어 쉬고 난 후,
가다듬은 호흡으로 힘차게 내딛는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저 멀리 소양강이 보이네
내리막길이 선사하는, 잠깐의 휴식에 감사한다.

반환점을 돌자, 그 길이 다시 나타나고,
무거워진 다리에 조바심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깔딱 고개를 헐레벌떡, 몇 번씩 또 넘다가 보니,
길은 평평해져 가고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한다.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고,
한 사람이 나를 앞질러 달려 나간다.
온 힘을 다했지만, 다리가 풀려버렸다.

어떻게든 대회는 막이 내려버렸다.

혹시, 그대는 알고 있는가?
짭조름함이 갖는 그 의미를.


— 물, 안개, 눈물, 땀

「춘천마라톤」은 단순한 달리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흔들리는 여정, 그리고 그 흔적을 짭조름한 감정의 결로 남기는 시적 고백이다. 시인은 안갯속 차창 너머로 춘천을 바라보며 출발선에 선다. 이 안개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의 흐릿한 경계다. 그것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전조이며, 시인의 내면을 부유하게 만든다.

달리기가 시작되면, 땀과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 비처럼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 이 구절은 육체적 고통과 감정적 슬픔이 뒤섞인 상태를 보여준다. 땀은 의지의 흔적이고, 눈물은 감정의 표출이다. 시인은 그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져, 짭조름한 맛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오르막길과 깔딱 고개는 삶의 고비와 반복되는 인내의 상징이다. 시인은 헐떡이며 넘고, 다시 평평한 길을 만나며 거리를 좁혀간다. 이 과정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자, 감정의 정화 과정이다. 반환점을 돌고 다시 오르막을 마주하는 순간, 시인은 이미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졌음을 느낀다.

결승선이 눈앞에 다가오고, 누군가가 자신을 앞질러 간다. 시인은 온 힘을 다했지만, 다리가 풀려버린다. 이 장면은 패배가 아니라, 자기 한계의 수용이다. 그리고 그 순간, 시인은 묻는다:

“혹시, 그대는 알고 있는가? 짭조름함이 갖는 그 의미를.”

「춘천마라톤」은 물성의 이미지들을 통해 감정의 층위와 존재의 흔적을 시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짭조름함은 단순한 땀의 맛이 아니다. 그것은 물 안개처럼 흐릿한 기억, 눈물처럼 흘러내린 감정, 땀처럼 남겨진 의지의 흔적이 뒤섞인 감정의 결이다. 시인은 그 맛을 통해 자신이 살아냈음을, 달렸음을, 그리고 느꼈음을 확인한다.


& 이 시는 춘천마라톤을 처음 나갔을 때의 소감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나는 몸을 만드는 데 관심은 많았지만,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편은 아니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던 중, 친한 계장님에게서 출입국마라톤동호회(이하 출마동) 가입 권유를 받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달리기에 입문하게 되었다.

지금은 러닝화를 종류별로 다 가지고 있지만, 그때는 러닝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고, 신발도 나이키에서 나온 기본 러닝화인 '페가수스' 하나뿐이었다. 훈련도 관사 근처에 있는 산책로를 왕복 5km 정도 달리는 수준이었다.

관사 안은 너무 답답했고, 나는 자는 시간이 아니면 관사에 잘 있지 않았다. 근무가 끝나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공항 안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비번 날에는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에서 책을 읽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사 근처에 있는 산책길을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본 적이 있었다. 평소에 안 가보던 생소한 장소에 들어서면서, 뭔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도 잠시, 꽤 먼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 것에 불과했다. 앞으로 내 인생도 이렇듯 다람쥐 챗바퀴처럼 맴돌다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절망했었다. 그러한 와중에 시작하게 된 달리기는 답답한 공간에서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다.

취미가 통하는 직원들과 가끔씩 다른 코스를 함께 달리곤 했었고, 운동한 후 마시는 스포츠 음료는 정말 시원했다. 우리는 카카오톡을 통해 운동 영상과 기록 인증을 공유하며 대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마라톤 대회가 취소되고, 3인 이상 모이는 것도 금지되어 함께 연습할 수 없게 되었다. 통제가 시작되기 전날 밤, 아쉬운 마음에 벚꽃길을 함께 달렸고, 달빛을 머금은 벚꽃은 바람에 흩날리며 속절없이 길가에 나빌레고 있었다. 이후로는 홀로 뛰는 비대면 마라톤 대회에 개별적으로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2023년 10월 23일, 춘천마라톤은 ‘출마동’이 참가하는 첫 공식 행사였다. 우리는 러닝을 좋아하지만 아마추어 수준이라 풀코스를 소화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프코스 2명, 10km 6명, 총 8명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나는 오래 달리는 것보다 마지막에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10km 코스를 신청했다.

평소 러닝할 때는 4km 정도 가볍게 뛰다가 백련산 입구가 보이면 데크까지 계단을 쉬지 않고 뛰어오른다. 하지만 이번엔 대회 일정에 맞춰 10km 구간을 몸에 익히는 정도로 가볍게 달렸고, 데크까지 무리하지 않고 컨디션 유지에 중점을 두었다. 평소 코어와 하체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패착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밀고 나갔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젯밤 덜 풀린 상태에서 하체 운동을 해서인지 왼쪽 발목이 약간 아팠다. 몸이 굳은 상태에서 뛰다가 부상당할까 봐 스트레칭 위주로 몸을 풀었다.

새벽 6시, 직원들과 함께 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안개가 너무 심해 주변이 보이지 않았고, 혹시 비가 와서 대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다행히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는 햇빛이 쨍쨍했다. 전력 질주하다가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릎 보호대를 착용했고, 직원들과 헤어진 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몸을 풀 시간이 없을까 봐 걱정했지만, 주최 측에서 부상 방지를 위해 강사진을 준비해주어 달리기 전 충분히 몸을 풀 수 있었다. 출발 10분 전,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고, 발목 통증도 괜찮을 것 같았다.

‘땅!’ 출발했다. 나는 선두권을 차지하기 위해 속력을 냈다. 그런데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오르막길이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처음엔 가볍게 뛰다가 몸에 탄력이 오르면 속도를 내는데, 처음부터 오르막길에서 진을 빼버리니 정작 평지에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심폐지구력이 부족해 호흡이 가빠졌고, 초반부터 복식호흡을 하게 되면서 체력 소모가 심해졌다. 달리는 동안 코어 근육이 무리하게 수축되어 배가 땅겼고, 나는 계속 뒤처지게 되었다. 마라톤에서 왕성한 근육량은 오히려 체력 소모의 주된 요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속도를 내기보다 페이스를 유지하며 체력을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멘털을 붙잡기 위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달리면서 내가 했던 훈련의 취약점을 점검해보았다. 근본적인 이유는 심폐지구력 운동을 게을리한 것이고, 허벅지 위쪽 근육에 무리가 많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취약점들이 체력 소모를 야기했고, 그것은 헬스로만 다져지기에는 부족한 부분이었다. 나는 훈련을 앞두고 컨디션을 유지하기보다는 단계적인 압박 속에서 서서히 강도를 올리는 훈련이 더 적절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힘이 들수록 너무 아쉬웠다.

사람들을 조금씩 따돌리기 위해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냈고, 평지에서 체력을 회복하여 다시 만나게 될 깔딱 고개에 대비했다. 반환점을 돌아 다시 뛰어왔던 길로 향할 때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초반에 페이스를 잃었기 때문에 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도착까지 이제 1km 정도 남았다. 한 번 돌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깔딱 고개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때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전력 질주했다. 앞서가던 사람들을 하나씩 제쳐갈 때, 마음 깊은 곳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도착선이 눈앞에 가까워졌을 때, 이제 끝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려는 찰나, 누군가가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제쳐버렸다. 순간 허탈해져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는 절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몸으로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순위권에 들지는 못했지만, 모든 것을 걸고 하얗게 불태웠다. 대회를 마치고 직원들과 닭갈비를 먹으며 오늘의 레이스에 대한 느낌과 기록을 공유했다. 신기했던 것은 오늘 레이스가 ‘마의 구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차를 탔던 3명이 평소 기록보다 시간을 단축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마라톤 어플을 다운로드한 후 각자의 기록을 단톡방에 올렸다.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떠날 시간이 되자, 맑던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돌아가며 내년 대회에서는 제대로 준비해서 달리자고 다짐했다.

이전 12화그랬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