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길, #실존주의. #삶, #숙명

by 비루투스


언제나 그 길은 있었다
나는 정처 없이 걸어갔다


험하고 구불구불해도 괜찮았다
삶은 애초부터 얽혀 있었으니까

머리 위로 까마귀가 날았다
이유 없이 돌을 맞는 모습이
서글프게도 나와 닮아 있다

끝이 보이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또다시 넘어질 테니까


무언가 하고 있으면 좋겠다
명분이라도 남길 수 있으니

정처 없이 걸었던 그 길을,
오늘은 숨 가쁘게 달려갔다

호흡을 가다듬자—
그곳엔 또 다른 길이
어둠처럼 뻗어 있었다

그 길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가슴 한 편은 구멍처럼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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