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나쓰메 소세키, #비, #백합
유독 내가 글의 소재로 삼는 작가와 작품에는 ‘Made in Japan’이 많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꽉 채워진 문장보다는 여백에 의미를 두는 방식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문장과 장면들이 유독 일본의 문학과 영화 속에서 자주 눈에 띄었다.
한국의 소설이나 영화는 대체로 선이 굵고 직선적인 인상을 준다.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그 밀도가 숨 막힐 정도로 빽빽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독립영화조차 창작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배어 있어, 그 의도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모든 작품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반면 일본의 작품은 직설을 피하고, 에둘러 말하며, 보여주지 않고도 본 듯한 인상을 남긴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번지는 여백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래서인지 일본 작품은 읽을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고, 자연스레 여러 번 반복해 읽게 된다.
한국 작품은 인물 중심적이거나, 사물과 배경이 지나치게 의인화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일본 작품은 사물과 배경 자체가 지닌 메타포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인물의 감정이나 서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주변 환경이나 사물의 분위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겉으로는 내가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구분 짓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일본의 표현 방식에서 오히려 우리 고유의 정서를 느낄 때가 많다. 아마도 내가 느끼는 반감은 기다려줄 만한 여유 없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그 정도에 있어서 유독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이 잘 지켜온 섬세하고 여백을 중시하는 미학은, 한때 우리가 가장 잘하던 것이기도 했다. 반면 요즘의 한국 작품에서는 서양의 직선적이고 감정 과잉적인 스타일이 더 짙게 배어 나오는 듯하다. 다시 말해, 일본의 문화 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오래된 감각이 조용히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
창문 밖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기약도 없이,
누군가를 마주하고 싶었다.
길 건너편에,
작은 꽃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백합 한 다발을 품에 안았고,
젖은 꽃잎엔,
빗방울이… 함뿍 맺혀 있었다.
방 안은,
강한 향기로… 가득 차올랐고,
옛 그림자가,
연기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왜 나는,
좀 더 일찍 돌아갈 수 없었을까?'
그땐,
모든 것들이… 자유로웠는데,
작은 일에… 웃을 수 있었는데.
세상이… 아름다웠지.
그리고… 내 옆엔,
언제나... 네가 있었어.
꿈은 곧… 깨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각 없이,
팔짱을 끼고,
방안을 서성이다,
백합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어지러울 때까지,
그 향기를 맡으며,
가슴 깊은 곳까지,
천천히… 들이마셨다.
비는,
소리를 내며 그침 없이 내렸다.
나는,
빗소리에 갇혀 격리되고 싶었다.
---
움직이지 않는 사물들 속에, 흩어진 감정들이 고요히 흔들린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는 외로움의 깊이를 드러내며, 시선은 길 건너편의 작은 꽃집으로 옮겨간다
젖은 꽃잎에는 빗방울이 함뿍 맺혀있고, 방 안을 가득 채운 향기가 잊고 있던 기억을 연기처럼 피워낸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작은 일에도 웃을 수 있었다. 세상이 아름다웠고, 그 곁에는 ‘너’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너'를 감정의 여백으로 두고자 한다.
현실은 과거의 아름다움을 허락하지 않았다.
꿈은 곧 깨지고, 머리는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방 안을 서성이다가 백합 곁으로 다가가, 깊게 향기를 들이마신다. 창밖의 빗소리가 귀를 막아주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