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감각들, 촉감

카키모리 문구점

by 티아라

학생때부터 주변엔 항상 문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늘 한명은 있었다.


함께 시내에 놀러가면, 문규류가 모인 곳에서 끄적이고 있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럼 난 옆에 서서 괜히 같이 써보곤 했다.

이것 저것 써본 친구는 한웅큼 문구류를 샀고 좋아하는 문구들을 필통에 담아 잘 챙겨 다녔다.

같이 갔던 나는 어쩌다 한두개쯤 사는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 친구만큼 애정을 담아 사용하지도 않았다.

분명 좋은 점을 느꼈는데, 나는 그 정도로 갖고 싶고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다.

나에게 문구류는 쓰이는 것과 쓰는 것, 기능을 가진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좀 더 나아가면 예쁜 것과 예쁘지 않은 것 정도가 아닐까

(기능, 촉각 이전에도 역시 시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키모리 문구점은 매력적인 곳이었다.

오픈 전 매장 앞에서 기다리며, 단정하지만 단조롭지는 않은 인테리어를 보며 감탄했고,

곳곳에 쓰여 있는 카키모리의 이야기들이 멋져보였다.

사실 나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는 곳만 봤는데, 함께 간 문구인들의 기록을 보며

잉크병 하나에도 사용자를 위한 배가 설계에 녹아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놀랍게도 그런 문구 문외한인 나를 반하게 만들었던 제품을 발견했다.

바로 만년필촉이었다.

완제품 형태가 아닌 모듈로 만년필을 조립해서 사용하는 타입의 제품이 있었는데,

펜촉(닙)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가 있었다.

잉크 흐름 특성 조절을 위해서인지 소재에 따라 닙의 모양도 조금씩 달랐다.

이 중 투명한 유리로 된 닙이 있었다.

가격은 7700엔, 손톱만한 닙 하나가 한국 돈으로 약 7만원이었다.


제조 공정을 예상해보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느껴지긴 했다.

닙의 사이즈가 아주 작고 투명하고 외관이 매끄러운게

아주 정밀한 금형을 사용하면 만들 수 있을까?

혹은 압출 후에 원뿔 모양으로 가공을 했을까?

어떤 쪽이든 까다롭고 비용이 드는 공정이었을 것 같고

외관은 폴리싱까지 매끈하게 되어 있었다.


내가 몰랐던 세계에 그 중에서도 색다른 것이라는 점이

갖고 싶게 만드는 포인트였고,

제조 공정을 상상하며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듯 가치 있게 여겨졌다.

무엇보다도 현장에 놓여있는 샘플로 잉크를 찍어서 글씨를 써보는데

맑은 잉크가 더 맑고 투명하게 쓰여지는 느낌이었다.


카키모리 문구점에서 만년필을 사용하지도 않을 뿐더러 무언가를 살 생각도 없었던 나에게

소비욕구를 불러일으켰던 첫번째 제품이다.

그럼에도 만년필을 사용하지 않는 나에게 7700엔은 진입장벽이었기에

10초 정도 고민 후 마음을 접었다.

언젠가 나도 문구류를 좋아하게 되어 이것 저것 사게 된다면,

소장하고 싶은 제품이긴 하다.


그래도 내가 카키모리 문구점에서 구매한 제품이 하나 있다.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든 액체풀이다.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들었다니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테스터를 사용해 봤는데 손이 닿는 촉감이 너무 좋았다.

보들보들하고 촉촉한 실리콘 표면에 닿는 느낌이었다.


무엇이든 찍어보고 발라보고 문지르기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가지고 놀면 너무 좋아할 것 같았다.

그 앞에서 떠나지 못하며 촉감이 좋다고 하니

동갑 아이가 있는 엄마 셋은 모두 하나씩 구매를 하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제품도 저렴하진 않았는데,

용량을 따져보면 딱풀 여러개 사는 가격과 비슷할 수도 있다고 합리화를 해본다.

실제로 아이와 함께 종이를 붙이며 즐겁게 놀았다.


문구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카키모리 문구점은 문구류를 사게하는 곳은 아니었다.

만져보고, 써보고, 문질러보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렇게 카키모리는 문구의 세계를 촉감으로 열어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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