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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트 Dec 20. 2023

미운 정 고운 정

그게 뭐길래

2023년 12월 20일 개인 블로그에도 업로드된 글입니다. 


정이 뭘까? 한국인들의 특징이라고 하지 않나 '정'든다는 건. 정의 사전적 의미는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곱다, 밉다를 붙이는 건 참 특이하지 않나. 영어로 love-hate relationship과 비슷할까 했는데, 딱히 그건 아닌 것 같고. Love-Hate는 보통 연인 간에 사랑하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밉고, 그런데도 놓을 수가 없는 엄청 익스트림한 감정이 왔다 갔다 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내가 느낀 '정'에는 익스트림한 감정보다는 오히려 잔잔한 감정이 강한 것 같아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며 느낀 '정'은 참으로 특이한 것 같다. 드라마만 봐도 거절하는 사람에게 '에이~ 우리 그간 함께한 정이 있는데~' 하고 긍정 답변을 반강요하지 않나. 그간 함께해서 뭐요. 그 정이 뭔데요! 몇 개월 인턴으로 근무하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해서 퇴사 후 몇 개월 뒤에 책에 다양한 글귀를 써서 선물로 보내 주는 팀원들, 10년간 같은 회사에서 일하다 여러 오퍼가 왔음에도 동료들이 좋아 떠나지 못하는 사람, 그런 팀원을 보내는 사람의 마음, 장기간 근무하다 퇴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직원을 회사 이벤트나 회식 자리에 초대한다든가... 그런 거.  


연인이나 가족 간의 사랑이면 보통 떠날 때 제발 가지 말라 붙잡지 않나? 그냥 같은 회사 직원이면 이직할 때 축하해 주고 끝나지 않나? 그리고 특별히 친한 사이면 가끔 틈날 때 보고, 가끔 밥도 먹고 하는 거지. 그렇지만 TCK가 본 한국인들의 관계는 뭔가 좀 더 특별했다. 이런 게 고운 정이지 않을까? 좋은 감정으로 오랜 기간 (오랜 기간이 아니래도) 함께한 사람들을 떠나게 되더라도 응원하고, 생각하고, 추억하고, 잘 지내나 궁금하고, 특히나 친했거나 좋은 사람이라면 볼 기회가 있을 때 보고 싶고, 연락을 유지하고 싶고. 나도 정드는 한국인인 걸까!  


그렇다면 미운 정은? 고운 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부정적 감정 충돌이 많았어도 함께한 시간이 많고 좋은 추억도 많아 그 시간을 추억하고, 응원하고, 잘 지내나 궁금하고, 잘됐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게 미운 정 아닐까 생각한다. 대신 부정적 감정이 있기 때문에 보고 싶거나 연락을 하고 싶지는 않아도 말이다. 좋은 추억이 왜 중요하냐면 내가 생각해 봤을 때 함께한 시간이 많았어도 좋은 추억이 없는 상대들은 별로 요즘 뭐 하고 사나 궁금하진 않더라고 (아니라면 모든 고딩, 중딩 동창들이 엄청 그리워야 함). 


또 그런 사람도 있더라고. 둘은 손절한 친구 사이인데 함께 알던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와 만날 때만 만나는? 내 주위에 그런 관계를 유지하거나, 그런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 2명이나 있다. 나로서는 신기한 일이다. 이것도 미운 정이 있어 가능한 걸까? 미운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함께 알던 친구가 껴서 3명이 만나는 자리라도 해도 안 나오고 싶지 않을까? 따로는 연락하고 보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셋이서 즐겁게 놀던 추억이 있으니까 그 추억을 회상하며 만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쟤랑 나랑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는 걸 세 번째 친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마음을 잘 모르겠다. 


미운 정을 미련이라 할 수 있을까? 나도 부정적 감정이 있다가 가라앉은 사람들이 좀 있는데, 처음에는 싫어하는 마음만 가득하다 시간이 지나며 잔잔해지면 예전의 추억도 생각나고 그때 좋았지~ 잘 살고 있나~ 생각도 든다. 딱히 연락하거나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어도 말이다! 이게 미운 정인가?


뭐가 됐든, 부정적인 감정은 해소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여러모로 최고인 것 같다. 그게 항상 내 뜻대로 안 돼서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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