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기억

by 비루투스

대회가 시작된다.
후회가 밀려온다.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심장은 더욱 힘차게 뛰고,

리듬은 끊어지지 않는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보이는 않는 '끝'을 마주하고,
침묵 속에서 나는 '나'를 만난다.

어제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젖힌다.

두 발이 강하게 땅을 박차고
모든 생각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오직, 앞으로 나아갈 '힘'만이 남았다.


—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달리다

「마라톤」은 육체적 행위인 달리기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시는 대회의 시작과 함께 밀려오는 후회로 출발한다. 이는 단순한 긴장감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마라톤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이 시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초반부에서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 심장은 더욱 힘차게 뛰고”라는 구절은 신체적 고통과 생명력의 역설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고통은 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의지의 증폭으로 이어진다. 이는 마라톤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기 한계를 넘어서려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중반부에서는 “리듬은 끊어지지 않는다 /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라는 표현을 통해, 의식과 신체가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을 묘사한다. 이때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존재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행위가 된다.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달리는 과정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인간의 본능적 움직임을 상징한다.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침묵 속에서 나는 ‘나’를 만난다”이다. 이는 마라톤의 본질을 꿰뚫는 표현이다. 고통과 반복, 그리고 고요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 만남은 외부의 소음이 사라진 순간에 이루어지며, 그 고요는 자기 인식의 공간이 된다.

후반부에서는 “어제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 모든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젖힌다”라는 구절을 통해, 시적 화자의 자기 초월의 의지가 드러난다. 마라톤은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기 위한 도전이며, 그 과정에서 모든 가능성을 시험하는 실험의 장이 된다.

마지막 구절 “두 발이 강하게 땅을 박차고 / 모든 생각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 오직, 앞으로 나아갈 ‘힘’만이 남았다”는 시 전체의 정서를 응축한다. 이 시점에서 달리기는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이 된다. 생각과 감정이 사라지고, 존재의 본질만이 남는 순간이다.


& 요즘 마라톤은 달리는 것보다 ‘접수하는 것’이 더 어렵다. 메이저 대회는 오픈과 동시에 마감되고, 대학입시만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웃돈을 주고 패키지를 사거나, 자원봉사로 다음 회차 우선권을 얻는 방식은 이제 러너들 사이에서 하나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이 열풍을 단순히 건강이나 유행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내 의지로 시간과 공간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주는 것 같다. 마라톤은 이 삭막한 도시에 숨통을 트여주는 자유의 상징이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마라톤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선다. 완주를 목표로 삼고, 순위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하며, 함께 뛰는 사람들과 기운을 나누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는데,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몸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은 혼자서는 얻기 어렵다. 물론 운동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의적 타의적으로 컨디션이 저하되거나 리듬이 깨지게 되면 운동을 건너뛰어야 할 당위적인 이유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게 된다.

그래서 동호회의 존재는 더욱 중요해진다. 확실히 동호회에 가입하면 훈련 시간에 맞춰 어느 정도 스케줄을 맞추게 되고, 기록이 엇비슷한 러너들과 이야기하면서 같이 뛰다 보면 어느새 목표 지점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한계와 리듬을 놓치게 되면 오버페이스하다 부상에 직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나의 올해는 조금 아쉬웠다. 올해는 메이저 대회를 다 놓치고, '인천마라톤'을 겨우 잡아서 접수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장거리 훈련을 게을리해서 달리다 퍼질까 봐 걱정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달리다 보면 힘들어서 그런 걱정을 할 여유도 없을 것이다. 생각은 그 뒤를 좇아가는 수준에 급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브3는 아마추어 러너에게 꿈의 기록이다. 하지만 나는 그 꿈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내가 속한 동호회에는 그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정말 성실한 사람들이다. 직업도 분명하고, 그 중에는 아이 둘을 키우는 어머니도 있다. 그들의 생활 패턴을 면밀히 살펴보면 일단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고, 지켜야 하는 패턴들을 철저히 지킨다. 훈련은 훈련대로 하면서도 개인 운동도 부지런히 한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는 근처에도 못 간다. 다만 글을 쓴다는 핑계로 약간 비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그들에게도 목표를 이룬 후의 감정은 복잡했다. 그 중의 한 명에게 서브3 달성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냥 모든 게 허무한 것처럼 느껴져요. 내가 달리기를 또 할 것인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런 것일까. 범부인 나로서는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 허무함조차도, 마라톤이 우리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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