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낭만인가? 부담인가?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알랑드보통,#결혼,#낭만

by 비루투스

*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조건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꿰뚫어 보지 못한다고 남들에게 분노하거나 비난을 퍼붓기도 하고, 발작적으로 한 관계에서 다른 관계로 갈아타기도 하며, 깊이가 없다고 한쪽 성 전체를 탓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적정한 나이가 되면 연애와 취업 그리고 결혼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된 후에 알게 된 것은 그러한 단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시기를 놓치면 점점 더 뒤처지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러한 시기에 주어지는 시간은 짧고, 한번 기회를 놓치면 그런 순간은 다시 오기 힘들며,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범주 속에 들지 못하면 개인의 정체성은 무시되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편집


그는 엄격히 자신을 편집한다. 드러냄의 기쁨이 크다해도 자신의 성격 중 몇 가지 측면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내보이는 건 이 단계에서는 결코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주입식 공부와 암기 위주의 시험방식과 맞지 않아 남들보다 취업의 시기가 뒤쳐지게 되었다. 그 시간은 엄청난 부담과 콤플렉스로 다가왔고,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괜찮은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감정을 추스르고 그저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책임질 수 없는 사랑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원하는 위치에 도달할 때까지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성적으로 되어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철저해지고, 냉정해져 갔고, 그와 반대로 감정들은 점점 메말라갔다.



계약


자궁에 있을 때 우리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모든 필요가 충족되었다. 적절한 위안이 저절로 발생했다.


내가 취업을 하게 되었을 때는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결혼 적령기가 위협받게 될 때쯤, 소개팅이나 주선의 형태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대화는 무리 없이 진행되기는 했으나, 조건부로 만나게 되는 관계 속에서 예전과 같은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라도 만나기 위해 모임에 찾아가기도 했었지만, 그러한 만남이 의미가 아닌 의도로써 받아들여졌을 때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다.


결혼은 흔히들 신성한 계약이라고 일컬어진다. 여기서 계약이란 상호 간에 권리와 의무가 수반되는 것을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현실에 부딪히게 되면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같이 짊어지게 될 의무에 대해서는 피하려고 하거나, 일방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래서 '그'와 '그녀'가 만남에 실패하는 이유는 서로가 응석받이로 태어나 절름발이의 상태로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영향도 크다.


만남의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의 검열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나, 그 검열의 기준이 지나치게 촘촘할 경우에는 사랑은 등가 관계의 이외에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사랑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쳐있으며, 그 특성은 촘촘한 것이라기보다 포괄적인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참을수 없는 진실


우리는 사랑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건 친밀함이다. 우리는 유년기에 아주 익숙했던 감정들 그대로를 성별의 관계 안에서 재현하길 바라고 그 감정은 다만 애정과 보살핌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결혼일끼?

나는 사랑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고, 결혼은 그러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 부딪치게 될 때는, 그러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물론 사랑에도 무게감과 진중함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러한 것들을 짐으로만 여기는 것은 고귀한 감정을 무거운 부담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세월이 지나 기억을 돌이켜보면, 보다 나은 사랑이 순차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이 지나가면, 그 감정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신체 운동과 작용원리가 같으며, 가벼운 것부터 순차적으로 강도를 높였을 때, 몸이 서서히 무게에 적응하게 되고, 설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의 용량을 넘는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부상의 위험이 높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고 있고, 그것의 무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짓눌러 버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게 만들어버린다.


나이를 먹게 되면 점점 조급해지고 책임감과 부담이 더해지게 되며, 잃어버린 감정들은 그만큼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한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직접 대면하고 나서야, 방황에 대한 답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단지 잃어버린 시간들을 회복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 대상은 사랑과 행복 같은 추상적인 단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나버린 모든 것에 관한 추억과 감정들이었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그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본질


성숙함이란 낭만적 사랑이 사랑을 주기보다 찾기를,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기를 추구하는데 주로 초점을 맞춘 편협하고 다소 인색한 감정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사랑의 공식에도 양자역학이 적용될 수 있으며,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대하는지에 따라 측정값은 서로 달라질 수 있다. 사랑을 조건으로 본다면,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질량을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무게에 따라 서로를 짓누르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이 질량이 아닌 파장이라면, 샤갈의 그림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무중력의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게 만드는 매개체가 될 수 있고, 두 사람을 이어주는 하나의 사랑은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 벽을 뚫고 사방으로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20년이 지나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불완전한 사람들이 만나 사랑하고 서로가 여러 가지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결혼은 서서히 완전해져 가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그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들을 청춘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인구 소멸을 걱정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완전한 사랑의 조건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한꺼번에 모든 것이 충족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완전함은 서로가 미비한 점들을 서서히 보완해 나가는 과정 속에 내포되어 있고, 진정한 사랑은 까다롭고 불쾌한 행동 이면에 놓여있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최대한 관대하게 해석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필요로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경험하지도 않고서 이성으로만 정의 내린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쓰는 글들이 딱딱하고 어렵다는 핀잔을 종종 듣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에 치우쳐서만 묘사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사랑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들 하지만, 과정 자체를 낭만적이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랑 그 자체는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등. 완전히 성격이 달라보이는 것까지도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바라고, 믿고, 참아낼 수 있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 감정을, 그 이름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도서

<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드보통, 은행나무, 2016.08.25. >


"미안해요, 스포프 씨, 내가 항상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못 되어줬어."

그가 그녀의 드러난 팔을 쓰다듬으며 대답한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훌륭했지."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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