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그녀는 당신의 선택을 기다린다.

#군주론, #마키아벨리

by 비루투스

* 시간은 모든 것을 휩쓸어 간 후에 선과 더불어 악을 실어 오기 때문입니다. 1)


이탈리아의 분열

로마와 스파르타는 무장을 튼튼히 하고 있었으므로 오랫동안 자유국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스위스는 강력히 무장하고 있었으므로 국민들이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2)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한 몸에 선과 악의 머리를 가진 ‘아브락사스’라는 신을 설명한다. 그 신의 속성을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인간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어둠의 속성까지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일, 즉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키아벨리는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시대에 인간 본성의 이면을 직시했던 사상가였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분열된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었고, 그들은 법과 제도보다 교권을 우위에 두었으며, 심지어는 자신들의 군대도 보유하지 않았다. 분쟁이 생기면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외국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존속을 위협받게 되었고 막대한 비용을 요구받았다.

그러한 국가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당시 피렌체의 권력자였던 메디치에게 헌정한 책, 바로 그 유명한 『군주론』을 집필한다. 이 책은 필요하다면 사악한 수단도 쓸 수 있다는 내용 때문에 여러 해석을 야기한다. 공화론자였던 그가 군주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체사레 보르자

군주가 신민들을 결속시키고 충성심을 얻기 위해서는 결코 잔인하다는 비난을 듣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나친 자비심을 베풀어 오히려 전란과 살생 및 약탈을 불러일으키는 군주와 비교하면, 매우 근소한 잔인함을 보이면서 통치해 나가는 군주가 더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3)

당시 마키아벨리는 제2서기관의 직분이었고, 교황의 사생아이자 실권자였던 체사레 보르자를 만난 후, 국난을 타개할 이상적인 모델로서 그를 주목한다. 체사레는 신의를 중시하면서도 경우에 따라 그것을 어길 줄 알았고, 냉정하지만 온화한 측면도 있었다. 교권을 등에 업고 당시의 열강들과 대등하게 외교를 할 줄도 알았다.

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과감한 결단을 토대로 한 신속한 추진력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이라는 정치적 명분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지만 한편으로는 존경하기도 했다. 이는 병으로 실각한 체사레를 위해 끝까지 싸웠던 로마냐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현실주의자로서 인간의 악함도 경우에 따라 필요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필요하다’는 것은 최후의 수단일 때 고려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를 성악론자로만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브락사스처럼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군주제는 목적이 아니라, 로마시대의 공화 정체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 사실은 또 다른 저서인 『로마사 논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하나의 국가 정체를 고집한 것이 아니라, 고대의 기록과 현재의 정세 그리고 미래의 예상까지 고려하였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통찰

이 점에 대해서 남들로부터 두려움을 받기보다 사랑받는 편이 좋으냐, 아니면 사랑받기보다는 자기를 두려워하는 편이 좋으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저는 이 물음에 대하여 양쪽을 다 바라고 싶습니다. 4)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감정에도 냉철한 시선을 유지했다. 그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전략적 구조로 이해했다. 『군주론』에서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안전하다”라고 말한 그는, 연애에서도 존중과 경계 설정을 중시했다.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관계의 균형과 신뢰 구축을 우선시한 것이다.


결혼에 대해서도 마키아벨리는 감정보다 정치적·사회적 연합의 수단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희곡 『만드라 골라』에서는 결혼 제도의 위선과 인간 욕망의 충돌을 풍자하며, 결혼이 반드시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그가 인간의 본성을 선악의 이분법이 아닌, 아브락사스처럼 복합적이고 전략적인 존재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군주론』의 해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엄연히 자유의지가 있는 이상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운명이란 모든 인간사의 반만 주재할 뿐이며, 나머지 반은 우리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판단합니다. 5)

『군주론』은 군주제 확립이 아니라, 시대에 적합한 정치체계를 주장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즉 군주라고 해서 그 지위가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도 군주가 될 수 있으며, 공화국일지라도 때로는 독재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여기서 ‘인민’이란 말은 북한에서 먼저 사용했기 때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지만, 사실 대의제인 nation 주권의 관념적·추상적 국민이 아니라, 주권의 보유자와 행사자가 일치하는 유권적 시민의 총체로서 직접민주제의 주권자를 말한다.

세계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세계 간에 갈등과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무너진 토대 위에서 새로운 시대가 창조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조화를 중시한 다른 사상가들과는 달리, 갈등을 정치의 필요적 속성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운명은 여성의 속성을 가지므로, 자유로운 인간은 그녀를 정복할 수 있는 ‘비루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비루투는 미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라틴어 어원에 따라 주로 ‘남성적인 능력’ 또는 ‘탁월함’ 등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인간은 운명에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중세를 지배하고 있었던 기독교 정신에서 벗어나, 그리스·로마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이는 그가 “약한 자의 천국에 가기보다 차라리 지옥을 선택하겠다.”라고 말했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은 항상 충돌하게 마련이며, 역사를 통해서 미루어볼 때 성군이 명군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성군이라 일컬을 수 있는 세종과 정조도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군사력을 중요시 여겼다는 사실을 역사적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의 주체

이 여신은 일을 신중하게 처리해 나가는 사람보다 과감한 자에게 매력을 느낄 것입니다. 6)

마키아벨리의 어조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하려면 할 수도 있다.’는 통사 구조가 자주 발견된다. 어떤 결정이 옳은 것인지 그것은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오직 역사만이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답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가치들의 충돌 속에서 변해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 정체만 갖추었다고 해서 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이상향은 주체적인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화국이었다. 비록 그는 이상을 뜻대로 실현하지 못했지만, 그의 이론은 더욱 복잡해진 현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운명에 지배당할 것인가?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녀 역시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운명, 그녀는 그의 선택을 기다린다』 논리적 구조 (챗GPT분석)


I. 서론: 시간과 인간의 본성
-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과 정치 현실을 선악의 이분법이 아닌 시간과 운명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라 보았다.
- 이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등장하는 선과 악을 동시에 품은 신 ‘아브락사스’와도 연결된다.
- 인간은 어둠의 속성까지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II. 이탈리아의 분열과 『군주론』의 탄생
- 마키아벨리는 무장과 자주성을 국가 존속의 핵심으로 보았다.
-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었고, 교권에 의존하며 군사적 자립이 부족했다.
- 외세의 침입과 내부의 무기력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현실적 정치 전략을 제시했다.
- 공화주의자였지만, 군주제를 전략적 수단으로 제안한 점에서 오해를 낳기도 했다.

III. 체사레 보르자: 이상적 군주의 모델
-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를 현실 정치의 이상적 군주로 보았다.
- 그는 신의를 중시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신의를 어길 줄 아는 유연함을 가졌고,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주목받았다.
- 마키아벨리는 악의 사용조차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 이는 인간 본성을 복합적 존재로 이해한 아브락사스적 시각과 맞닿아 있다.

IV. 사랑과 결혼에 대한 통찰
- 마키아벨리는 사랑을 감정이 아닌 전략적 관계로 보았다.
- 그는 존중과 경계 설정을 통해 관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 결혼 역시 감정의 산물이 아닌 정치적 연합의 수단으로 이해했다.
- 희곡 『만드라 골라』에서는 결혼 제도의 위선과 인간 욕망을 풍자하며, 현실주의적 인간관을 드러냈다.

V. 『군주론』의 해석과 인민의 역할
- 『군주론』은 군주제의 찬양서가 아니라, 시대에 적합한 정치체계에 대한 제안서이다.
- 마키아벨리는 ‘인민’도 군주가 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공화국에서도 일시적 독재가 필요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 여기서 ‘인민’은 단순한 국민이 아니라, 주권을 행사하는 유권적 시민 집단을 의미한다.
- 그는 갈등을 정치의 본질로 이해했으며, 운명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능력을 ‘비루투’라 불렀다.

VI.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
- 마키아벨리는 운명을 여성에 비유하며, 그것을 정복하려면 과감한 결단력(virtù)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 그는 신의 섭리보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강조했다.
- 역사의 주체는 제도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이며, 마키아벨리의 이상향은 주체적 시민의 공화국이었다.
- 그는 이상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VII. 결론: 운명과 인간의 선택
- 운명에 지배당할 것인가?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 그녀 역시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 참고도서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스타북스(신동운, 밀리의 서재 기준), 2020.05.20 >


1) 48p

2) 178p

3) 237p

4) 239p

5) 352p

6) 361p

7) 370p


& 무라카미 하루키의 『1973년의 핀볼』은 자전적 성격이 짙은 소설이다. 주인공이 감정의 공허함과 현실감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는 장면은, 철학을 통해 삶의 균열을 붙잡으려는 나의 태도와 겹쳐졌다. 나 역시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환상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현실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휩쓸릴 수밖에 없고, 결국 추억과 기대마저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는 남아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하여 표면으로 끌어올리고, 그 형태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예술이며, 그 도구는 바로 ‘글’이다.


한때 종교적 환상이 내 삶의 이유였던 적도 있다. 그러나 뒤늦게 깨달은 것은, 신에 대한 요구가 까다로울수록 짊어져야 할 짐도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예수가 바라는 것은 십자가를 그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당연한 것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 약한 위치에 있는 자의 몫이다. 아직도 그 상태에 머물러 있고 싶다면, 자신의 삶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안정도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잃는 것도 따른다. 그리고 내가 믿고 있던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반복된 언어 주입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철학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책을 다 읽는다고 해서 바람직한 세상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해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잡히지 않는 균열들을 이어 붙이며 나름의 틀을 만들고 논리를 세워가는 데 철학의 목적이 있다.


하지만 철학을 개별 학문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거대담론으로 시작해 뜬금없는 소리로 끝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은 인문학의 관점에서 조망되어야 한다.


인문학은 문학·역사·철학을 아우르며, 서로 분리된 영역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 이는 연금술이나 화학처럼 원소와 원소가 결합해 분자가 되는 과정과 같다. 역사의 사건이 원소라면 철학은 그 원소에 기호를 붙이고, 문학은 상상력을 통해 형태를 부여한다.


나는 스승이 없다.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교육기관에서 사상과 신념을 구체화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 오히려 교육 현장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고, 실패와 오류 속에서 교훈을 얻었으며,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고 상상력을 쥐어짜왔다.


내 글이 특색 있게 읽힌다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감상적인 글을 쓴다고 해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커다란 오산이다. 환상도 현실과 연관성이 떨어진다면 내게는 망상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꼽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를 냉혹한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기억하지만, 나는 그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냉철한 현실을 직시한 철학자이자 전략가로 본다.


그의 궁극적 이상은 로마 공화정의 복귀였다. 『군주론』은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 처방이었다. 그는 피렌체의 혼란을 목도하며 공화정 회복을 위해 일시적으로 강력한 군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시민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용병은 충성심이 없고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자주성과 공동체의 힘은 시민의 무장된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내가 가장 경멸하는 리더들은 자기 머릿속 생각만이 최선이라 우기는 자들이다. 사상과 이념에만 매여 사회를 어지럽히는 자들도 같은 수준으로 본다. 자신들은 선하다고 착각하겠지만, 결국 현실을 외면한 채 혼란을 키우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땅을 딛고 있어야 하늘을 볼 수 있듯, 철학도 현실과 맞닿아 있지 않다면 기득권자들의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철학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대표적인 대립이다. 현대 철학은 인간의 가능성과 도덕적 완성을 꿈꾸며, 때로는 두 관점을 절충하려 한다. 그러나 법은 다르다. 법은 인간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충동적이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강제 장치로 작동한다.


법은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해석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그런 역할을 맡은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에만 기댈 수 없기 때문에 사법 주체들의 견제와 균형이 필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도 개혁 논의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철학적 성찰과 연결되어야 한다.


사랑과 결혼 역시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치열하게 작동하는 영역이다. 전통적 철학은 사랑을 숭고한 감정, 결혼을 이상적 결합으로 찬미했지만,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쉽게 변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유동적인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는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순간을, 결혼이 정치적·사회적 이해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현실을 꿰뚫어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이상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전략적 사고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이상적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필요에 따라 선도 악도 행할 수 있는 존재다. 그렇기에 지도자는 현실의 복잡성과 인간의 본질을 이해한 위에 이상을 설계하고 실현해야 한다.


그의 정치철학을 관통하는 두 개념은 ‘비루투(Virtù)’와 ‘포르투나(Fortuna)’다. 비루투는 결단력·용기·지략·현실 감각을 아우르는 능동적 힘이고, 포르투나는 예측 불가능한 운명을 상징한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비루투를 통해 포르투나의 변덕에 맞서 싸울 수 있으며, 준비된 자만이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운명은 준비된 자의 편에 선다는 그의 신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세계는 혼란과 분열 속에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방향이라기보다, 경계심이 느슨해진 결과다. 2차 대전 이후 구축된 국제 질서는 점차 해이해졌고, 그 틈을 타 새로운 불안정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세계 질서의 균열이 현실화된 상징적 사건이다.


마키아벨리라면 이를 단순한 혼란으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를 준비되지 못한 세계가 맞이한 새로운 국면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즉, 비루투를 갖춘 지도자와 공동체만이 포르투나의 변덕을 넘어설 수 있으며, 불안정한 시대를 새로운 질서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을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상을 설계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마키아벨리에게서 배워야 할 탁월성이다.



< 붉은 선언 >


피냄새가 난다.

젊은 사자들이여,


승리에 얽매이기보다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마라.


칠흑 같은 밤하늘 아래

이름 없는 별들이 빛나고,


그럴듯한 수사 뒤에 감춰졌던,

진실은 마침내 드러날 것이다.


어둠을 뚫고 아침이 오면,

대지는 붉은빛으로 물든다.


변화는 권태를 찢을 것이며

저기, 희망의 고지가 보인다.


이제, 예언자의 선언이 이루어졌으니,

그때, 너희의 언어가 세상을 흔들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빼앗거나 우리 몫의 영광을 앗아가길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직접 하시지 않습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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