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철이 한강을 지난다.
어느새 책 속으로 빠져든다.
익숙한 듯, 낯선 그 단어
왠지 슴슴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심코 넘긴 종잇장에 붙들려
눈은 묵묵히 활자를 따라간다.
왜일까?
갑자기 목이 메어온다.
다시 앞장을 뒤적인다.
무엇이 붙잡는 것일까?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전철이 그곳을 지나간다.
어느새 눈가가 젖어온다.
— 조용한 울림, 기억의 터널을 지나며
「마음」은 일상 속에서 불쑥 찾아오는 감정의 파동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전철이라는 반복적인 공간, 책이라는 조용한 매개체, 그리고 그 안에서 갑자기 밀려오는 감정의 흔들림—이 모든 요소가 절제된 언어로 조화롭게 엮여 있다.
시의 시작은 전철이 한강을 지나가는 장면이다. 그 순간, 화자는 책 속으로 빠져든다. 책 속의 단어 하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오고,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작은 불편함은 감정의 시작점이 된다. 무심코 넘긴 종잇장에 붙들리고, 눈은 묵묵히 활자를 따라간다. 그리고 갑자기 목이 메고, 앞장을 다시 뒤적이게 된다.
이 흐름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문장과 닮아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그 문장은 현실과 감정의 경계가 터널처럼 이어지고, 그 끝에서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시에서도 전철이 한강을 지나며, 책 속 단어 하나가 감정의 터널을 열고, 그 끝에서 눈가가 젖어온다.『설국』의 설원은 차갑고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격정적인 감정이 숨어 있다. 「마음」 역시 겉으로는 조용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감정,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억이 흐르고 있다.
“전철이 그곳을 지나간다”는 구절은 시의 정서적 전환점이다. ‘그곳’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독자의 마음속에 어떤 장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순간, 눈물은 설국의 눈처럼 조용히 내려앉는다. 감정은 설명되지 않고, 그저 스며든다.
이 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준다. 그 방식은 더 진실하고, 더 오래 남는다. 독자는 자신의 기억 속 ‘그곳’을 떠올리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젖어오는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마음」은 말보다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전하는 시다. 그 조용한 울림은 독자의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고,
말없이 오래 머문다.
& 이 시는 마라톤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하는 한 회원의 카톡 메시지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 감상을 시로 옮겼다.
우리가 속한 동호회는 목동처럼 크거나 유명하진 않지만, 3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지역의 단단한 공동체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만큼 개성과 취향도 다양하다.
지난여름, 강원도 춘곡리 ‘아침가리’ 계곡에서 전지훈련을 겸한 여행이 있었다. 저녁 술자리에서 취향 이야기를 나누다, 뜻밖에 독서모임이 생겨났다. 마라톤과 독서—의외로 잘 어울렸다.
세 번째 모임쯤 되었을까. 내가 추천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선정되었고, 나는 발제를 맡아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인상적인 구절을 옮겨 적고, 두세 번 정독하며 책의 구조와 주제를 정리했다.
발제는 단순한 요약이 아니다. 책에서 파생되는 생각들을 엮어내는 작업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책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자연스레 글이 써진다. 요즘엔 챗GPT로 질문을 뽑기도 하지만, 그건 문제풀이식 접근에 불과하다.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수준에서 멈추게 될 뿐이다.
나는 여전히 직접 발제해보는 것을 권한다. 단서가 문장으로 확장되고, 그것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관통해야 한다. 그런 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굳이 책을 읽는 척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습관은 책을 읽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그는 문장을 엮듯이 사람 사이의 심리와 관계까지도 엮게 될 것이다. 그것은 리더의 특징과도 겹친다.
『마음』은 ‘노르웨이의 숲’처럼 삼각형 구조를 지닌다. 선생과 벗, 그리고 한 여인. 셋이 함께 있을 때는 완벽했지만, 질투가 틈을 만들고, 그 틈은 결국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선생은 친구의 죽음 이후 마음이 죽은 채 살아가고, 결국 주인공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 뒤 세상을 떠난다.
그날, 한 회원이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오늘 전철을 타고 가면서 『고코로』를 읽기 시작했다. 번역 제목이 ‘마음’인데, 왠지 슴슴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이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넘긴 후 전철에서 내릴 때까지 『마음』에서 ‘마음’을 떼지 못했다. 이제 겨우 1/3을 읽었는데, 이 소설은 나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왜일까…”
나는 놀랐다. 평소 책에 대한 감상을 잘 드러내지 않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특히 사회과학과 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그런 분이 문학작품에 감화를 받다니.
‘슴슴하다’—간이 약해 밋밋하다는 뜻. 그런데 그 밋밋함이, 어느 순간 깊은 울림으로 바뀌었다. 형님의 표현은 감정의 전환을 정확히 짚어냈다.
특히 마지막 문장, “왜일까…”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도 그 의문을 함께 붙잡고 싶어졌다.
'마음'의 어떤 문장이 형님의 마음 속에 울림을 가져왔을까.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마음의 이미지와 연상시키며 메시지를 반복해서 읽었다. 차마 말하지 못해 묻어둔 감정을 되돌아보게 만든 어떤 기억을 묘사하고 싶었다.
나는 그분의 글을 시로 개작해 단톡방에 올렸다. 곧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
그 다음이 더 인상 깊었다. 다른 회원들이 그 시를 배경화면 이미지로 만들어 ‘챌린지’처럼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은 우리 사이에 오래도록 남을,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훅’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감정, 혹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슬픔. 그럴 때 우리는 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모임이 끝난 뒤, 형님들과 참치회와 사케를 나눴다. 술잔 사이로 『마음』의 여운은 오래도록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