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양귀자,#사양, #다자이오사무
*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나는 보통 독서를 할 때 두 권 정도를 주변에 깔아놓고, 책을 읽다 약간 지루해진다고 싶어지면 근처에 있는 다른 책들을 번갈아 읽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 보면 낯설게 여겨지는 부분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의외로 잘 맞아떨어진다는 기분이 들때가 있는데, 양귀자와 '모순'과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라는 작품을 읽을 때가 그러했다. 두 책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전자는 여성작가가, 후자는 남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빌려 서술하고 있고, 각각 현대사회와 1950년대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시대를 넘나들어 공감대가 형성되는 어떤 감상이 있었다. 필자는 두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그것을 표현해보고자 한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 안진진 >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은 가난의 인생역정을 경험한 소위 말하는 '애어른'이다. 그녀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촌들에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도 부모를 원망하기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갈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은 '모순'을 모티브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되고, 일단 '안진진' 이름부터 모순적인 의미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참될 眞이 2개나 들어가지만, 성이 안 씨이기 때문에, 진지하지 않다는 해석으로 보여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일란성쌍둥이 중 언니로 태어나 현실적이고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가지만, 이모는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반면 아버지는 어머니와 정반대의 성향을, 이모부는 계획적이고 철저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안진진의 동생은 아버지를, 사촌들은 이모부를 닮았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가족구성원으로써 서로를 받아들이지만, 강한 개성들은 그들을 부딪치게 만들고 함께 어우러지지 못하게 한다. 오직 주인공만이 삶의 모순적인 속성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의도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려고 한다. 작가는 현 시대에도 남아있는 전근대적인 모습에서 '모순'을 그려냈지만, 어쩌면 주인공의 결혼을 통해 그러한 갈등들을 수렴하기 위한 의도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제 도덕 혁명의 완성이랍니다.
< 카즈코 >
모순과 역설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품고 있는데, 전자는 서로 상충되는 두가지가 동시에 존재하여 논리적으로 소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단어이고, 역설은 겉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깊이 생각하면 진리를 내포하는 표현이나 상황을 나타낸다
'사양'은 카즈코의 시점에서 시작되며, 전후 일본의 몰락한 귀족의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카즈코의 어머니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살아오면서 귀족의 기풍을 지니게 되었으나, 사양(斜陽)이란 단어처럼 새로운 시대에 점점 몰락해 가는 시대의 캐릭터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에 딸인 카즈코는 이름부터 상징적인데, 카즈에는 '화목'과 '조화'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그녀가 살고 있는 시대적 배경과 대비된다.
동생 나가이의 이름에는 '길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는 시대의 조류인 사회주의를 접한 후, 전근대적인 습성에 벗어나 본질적인 삶을 추구했지만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신분에 대한 애착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결국, 그러한 갈등을 이기지못한 나가이는 아편과 술에 찌들어 살다가, 어떤 유부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채로 스스로 삶을 마감해버린다. 한편 카즈코는 나가이의 스승인 우에하라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는 '데카당스'적이며 예술적인 삶을 추구했지만 그것은 명목상의 허울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우에하라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있다는 사실이었다.
모순적인 상황 속에 처해있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카즈코는 주어진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았고, 어떤 측면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라 오하라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 혁명가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카즈코에게는 우에하라에 대한 감정만으로도 충분하며, 사랑하는 그 사람의 아이를 낳을수 있다면 주변의 시선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카즈코는 '역설'적인 캐릭터라고 평가할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안진진 >
'모순'은 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주인공은 계속되는 좌절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반해, '사양'의 주인공은 일본 전후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안진진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낭만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억척스러운 기질을 가지고 있기도 한 캐릭터였다. 그녀는 일단, 현실을 모르는 응석받이나, 자기 것만 고집하는 성격이 아니라,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여성이기도 했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사랑 속에서 회복하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하고 싶었으나, 그러한 딸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로부터 배신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운명이라는 벽 앞에 또다시 무너져버렸다. 결국 안진진은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꺾을 수밖에 없었고, 이모와 같은 '인형'의 삶을 택하게 되는 모순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이 실수임을 알면서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생의 아이러니는 불편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함을 자아내게 한다.
자신의 행복과 영광이 살아있을 동안에 결코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람은 어떤 기분이 들까?
< 카즈코 >
반면 '사양'의 카즈코는 가족의 가난한 삶을 구제해 줄 수 있는 남자가 구혼해 왔으나,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카즈코에게 혼인의 형태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결 그 자체가 중요했다. 미인도로 유명한 천경자 씨의 삶도 이와 유사했는데, 그녀는 유부남과 동거하면서 아이를 낳으며, 세상의 모든 비난과 고통을 홀로 감당하면서도,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예술로써 승화시켰다.
미인도에서 정면을 주시하며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여인의 모델은 화가 자신이었다. 당시까지도 여성은 예술분야에서조차도 수동적인 피사체의 역할에 불과했었지만, 천경자는 그러한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가슴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의지를 그림 속에서 구현하였다. 만약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 싶거나 느껴보고 싶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어보거나 서울시립미술관에 가서 천경자의 그림을 보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모든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혐오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오해이며, 의식 있는 남자들은 여성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분노한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조차도 페미니즘에 불편해하는 이유는 상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적으로 가정하는 논리와, 과실만을 바라고 과정을 무시하는 편협성에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이 진정한 페미니즘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인권의 전체적인 구조를 고려하여 총체적인 범위에서 수렴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권리의 주체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이기도 하며, 보다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까운 모습이기도 하다.
양귀자의 관점에서는 카즈코는 결국 혹독한 현실에 부딪혀 결국 좌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삶을 살기에는 방해가 되는 제약이 너무 많고, 내 입장과 비교되는 상황 또한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속해서 콤플렉스를 자극할 것이고,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반면 다자이 오사무의 관점에서는 안진진은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처럼, 보여주기에 괜찮은 모습만 연기하다가 이모처럼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채 끝맺음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양귀자는 이상에 부딪치는 현실을, 다자이 오사무는 현실에 부딪치는 이상을, 각각 다른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영도에서 0과 1이 결합하여 양자도약이 일어나듯이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실과 이상이 일치하는 결혼생활을 꿈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거의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완전한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에 필요한 조건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우선순위에 있어 어느 정도의 조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떤 것이 우위에 있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주변의 목소리보다 자신의 판단을 통해 선택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처음부터 완전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감정의 원형으로 다시 회복해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운명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가능성으로써, 한번 현실화되면 바꾸는 것이 그만큼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것에 대한 해석이 풍부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 참고도서
<모순, 양귀자, 쓰다, 2013.04.>
<사양, 다자이 오사무, 창비, 2015,07 >
사랑이라고 쓰고 나니, 다음엔 아무것도 못쓰겠다.
< 사양, 카즈코의 독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